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두 얼굴, 다국적 기업
야누스의 두 얼굴, 다국적 기업
  • 김진완 기자
  • 승인 2014.06.25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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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혜택 속에 숨겨진 거대자본의 단면
[이슈메이커=김진완 기자]

[Global Focus] 



야누스의 두 얼굴, 다국적 기업


세계화의 혜택 속에 숨겨진 거대자본의 단면





한국 매운맛의 대명사는 바로 고추다. 그 중에서도 청양고추는 대표적인 우리 농산물의 상징이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 한 가지가 있다. 청양고추를 비롯한 무, 배추 등 우리가 즐겨 먹는 농산물의 특허권은 전 세계 최대의 다국적 종자 기업 몬산토에 있다. 우리는 우리 농산물을, 각종 전자제품과 의류 등을 사용하고 먹을 때마다 다국적 기업에 엄청난 액수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가려진 다국적 기업의 다른 얼굴을 살펴보자.






세계 경제 주름잡는 국적 없는 배


  자본주의는 세계경제의 위기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변모하며 위기를 극복해 왔다. 1970년대 세계경제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또 다른 변화를 야기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거대 자본 다국적 기업이 있었다. 한 경제 전문가는 다국적 기업들에 대해 “국경 없는 경제 논리에 따른 작동방식을 가지고 특정 국가의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최고의 안정성과 수익을 위해 세계 전체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하였다. 자본은 국가중심에서 기업중심으로 가볍지만 더 빠르고 국적이라는 불편한 요소가 없는 거대한 배로 옮겨 전 세계를 무대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해외 시장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은 현지법인의 매출 또는 기업 간 거래, 프랜차이즈 등과 같은 기술, 인적, 자본의 독점판매, 현지 생산라인 설치, 해외시장 형성 등 국제적 생산, 분업 시스템을 구축해 많은 수익을 올렸다. 이러한 다국적 기업의 세계시장 진출은 국제적 분업체계의 확립으로 최적의 자원 배분에 기인한 효율 극대화와 세계 후생의 증대라는 점에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일상에 없으면 안 되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제품, 의류, 음식 등 다국적 기업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뿐 아니라 다국적기업이 진출한 현지국은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자국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과 기술이전, 세금수입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2009년 세계투자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에 활동하는 다국적기업은 총 8만 2,000여 개이며 자회사까지 합하면 81만 개에 이른다. 세계 경제에서 다국적기업은 세계 상품과 서비스 수출의 60% 이상, 농산품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 500대 다국적 기업은 세계무역의 70%, 해외투자의 70%, 세계 GDP의 30%를 좌우한다. 하지만 전 세계는 국가의 정체성을 벗고 다국적기업이라는 배를 탄 고삐 풀린 자본의 민낯을 보며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에콰도르에 내리는 검은 비


  에콰도르의 작은 마을이 모여있는 수쿰비오스와 에렐랴나 지방은 한동안 검은 비가 내렸다. 1962년, 미국 석유회사 텍사코가 원유 개발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열대우림의 체르노빌’에 비견될 검은 재앙이 될 줄은 누구도 쉽게 예견하지 못했다. 비정부기구(NGO)인 악시옹 에콜로지카(Accion Ecologica)에 따르면 28년간, 텍사코는 개발 지역의 독점권을 누려오며 44만 2,965헥타르에 달하는 지역에서 총 356개의 저유조 만들어 약 17억 배럴의 원유를 채취했다. 그동안 기름 구덩이와 갱도 주변의 기름과 폐기물을 고의로 내다 버리면서 피해를 당할 동식물과 주민들에게는 심각한 오염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리지 않았다. 텍사코가 에콰도르에서 1992년 철수할 때까지 20년간 주변의 강으로 방출한 유독성 폐수는 4억 2880만 배럴 이상. 유출된 기름은 1989년 최악의 환경오염 사건 중 하나인 액손 발데즈호가 알래스카 바다에 쏟은 원유 26만 배럴에 30배에 이른다. 차단막조차 깔리지 않은 900여 개의 유독성 폐기물 저장 웅덩이는 아직도 남아 토양을 오염시키고 지하수와 강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오염된 지하수와 강에서 흘러나온 물을 이용하는 아마존 인디언과 마을 주민들이다. 이 지역의 암 발병률은 다른 지역에 비해 2, 3배가량 높다. 그뿐 아니라 주민들은 기형아출산, 유산, 피부질환 등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뒤늦게 오렐랴나와 수쿰비오스 농민들과 인디언들은 비정부기구의 지원을 받아 뉴욕 법원에 환경 파괴로 인한 피해 및 보건 피해에 대한 소를 제기했지만,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과의 싸움이었다. 2001년 텍사코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석유회사 셰브론에 인수됐다. 이후 에콰도르 법원은 에콰도르의 석유 유출이 사고가 아니라 텍사코가 원유를 퍼내는 과정에서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비용 절감을 위해 유독성 폐수를 그대로 흘려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사람의 공분을 샀지만 막대한 자본력을 동원해 로비활동을 한 셰브론은 20년 넘게 피해자들에게 한 푼의 배상도 하지 않았으며 2014년 3월, 미국 연방 법원은 에콰도르 대법원이 내린 셰브론의 환경 오염에 대한 배상금 95억 달러의 판결을 뒤집고 환경오염과 주민들의 피해에 대한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다국적 기업에게 눈뜨고 코 베인 한국


