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Culture III] 또 하나의 아젠다, 개념 미술
[History Culture III] 또 하나의 아젠다, 개념 미술
  • 방성호 기자
  • 승인 2014.06.26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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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형식에서 벗어난 위대한 도전
[이슈메이커=방성호 기자]

[History Culture III] 개념 미술(Conceptual Art)



또 하나의 아젠다


권위와 형식에서 벗어난 위대한 도전



개념 미술은 형태나 재료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개념과 의미에 관한 것이며,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개념 미술은 독창적이고 수집 및 매매될 수 있는 미술 대상의 전통적인 존재방식에 도전한다. 작품이 전통적인 형태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개념 미술은 관람자에게 좀 더 적극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미술과 표현 그리고 그것들이 사용된 방식에 대한 철저한 미술 비평을 제공함으로써, 개념 미술은 대부분의 미술가들의 사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그림 1 - 마르셀 뒤샹의 「샘」


▲그림 2 - 마르셀 뒤샹의 「L.H.O.O.Q.」




미술의 의문과 도전


  20세기의 미술은 우리가 존경하고 찬탄해야 하는 대상으로서 가장 높은 지위를 누려왔다. 그러나 개념 미술이 그러한 사실에 의문을 품은 것은 바로 우리의 문화와 사회의 내적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개념 미술은 1966~72년에 정점이자 절정에 이르렀다. 이 용어는 1967년경 처음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으나, 개념 미술의 특징은 20세기를 통틀어 존재해왔다고 할 수 있다. 개념 미술이 최초로 표명된 것은 프랑스 미술가 뒤샹의 이른바 ‘레디메이드’였다. 그 중 가장 악명 높은 것은 'R Mutt'라고 서명해 받침대 위에 놓았던 소변기 「샘(Fountain, 그림1)」이었다. 그것은 뒤샹이 1917년 뉴욕에서 열린 독립미술가협회 전시에 미술 작품으로 내놓았던 것이다. 뒤샹의 「샘」 이전에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것이 미술이 될 수 있는지를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은 「샘」을 조각으로 볼 수 있었다. 


  미술 작품은 통상적으로 마치 그것이 하나의 진술인 것처럼 작용한다. 예를 들어, “이것은 미켈란젤로가 만든 구약의 영웅 다윗 상이다”라든가, “이것은 모나리자의 초상화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우리는 “왜 미켈란젤로는 다윗 상을 사람보다 두 배나 크게 만들었을까?” 또는 “이 모나리자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들은 미술 작품이 제시하는 초기 진술을 수용할 때 뒤따르는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표현뿐만 아니라 사실상의 미술로서 받아들인다. 반대로 레디메이드는 “이것은 변기다”라는 진술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이 변기가 과연 미술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미술이라고 상상해보라!”라는 식의 의문 또는 도전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이외에 뒤샹의 「L.H.O.O.Q. (그림 2)」에 대해서도 수염을 그려 넣은 모나리자의 복제품을 그 자체의 권리를 가진 미술 작품으로 상상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1960년대 말에 개념 미술가들에 의해 제기된 이러한 문제들은 50여 년 전 뒤샹이 예시한 것이었고, 어느 정도는 1916년부터 다다이즘의 반(反)예술적인 제스처 안에서 예상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여 년간 네오다다이즘과 미니멀리즘을 포함한 모든 영역의 미술 형태들에 의해 다시 제기되고 확장되었으며, 특히 1960년대 말에 나타난 미술 세대가 완전하게 발전시키고 이론화했다.




▲그림 3 -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의 「무제」


▲그림 4 - 조셉 코수스의 「세 개의 의자」

▲그림 5 - 브루스 나우먼의 「100개의 삶과 죽음」



개념 미술의 특징


  개념 미술은 사실 국제적인 현상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1960년대 당시, 미술의 확산과 발전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던 뉴욕 이외에 샌디에이고, 프라하,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에서도 개념 미술의 형태를 찾아볼 수 있었다. 


  개념 미술이 매체나 양식으로 설명될 수 없다면, 그것과 마주쳤을 때 개념 미술 작품임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에 대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개념 미술에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형식이 있다. 첫째, ‘레디메이드’를 들 수 있다. 뒤샹이 만든 이 용어는 외부세계에서 가져온 사물이 미술로 주장 또는 제시되는 것으로, 미술 작품의 독창성과 미술가의 수작업의 필요성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개입’으로서 이미지, 텍스트, 사물 등을 미술관이나 길거리 같은 예기치 않은 문맥 속에 갖다 놓아 그 문맥으로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다. 셋째는 ‘자료 형식’이다. 실제 작품과 개념, 행동 들은 모두 증거와 기록, 지도, 차트 그리고 가장 빈번하게는 사진을 제기함으로써만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언어’를 들 수 있다. 여기에서는 개념과 진술, 조사 들이 언어의 형식으로 제시된다.


