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남긴 과제
세월호가 남긴 과제
  • 김진영 기자
  • 승인 2014.05.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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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진영 기자]

[Special Report] 세월호 참사



세월호가 남긴 과제


그럼에도 우리는 딛고 일어서야 한다





진도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침통하다는 표현 하나로는 이루 표현되지 않을 만큼 한반도를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몰아넣고 있다. 치유되지 않을 상처일 테지만 딛고 일어나 총체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  만이 그들의 희생에 조금이나마 답하는 길일 테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16일 오후 정부서울종합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 보고를 듣고 있다. ⓒ청와대



재난관리시스템 총체적 난국


이번 세월호 참사가 태풍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가 아닌 ‘인재(人災)’인 까닭은 비단 탑승자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할 선장과 승무원들이 가장 먼저 배를 버리고 빠져나갔기 때문만은 아니다. 언론을 통해 생생히 안방까지 중계됐던 일명 골든타임 72시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바다에 무참히 구겨버렸기 때문만도 아니다. 안타까운 생명을 품고 서서히 가라앉는 세월호와 이들을 구할 의지가 없었던 해경을 비롯한 정부가 보여준 책임의식 실종과 부실한 대응체계시스템이 인재라는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닌 까닭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먼저 대한민국의 재난관리시스템 전반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상황이지만 불필요한 보고체계와 관련 부처 간의 불협화음이  결국 참사를 야기한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 정부 들어 기존 행정안전부의 부처명까지 안전행정부로 교체하며 안전의식을 격상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기 때문에 이번 참사를 바라보는 국민적 실망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의 재난대응체계는 크게 인적재난, 화재·자연재난, 해상재난 등으로 구분돼 있는데, 그 중심에 안전행정부가 있는 경우는 인적재난에 국한된다. 나머지 두 재난사고에 대해서는 각각 소방방재청과 해양수산부가 총괄하며, 상황에 따라 국토교통부, 국방부, 환경부, 경찰청, 해양경찰청 등 관계기관들이 참여하도록 되어 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등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우왕좌왕 했던 근본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재난관리 및 신고시스템 역시도 부처마다 제각각 관리한다. 매뉴얼이 다르기 때문에 협업은 처음부터 기대하기 힘든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지난 3월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해양재난 대응체계 고도화 전략 워크숍’을 개최하고 올해 해양 재난사고의 선제적 예방과 현장중심의 재난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해 SOS(Speedy, Outstanding, Superior) 전략을 수립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책임지는 사람 없는 오합지졸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2일 만인 4월 27일 정홍원 국무총리는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날 뜻을 전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분노가 누그러지지 않는 까닭은 정작 정부에 기대하는 ‘책임의식’이 사퇴라는 사후약방문격 행동이 아닌 위기상황에서 발효되는 현장책임자의 막중한 위기관리능력에 있음이다. 이는 곧 지휘체계에서 드러난다. 


  세월호 일지를 들여다보면 단원고등학교의 한 남학생에 의해 최초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4월 16일 오전 8시52분이다. 배가 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은 시기는 이틀 뒤인 18일 오후 1시경이다. 정부가 총력전을 펼쳐 구조와 수색에 적극 나섰다면 희생을 줄일 수 있지도 않았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세월호 침몰 후 한 달 넘도록 더 이상의 구조자는 없고, 실종자들이 모두 시신으로 인양될 수밖에 없음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자그마치 이틀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가라앉는 무고한 생명들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는 깊은 상실감이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이들의 가슴을 비통함으로 물들게 한다. 


  그렇다면 세월호가 가라앉기까지의 이틀간 정부의 조처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의 브리핑 및 언론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전남소방본부로 첫 신고가 접수된 후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것은 해군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고속함은 세월호 선체로 다가가 바로 구조에 뛰어들지 않았다. 뒤이어 도착한 해경은 마찬가지로 해군의 투입을 저지하며 객실 밖으로 나온 선원들만 구조하고는 배에서 멀리 떨어져 보고를 거듭하며 대기한다. 본격 구조가 시작된 시각은 오전 10시, 박근혜 대통령의 “단 1명의 인명피해도 없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고 난 다음이다. 사건 발생 이후 1시간여의 시간이 흘렀으며 배는 이미 60도 이상 기운 후다. 이후 해경과 해군은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해 110여명을 구조한다. 이 과정에서 섣불리 발표한 생존자 수 및 탑승객 수가 실종자 가족들에게 잘못 전달되며 혼선을 야기한다. 교육부와 해경, 해양수산부와 각각 다른 통계수치를 들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 객실에 갇힌 소중한 생명은 바닷물 속에 서서히 잠기고 있었던 것이다. 골든타임이 소진되기 전 적극 구조를 요구하던 실종자 가족들이 분노로 증언하기를, 정부와 언론에서 밝힌 구조인원 및 규모와 팽목항 현장에서의 현장의 차이는 여실히 컸다는 점 역시도 ‘책임의식 실종’으로 매듭지어 진다. 