  다국적 기업이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논란이 된 것은 다국적 금융, 투자 기업인 론스타와 맥쿼리 사건이 발생하면서이다. 미국 TEXAS 주 DALLAS에 소재한 국제적인 사모펀드 론스타는 1998년 IMF 위기를 틈타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로부터 5천억 원의 부실채권을 매입하며 한국에 진출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은행은 금산분리 정책에 의해 투기성 산업자본이 은행의 지분을 4%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법으로 지정해 놨다. 하지만 2003년 론스타는 산업자본임을 숨기고 외환은행을 인수하여 2008년 외환은행을 하나은행에 매각하고 2조 원 이상의 차익을 챙겨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한국을 떠났다. 미국의 선진금융을 배우는 기회로 포장된 론스타의 외환은행 사건은 매입, 매각에 있어 금융당국과의 비리의혹이 있었지만, 적반하장의 론스타는 오히려 한국에 ISD 소송을 제출해 국내 금융당국은 다국적 금융기업에 돈 주고 소송당한 꼴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해고와 퇴직의 불이익을 받은 외환은행 노조는 론스타를 상대로 7년이라는 긴 투쟁을 벌였지만, 요구는 묵살되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인프라 공룡이라고 불리는 맥쿼리는 국내에서 우면산터널,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 인천대교 등을 소유한 다국적 SOC 투자 전문 기업이다. 막대한 돈이 드는 SOC 사업 특성상 지방자치단체는 적자를 줄이기 위해 민간 기업에 위탁해 진행한다. 논란의 핵심에는 SOC에 투자한 맥쿼리에게 계약조건 이상의 수익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자금으로 일정 수익을 보장해주는 최소운영수입보장 조건에 있다. 광주 제2 순환도로의 지분을 100% 소유한 맥쿼리는 2001년 도로의 개통 이후 자체 통행료 수입과 1,000억 원이 넘는 광주시 보전금으로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이러한 일은 요금인상 논란을 일으켰던 서울 지하철 9호선에도 되풀이되었는데 맥쿼리인프라는 2010년 서울시로부터 보조금 326억 원을 받고도 466억 원이라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전금을 받는 방법으로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수익 대부분을 자사의 편법적인 대출 이자비용으로 지출하는 바람에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론스타와 맥쿼리 사건은 국가의 경제와 지역에 중요한 요소로 건전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은행과 SOC가 다국적 기업의 이윤 창출에 이용된 사례로 남게 되었다.







철저한 경제 논리만을 내세우는 본사중심의 경영


  문제는 다국적 기업의 경영정책이 이들이 진출한 현지 정부의 정책과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보다는 철저한 경제 논리를 내세운 본사에서 결정된다는 점에 있다. 아디다스, 나이키, 푸마, 리복 등 스포츠화의 99% 생산을 맡은 아시아의 수만 명의 노동자는 하루에 몇 달러 안 되는 임금으로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유엔에서 판매 금지된 의약품들은 개발도상국에서 흔하게 판매되기도 하며 자국에서는 판매 금지된 약들도 버젓이 제3세계에서는 좋은 약으로 유통되고 있다. 영양부족이 만연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식량문제 해결보다 비타민제 판매를 위한 광고가 늘어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특허권을 가지고 독점적으로 종자를 수출, 판매하는 다국적 종자 기업들은 DNA를 선택적으로 설계해 수확물이 종자로써 다시 싹을 틔울 수 없도록 개발했다. 식물의 유전적인 특징까지 마음대로 조작하는 트레이터 기술을 이용해 다국적 종자 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업에서만 판매하는 화학물질을 사용해야만 해충이나 병해에 강하도록 조작했다. 농민들이 종자와 화학물질을 동시 구매하도록 유도해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업행태가 몇몇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초국적 기업, 세계를 삼키다>의 저자 존 매들리는 그의 저서에서 다국적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가 실제로 투자가 필요한 곳에 이뤄지지 않았고, 투자가 이뤄진 국가에서도 다수의 국민에게 돌아간 혜택이 없다고 주장하며 다국적 기업이 진출한 국가에 대한 경제발전 논리에 대해 반증했다. 또한, 다국적 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 대부분은 저임금의 일자리임을 강조했다. 

  




강력한 제재와 엄격한 모니터링이 필요할 때


  1976년 다국적 기업의 인권 침해 예방 및 구제에 대한 기준 마련에 대한 방안으로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였다. 가이드라인의 주요 목적은 다국적 기업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특히, 2001년 개정 이후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노동권이나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경우 노동자들이 이의신청할 수 있고 가이드라인의 이행절차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내연락 사무소(NCP)를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이러한 규정에 따라 한국을 포함한 OECD 회원국 34개국과 브라질을 포함한 비회원국 8개의 수락 국가들이 NCP를 설치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성격상 다국적 기업의 자발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권고일 뿐이라는 점에서 한계에 직면한다. 최근 개정된 2011년 가이드라인은 전반적으로 가이드라인의 적용 범위를 넓혔다는 성과를 얻었지만 많은 경우에 ‘적절한 경우’ 또는 ‘실행 가능한 경우’라는 모호한 표현이 많았으며 ‘해야한다’라는 표현보다 ‘권장된다’,‘노력해야 한다’라는 완곡한 표현이 많았다. 실례로 우리나라 산업부는 2011년 NCP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아 인권위의 시정 권고를 받은 바 있다. 인권위 권고에 따르면 “설립 후 11년간 8건의 이의 제기가 접수되어 1건의 권고가 이루어지는 등 역할을 하지 못하고, OECD 가이드라인의 홍보 및 장려에서도 그 역할을 게을리해 왔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NCP에 대한 인식 제고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기업의 자발적인 노력과 언론과 시민사회의 역할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공입법센터의 김종철 변호사는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어떤 종류의 인권침해가 일어나는지 지속해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며 언론과 시민사회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제 다국적 기업의 피해는 한 국가 또는 일부 단체가 저지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지금이라도 국제사회의 실체적인 법 규정과 엄격한 언론의 감시, 사람들의 관심이 우리와 전 세계 다국적 기업의 검은 비를 줄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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