‘무너진 연구윤리’ 관례인가, 편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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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영 기자
  • 승인 2014.07.25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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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주의·학벌지상주의 폐해…표절의 정의부터 재정립해야
[이슈메이커=김진영 기자]

[Research Ethics] 논문표절 논란 



‘무너진 연구윤리’ 관례인가, 편법인가


실적주의·학벌지상주의 폐해…표절의 정의부터 재정립해야





최근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논문표절 논란으로 학계의 무너진 연구윤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학계에 통용되는 공식이나 공론화된 내용은 별도의 인용표시 없이도 서술이 가능하다는 점이 표절 의혹에 단골 해명 대사로 사용되곤 하는데, 표절의 정의부터 논문에 사용되는 인용의 범위까지 구체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나친 학벌지상주의와 정치권의 흠집내기성 의혹제기도 사라져야할 병폐로 지목된다. 





끊이지 않는 ‘논문표절’ 의혹과 진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논문표절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정치인을 비롯해서 운동선수, 공무원, 교수와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요 인사들이 논문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이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문대성 의원의 경우, 2012년 국회의원 선거 출마 당시 박사학위 논문이 상당부분 표절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가 “문 당선인의 박사학위 논문 연구 주제와 연구 목적의 일부가 명지대 김모씨의 박사학위 논문과 중복될 뿐만 아니라 서론, 이론적 배경 및 논의에서 기술한 상당 부분이 일치해 학계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났다”며 이를 인정하며 박사학위 취소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문 의원은 국민대를 상대로 학위 취소 무효 소송을 제기하며 논문표절 의혹을 일체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스타강사로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던 김미경씨도 이화여대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 일었지만 대학 측이 논문에 사용한 인용에 대한 문제는 있으나 연구에 대한 독창성을 인정해 논문 가치를 재확인함에 따라 명예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밖에도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제기한 조국 서울대 교수, 백지연 아나운서의 논문 표절 의혹이 있었고, 배우 김혜수, 방송인 김미화 등도 표절 논란으로 한차례 홍역을 겪은 바 있다. 





베끼고 옮기는 논문, 표절 정의도 모호


  우리나라 논문 표절은 상당한 빈도수로 발생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이상민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최근 5년간 대학별 교수 논문 표절 사례 및 조치결과’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월 초부터 2012년 6월 말까지 총 83건의 표절 사례가 적발됐다. 그 중 공학 분야의 논문 표절 건수는 14건, 이학 및 자연과학 분야는 6건으로 조사됐다. 이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연구논문 표절(35건)과 논문중복게재를 포함한 자기표절(17건)이 주를 이뤘고 연구실적물 표절(10건) 및 중복게재(4건), 저서표절(3건) 및 중복출판(1건)이 뒤를 이었으며 창작실기작품 중복 발표와, 연구계획서 표절, 연구보고서 표절의 사례도 있었다. 조치결과로는 경고(23건)가 가장 많았으며, 감봉(6건), 연구비 반납 및 제한(11건), 재임용탈락(2건), 정직(10건), 해임 및 파면(7건) 등이 있었다.


  논문에는 데이터와 그 데이터의 해석이 포함되는데, 이 중에서 대다수의 논문 표절은 데이터 자체를 도용하는 경우보다는 데이터 해석을 표절하는 사례이다. 이와 같은 사례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유는 다른 논문에서 아이디어나 설명을 가져올 때, 인용을 하지 않고 마치 자신이 처음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쓰는 행위나 기존의 자신의 논문을 일부만 바꾸어 다른 저널에 게재하는 자기표절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잇단 논문표절 의혹에 대해 표절의 정의부터 재정립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표절이란 다른 사람의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몰래 따다 쓰는 행위를 말하는데, 논문 표절의 경우 인용처리 없이 자신의 주장인 양 언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학계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내용은 인용 없이 사용한다는 ‘관행’이 굳어지면서 표절과의 모호함을 낳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논문표절 의혹에 대해 “일반적으로 공유되는 내용이 들어간 것”이라면서 “표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의혹을 부인하며 학계의 관행임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하지만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02년 정교수 승진 논문은 22페이지 중 8페이지를 그대로 베꼈다”며 “베껴다가 하는 게 통용되는 지식인가”라며 어긋난 연구윤리를 재차 지적하기도 했다. 