  뒤샹의 「샘」은 가장 유명하고 악명 높은 레디메이드의 예이지만, 그 전략은 수많은 미술가들이 수용하고 각색해왔다. 개입의 예로는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의 대형광고판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그는 구겨진 침대보가 있는 텅 빈 더블 침대 사진을 뉴욕 전역의 24군데에 대형광고판(그림 3)으로 설치했다. 그 광고판에는 덧붙여진 말이나 해설이 없다. 보행인에게 이 작품은 그 또는 그녀 자신의 상황에 따라 많은 것을 의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랑과 부재를 말한다. 더블 침대는 대개 사랑하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다. 또한 흐트러진 침대는 우리가 매일 아침 출근 전에 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것은 물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지만 그것이 보여 지는 상황과 문맥이 그 의미상 은밀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이 되는, 즉 친숙하지만 드러내기에는 좀 어색한 이미지이다. 몇몇 행인은 이 광고판이 곤살레스-토레스의 작품임을 알아보고 그 이미지가 에이즈로 사망한 그의 연인과 함께 쓰던 침대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특별한 개인적인 의미는 우리가 그 안에서 각각 발견해야 하다는 것이다.


  조셉 코수스의 「세 개의 의자, (One and Three Chairs, 그림 4)」는 자료 형식의 예이다. 이 작업에서 ‘진정한’ 작품은 개념이다. 이 작품에서는 의자란 무엇인가?, 어떻게 의자를 재현할 것인가?, 미술이란 무엇인가?, 재현이란 무엇인가? 를 묻는다. 그가 “미술이 미술인 것이 곧 미술이다”를 같은 말의 반복적이라고 설명했던 것처럼, 의자가 의자인 것이 곧 의자임은 일종의 동어반복이다.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있는 세 가지 요소(의자의 사진, 실제 의자, 의자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그러한 원리에 따른 것이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는다. 즉 이 작품은 평범한 의자, 사전을 그대로 확대 복사한 의자에 대한 정의, 그리고 코수스가 직접 촬영하지 않은 사진으로 이루어졌다.


  브루스 나우먼의 「100개의 삶과 죽음, (One Hundred Live and Die, 그림 5)」은 언어로 표현된 미술의 훌륭한 예이다. 관람자는 읽기를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짝을 이루는 일련의 용어를 읽어야 한다. 이러한 짝들은 점점 조화를 잃고 불안정해진다. 이 작품은 간판을 연상시키는 네온 매체와 간판의 크기를 이용했으며, 전시장 전체를 소란스러운 웅얼거림으로 가득 채웠다.


  개념 미술가들에게 있어 개념 미술을 유형별로 분류하는 것은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개념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이 제한되어 정의되는 것을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개념 미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중요한 지점은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의 작업에 대한 의미이다.




개념 미술의 올바른 이해


개념 미술의 작품을 특정한 양식이나 매체가 아닌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오브제, 이미지, 퍼포먼스 또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 표현된 ‘아이디어’로 제시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미술일 수 있다’는 전제만으로도 완벽해진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개념미술은 ‘재귀적’이다. “나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해 생각한다”는 문장에서처럼 대상은 주체에게로 소급되며, 계속적인 자기비판의 상태를 나타낸다.


  1960년대 후반의 가장 중요한 그룹인 ‘미술과 언어’는 모더니즘의 신경질적인 붕괴로서의 개념미술의 특징을 나타냈다. 신경질적인 붕괴는 우리의 삶이 기초하고 있는 모든 것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발생한다. 개념 미술가들은 미술이나 모더니즘 미술의 주장과 그것이 누려온 사회제도까지 불신하게 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발전해온 모더니즘은 새롭고도 적절한 형태와 방식을 통해 산업과 매스미디어의 새로운 세계를 표현해왔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 모더니즘의 지배적인 흐름은 오로지 형식과 양식에만 초점을 맞추는 형식주의를 나타냈다. 형식주의 내의 발전은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계 속의 삶을 설명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으며, 다만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매체를 정제시키고 순수하게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다.


  개념 미술은 모더니즘이 지닌 이러한 미술의 발전 개념에 격렬하게 대항했으며, 특별한 종류의 상품으로서의 미술 대상의 존재라는 면에도 반대했다. 미술, 특히 회화에 내재한 순수하게 망막에 기초하는 시각적인 성격은 모더니즘 이론가들과 주동자들에 의해 고양되었다. 모든 시각적인 경험과 이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언어의 역할을 강조한 개념 미술가들에게 이것은 저주스러운 일이었다. 모더니즘 미술은 세련되고 밀폐된 담론이 된 반면 개념 미술은 그 담론을 철학과 언어학, 사회과학 그리고 대중문화에 개방시켰다.  


  개념 미술은 양식(樣式)이 아니다. 또한 시기를 지정하거나 한정시킬 수도 없다. 개념 미술은 비판적 정신에 입각한 전통이다. 개념 미술이 바로 그 전통이라는 관념을 반대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전통’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모순된 것일 수도 있다. 비록 개념 미술의 지속적인 역사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 자체가 스스로 규정되길 원하지도 않는다. 개념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있을 때 그 작품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관람자, 곧 나 자신인 것처럼 결국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 「개념 미술」 토니 고드프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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