  가장먼저 현장에 접근했던 해군과 해경은 왜 당시 선체 내 객실에 들어가 탈출 안내방송을 위한 조타실을 찾지 않았는지, 선체 내에서 가장 가까운 객실 안으로 진입하지 않았는지, 왜 선미가 아닌 중앙으로 구조선을 댔는지, 정부가 발표한 구조병력과 현장과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들만 남긴 채 세월호는 아직까지도 차가운 진도 앞바다에 잠들어 있다.




▲1999년 6월 30일 새벽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에 있는 청소년 수련시설인 놀이동산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취침 중이던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 등 23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의혹만 난무, 보이지 않은 커넥션


  의혹들을 따라가다 보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는 썩은 민낯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대한민국이 후진국형 재난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반복적인 행태로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의 이면에는 어두운 환부가 도려내지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세월호 사건의 의혹의 중심에는 해경과 청해진해운이 있다.  


  먼저 해경의 해군 진입 저지와 민간해양구조업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로의 구조 우선권 문제다. 국회 국방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이 밝힌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초기대응 시스템에서 모든 권한을 가진 해경은 언딘의 우선 구조를 위해 해군을 비롯한 모든 민간잠수사의 접근을 통제했다. 구조작업의 체계화를 위해 통제는 어느 정도 불가피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민간업체인 언딘에게 전권을 부여하기 위해 보다 전문적인 구조대로 평가받는 SSU(해난구조대)와 UDT(해군특수전전단)의 접근을 막았다는 부분은 납득하기 힘들다. 더욱이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언딘 역시 구조작업을 위한 업체가 아닌 시신 인양 업무를 위해 파견됐다고 밝힘에 따라 해경이 초기부터 생존자의 구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최초 신고 이후 진도해상관제센터(VTS)와의 교신 내용과 현장의 경비정과의 교신 녹취 역시도 한참 뒤에 공개함에 따라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편집본을 공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현장의 구조동영상 역시도 사건 발생 이후 13일 만에 공개됐다. 해경 경비함 123정의 직원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촬영한 해당 동영상에 따르면, 16일 오전 9시28분부터 11시18분까지의 생존자 구조 모습 중 선장 이준석(69)씨를 비롯해 선원들의 탈출 장면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늑장 공개 의혹에 대해 해경 측은 “해당 함정이 연일 해상 수색을 했고 자체 자료전송시스템이 없어 보관 중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리적 근거가 비약하다는 비난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던 선장 이 씨를 수사관 집에서 숙박하도록 지시하고 선원들 역시도 유치장이 아닌 근처 모텔에서 묵게 했다는 점 또한 지나치게 편의를 봐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인다. 그밖에도 현장에서 수사를 지휘한 이용욱 정보수사국장이 과거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 해운에 몸담았다는 이력이 공개되면서 해경과 청해진 해운간의 모종의 관계에이목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테러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미국은 사고 현장에 911 기념관을 건립해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썩은 뿌리는 반드시 도려내야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그리고 결코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부는 관련자 처벌 및 위기관리시스템 개선책으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 재편 등을 내놨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총리실 산하의 국가안전처 신설을 통해 부처간 분산돼 있는 재난업무를 총괄하는 범정부적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마저도 또다시 탁상공론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는 자조섞인 우려가 지배적이다. 앞서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씨랜드 화재,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까지 대한민국이 끊임없이 재난사고에 몸살을 앓아왔지만 현장책임자의 부재 등 근본이 바뀌지 않는 대책은 소중한 생명을 어김없이 앗아갔기 때문이다. 14일 열린 안전행정부 산하 중앙민관협력위원회 재난 긴급대응단 세월호 침몰 구조활동 보고회에서 한국구조협회 정동남 회장은 “국가안전처를 만든다고 하는데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만들고 있기 때문에 안된다. 현장 중심으로 가기위해서는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며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저 자문기관일 뿐 현장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참고사항일 뿐이다”라고 꼬집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두고 다양한 원인이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는 “기다리라”는 선내방송을 되풀이 한 선장과 선원들을 손가락질 했고, 다시 누군가는 사고의 직접적인 요인인 선박의 과적과 개조를 통틀어 우리 사회의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지적하기도 한다. 기업과 정부와의 결탁과 유착, 비리의 그림자를 짚어내는 이들도 있고, 인간의 생명보다 경제적인 이익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기업 임원을 마피아에 빗댄 신조어인 ‘관피아’, ‘해피아’라는 신조어까지 쏟아질 만큼 잘못된 풍토와 폐단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외침도 들린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가올 지방선거에는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안전’ 공약들이 홍수같이 국민들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들 앞에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딛고 일어서야 한다. 잘못된 관행을 뜯어 고치고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보고 주인의식을 가진 선진 국민으로 다가올 대한민국을 가꿔가야 한다. 기적을 바라는 노란 리본이 상징성을 부여받은 하나의 캠페인이 아닌, 책임감과 현실의 색채를 가진 변화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간절한 마음이 모아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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