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vs Book] ‘소설’이 아닌 현실이다!
[Book vs Book] ‘소설’이 아닌 현실이다!
  • 김진영 기자
  • 승인 2014.06.24 11: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슈메이커=김진영 기자]

[Book vs Book] 사회파 소설



‘소설’이 아닌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캐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다






소설을 뜻하는 영단어 ‘Fiction’의 다른 의미는 허구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일명 사회파 소설들은 예술의 영역을 넘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거운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이를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라는 새로운 의미로 이를 ‘팩션 Faction(Fact + Fiction)’이라 부른다. 





저널리즘의 또 다른 이름, 논픽션소설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팩션작가로 불리는 미국의 트루먼 카포티(Truman Capote)는 소설 ‘인 콜드 블러드(In Cold Blood)’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감방생활까지 한 일화로 유명하다. 1959년 캔자스주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인사건을 계기로 카포티는 ‘To kill a mockingbird(앵무새 죽이기)’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 넬 하퍼 리(Nelle Harper Lee)와 함께 두 명의 범인을 인터뷰하며 6년 동안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한다. 인터뷰 한 사람들만 수백 명이었고 기록으로 남긴 노트도 수천 매에 달했다. 사형을 기다리며 단식중인 범죄자에게 음식을 떠먹여가면서까지 인터뷰를 진행한 카포티의 집요함은 평범한 시선으로는 닿을 수 없는 인간의 내면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기자이자 작가였던 카포티는 작품 속에서 범죄의 발생으로 인한 파장을 섬세하게 재구성하며 생생하게 묘사한다. 사건의 피해자, 목격자, 범인, 수사관의 심리묘사나 목소리들을 통해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시골마을에 벌어진 일가족 살인사건이 그들의 인간성과 사회관계의 본질에 어떤 파장을 몰고 왔는가에 집중한다. 겉으로는 타당하고 공정한 분노를 드러내던 마을 사람들의 깊숙한 내면에는 이웃을 의심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음을 낱낱이 드러내기도 한다. 이후 작품은 저널리즘의 방법론과 소설의 작법을 동시에 적용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주관적인 관찰과 상세한 묘사를 주로 하는 새로운 보도 형태인 ‘신 저널리즘’을 논할 때 일례로 거론되는 상징성까지 부여받게 된다. 


  작품은 논픽션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함과 동시에 “20세기 소설의 지형도를 바꿨다”는 찬사까지 얻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후 카포티는 오랜 세월 알코올과 약물로 불우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일각에서는 카포티가 작품 속 범인 중 한명인 페리 스미스라는 사형수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냈다고 평가한다. 스미스와 카포티는 어린애같이 작은 체구,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 등 유사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카포티는 “우리는 같은 집에서 태어난 형제 같다.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온…”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해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사형을 앞두고 단식 중이던 스미스에게 음식을 떠먹여 준 일화 역시도 작품에 대한 욕심이 아닌 인간적인 애정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작품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스미스의 비관적인 결말이 필연적이었으나 사형 선고가 연기되면서 카포티는 그의 죽음과 인간적인 동정과 동질감 속에서 괴로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카포티는 작품의 성공으로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그런 그를 있게 한 스미스는 결국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사회적 동기에 주목한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명탐정의 저주’에서 그 정의에 대해 “해 되는 사람은 기업의 비밀을 쥐고 있는 사원이거나 불륜에 빠진 여사원이고 그런 살인의 배후에는 사회문제라는 것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결국 작가의 목적인 사회문제를 지적하는 것이고 살인사건을 규명하는 일 따위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개념이 처음 대두된 것은 1958년 출간된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에서 기인한다. 그는 “너무 트릭만을 중시하여 유희적 경향으로 빠지는 것에 반대하여 극한상황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파고들 것”을 주장하며 추리소설이 사회적 모순을 지적하는데 몰두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휘말려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되는 개인의 비극과 그 동기를 밝혀나가는 과정을 트릭이라는 장치를 통해 참신하게 구성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 야스다 다쓰오는 자신의 애인인 오토키가 낯선 남자와 함께 기차를 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며칠 뒤 두 사람은 규수의 바닷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데, 타살의 흔적이 전혀 없고 청산가리가 담긴 주스병까지 발견돼 경찰은 동반자살에 무게를 둔다. 하지만 형사 준타로가 오토키와 함께 죽은 사야마의 시신에서 발견된 열차 식당의 영수증이 1인이라는 점을 발견하고 두 사람이 연인사이가 아닐 가능성에 집중한다. 추리 끝에 또 다른 형사 미하라는 중앙관청의 공무원인 사야마가 도쿄에서 부정부패로 얼룩진 공무원 비리 사건에 유력한 증인이었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결국 남녀의 치정에 얽힌 동반자살로 보였던 사건의 이면에는 기업의 부정부패가 뒤얽힌 은폐된 진실이 야기한 비극이 자리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추리소설만의 트릭과 미스터리라는 유희적 요소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각종 병리와 결합한 사회파 추리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리얼리티를 가중시킨다는 강점을 가진다. 또한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해 더 이상 방관자적 입장에서 벗어나 사건의 사회적 동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결국 사회파 추리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라는 소설의 틀을 깨고 현실과 호흡하며 현실 안의 문제점들을 담아내 우리로 하여금 경각심을 이끌어 낸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이후에도 논픽션에 파고들어 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인 일본을 간접 통치한 GHQ(연합국 총사령부) 시기 일본에서 벌어진 12개의 미스터리를 다룬 소설 ‘일본의 검은 안개’를 펴낸다. 세이초는 실제 사건들을 정력적으로 조사하고 파고들면서 자료를 가공 없이 배열하고 그 자료들을 추리를 통해 연결하는 독자적인 논픽션 장르를 탄생시킨 작가로 평가받는다. 일본현대사의 유일한 군사 쿠데타인 2.26사건을 다룬 ‘쇼와사 발굴’은 자료조사에만 자그마치 7년여의 소요기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쓴 재료로는 쓰고 싶지 않다”고도 했고 “내용은 시대를 반영하고, 그 사상의 빛을 받아 면모해 간다”며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마쓰모토 세이초와 더불어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모리무라 세이치 등으로부터 출발한 사회파 추리는 이후 ‘화차’의 미야베 미유키, ‘백야행’의 히가시노 게이고, 기리노 나쓰오, 다카무라 가오루 등 이른바 스타작가의 한 흐름을 형성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광주인화학교 사건, 끓지 않는 도가니