아니면 말고 식…무분별한 의혹제기도 문제


  정치권의 경우 흠집내기성 논문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인 안철수 의원은 청춘콘서트를 통해 ‘안철수 현상’을 일으키며 정치권의 긴장감을 조성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을 통해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며 한차례 홍역을 앓기도 했다. 


  2012년 9월 조선일보와 TV조선은 안 의원의 1993년 발표 논문이 이 논문의 제1 저자인 김모씨의 1988년 논문을 재탕한 것이라는 의혹을 보도한 바 있으며, 이후 10월에는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이 2년 전 발표된 서모씨의 논문을 표절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안 의원 측은(당시 무소속 대선후보) 대변인실을 통해 즉각적으로 반박에 나섰다. 논문표절 의혹과 관련한 취재에 대해 서울대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이석호 주임교수의 의견을 전달하며 사실이 아님을 확인했으며, ‘볼츠만 공식’을 인용 없이 사용한 부분에 대해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공식이어서 연구윤리를 위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볼츠만곡선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비견되는 물리학적 법칙”이라며 “인용문을 달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힘을 실었다. 서울대학교 연구진실성위원회도 안철수 의원의 5편의 예비조사 결과 표절 가능성이 없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대한 논문표절 논란도 같은 과정을 거쳐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서울대 측은 “조국 교수의 논문들은 연구윤리지침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제8조(자신의 연구성과 사용), 제9조(중복게재·출간의 제한) 등을 위반하지 않았다”며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조국 교수가 2001년과 2002년 형사정책학회지에 게재한 국문 논문의 영문 초록에서 미국 판결문이나 논문과 유사한 부분이 발견된 점, 타인의 문장을 정확한 인용표시 없이 사용한 점 등으로 일부 잘못은 지적했다. 하지만 “문제되는 부분이 영문 초록에 국한돼 논문 전체의 학문적 독자성을 해치지 않은 점, 본문에서 인용 표시를 한 후 다시 영문 초록에 인용 표시를 하는 것은 관행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위반 정도가 극히 경미하다며 논란을 일단락 지었다. 





실적주의·학벌지상주의의 폐해


  표절에 대한 모호한 정의가 의혹을 부추긴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오늘날 논문표절의 꼬리물기를 야기하는 근본 원인인 한국사회에 만연한 실적주의와 학벌지상주의는 사라져야할 병폐로 지목된다.  


  대학 교수의 경우 1년 단위로 평가되는 성과측정 시스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교수의 능력을 논문의 수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성과를 올리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질적인 부분은 신경 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대학에서 교수에게 논문을 많이 쓰고 질을 높일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논문의 질은 논문이 실리고 몇 년이 지나야 판단할 수 있지만, 논문의 수는 바로 결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논문을 쓸 주제가 많지 않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논문의 수를 늘리기 위해, 또 설마 내가 걸릴까 하는 마음에 표절을 하게 된다”라고 전했다. 실제 2013년 전국 4년제 대학 전임교수 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는 동료 교수의 표절 행위를 조용히 처리하거나 모른 척 한다고 답해 지나친 실적주의 탓에 실종된 연구윤리를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사회의 만연한 학벌지상주의, 학력 인플레 현상도 논문표절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03년 박사과정 입학생은 1만3310명에 불과했으나 2012년에는 2만3328명까지 급증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학벌이 높아짐에 따라, 또는 자신의 또 다른 스펙의 하나로 학위 따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교수는 “빠른 시간 안에 학위를 받고자 하는 학생들은 표절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석사나 박사가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관심 가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여기에 연구자의 윤리와 도덕이 끼어들 틈은 없다”고 꼬집었다. 


  중요한 점은 표절논란이 앞으로도 이어질 경우 학위에 대한 신뢰에 큰 위기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대학 교육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학위 취득에 따른 시간과 비용 등 사회적인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 또한 연구윤리를 철저히 지켜온 선의의 교수를 비롯한 학위자들까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교육의 상아탑이 권위와 신뢰를 되찾아갈 수 있게끔 자성의 노력이 수반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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