  우리나라에도 사회파 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 있다. 바로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다룬 2009년 발표작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이다. 그동안 한국문학사의 흐름에서 팩션(Faction) 소설이라는 장르는 조선시대의 역사 속 인물을 재조명하거나 사건을 재구성하는 등 시대적인 틀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유형의 팩션 소설들은 브라운관으로 옮겨지며 ‘퓨전사극’이라는 형태로 재해석됐다. 하지만 ‘도가니’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현대적인 의미의 사회파 소설이 주는 사회적 파급력에 새롭게 의미가 부각되고 있는 모양새다. 


  소설 ‘도가니’는 광주에 위치한 조그만 청각장애학교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다. 소설 속 배경인 ‘무진’은 광주시의 옛 명칭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간제교사로 부임한 강인호라는 인물은 교장과 교직원 그리고 수사기관까지의 모종의 침묵의 카르텔을 감지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려고 한다. 하지만 지역사회 내의 기득권 세력은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결국 아이들의 증언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가해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되지만 솜방망이 처벌로 매듭지어지며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 세력과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피해자들의 아픔 등 본질적인 문제제기로 상정된다. 


  작가 공지영은 도가니를 쓰게 된 계기에 대해 “그것은 마지막 선고공판이 있던 날의 법정 풍경을 그린 젊은 인턴기자의 스케치기사였다. 그 마지막 구절은 아마도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였던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비명소리를 들은 듯했고 가시에 찔린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준비해오던 다른 소설을 더 써나갈 수가 없었다. 그 한 줄의 글이 내 생의 1년, 혹은 그 이상을 그때 이미 점령했던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광주인화학교 사건은 소설과 영화 ‘도가니’를 통해 큰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인화학교 및 인화원 성폭력 사건은 2008년 당시 집행유예와 무죄 선고로 가해자들이 다시 학교에 복직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으나 소설과 영화 의 흥행 이후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실태 조사 등 파악에 나섰고 수사기관도 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했다. 결국 행정실장 김모씨가 성폭력, 상해 및 폭행을 한 혐의를 인정받아 사건발생 7년만인 2012년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기에 이른다.


  작가는 ‘도가니’라는 비유적인 제목을 통해 사건의 부당함을 세상에 알렸다. 도가니의 사전적 의미는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이라는 뜻이며, 여기에서 파생된 의미로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정의한다.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너무나 태연하게 벌어지는 일종의 ‘광란의 도가니’를 의미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8길 11, 321호 (여의도동, 대영빌딩)
  • 대표전화 : 02-782-8848 / 02-2276-1141
  • 팩스 : 070-8787-897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보승
  • 법인명 : 빅텍미디어 주식회사
  • 제호 : 이슈메이커
  • 간별 : 주간
  • 등록번호 : 서울 다 10611
  • 등록일 : 2011-07-07
  • 발행일 : 2011-09-27
  • 발행인 : 이종철
  • 편집인 : 이종철
  • 인쇄인 : 김광성
  • 이슈메이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슈메이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1@issuemaker.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