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갈등의 시대를 낳다
전쟁, 갈등의 시대를 낳다
  • 김진완 기자
  • 승인 2014.05.2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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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위의 남과 북. 불안한 통일을 바라보다
[이슈메이커=김진완 기자]
[Monthly Focus] 호국보훈의 달 


전쟁, 갈등의 시대를 낳다

평행선 위의 남과 북. 불안한 통일을 바라보다



곧 만나겠지 하며 전쟁으로 헤어졌던 형, 동생은 노인이 되어 돌아왔다. 지나간 세월의 고통만큼이나 다시 만난 이산가족의 얼굴에는 주름이 파였다. 남북한의 비극적인 역사 6.25 전쟁 이후 65년이 흘렀지만 이산가족의 주름 깊이만큼 분단은 눈에 보이는 상처 말고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깊은 흔적을 우리에게 남겼다. 전쟁이 남긴 갈등의 시대.




▲정전협정문에 서명하는 클라크 장군


끝나지 않은 전쟁, 정전 61주년

  ‘정전’은 전쟁 중이던 양측의 군사령관이 적대행위를 일시적으로 중지하기 위해 맺는 군사협정이다. 사격을 중단한다는 의미로 전쟁이 끝났음을 뜻하는 ‘종전’과는 전혀 다른 뜻이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정전이 오늘날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남북한의 관계는 정전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철로를 지나는 기차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1951년부터 시작된 휴전회담은 2년 동안이나 계속됐다. 역사상 가장 길었던 휴전회담이다. 1951년 여름 이후 전쟁은 38선 근처에서 교착 상태에 빠지며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의 유엔주재 대표 말리크를 통해 정전이 제의됐고,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는 정전회담을 북한에 제의했다. 북한 측이 수락함으로써 정전회담이 진행되었지만, 군사분계선 설정에 대한 합의와 포로 송환에 대한 문제가 난항을 거듭하면서 회담은 영토를 확장하려는 남북한의 치열한 고지전 양상으로 2년간이나 지속됐다. 1953년에 6.25전쟁을 끝내겠다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취임하고, 소련도 정전에 미온적이던 스탈린이 사망하며 정전협상에 대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치열한 공방 끝에 7월 27일 유엔군과 공산군은 전격적으로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1,129일간의 피와 눈물이 담긴 포성이 멎는 순간이었다. 일반적으로 정전협정 후에는 종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듬해 195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19개국이 참가한 종전회담이 열렸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됐다. 북측은 대한민국 대표가 정전협정문에 사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협정과 협상 대상에 대한민국을 제외해야 한다고 여전히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2013년 3차 핵실험 이후에는 정전협정을 아예 백지화 선포를 한 상태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의 화약을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남북한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화약을 제거하지 못한 대가로 오늘날까지 남북한은 전쟁에 대한 막대한 심리적, 경제적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국방비 지출 세계 10위의 대한민국

  2012년부터 미국과 유럽의 긴축재정으로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이 14년 만에 줄어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군사연구소인 스톡홀름 국제 평화연구소(SIPRI)의 통계에 의하면 2012년 세계군사비 지출은 전년대비 0.4% 감소에 이어 2013년은 무려 1.9%가 줄었다. 지난 몇 년간 유럽, 북미에서는 무기 구매가 줄어든 반면 아시아와 중동 지역의 무기 구매는 증가했다. 2013년에 SIPRI의 전 세계 국방비지출 동향 보고서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2013년에 전년대비 2계단 상승하여 10위를 기록하였다. 국방비 지출로 세계 10위권이다. 북한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2013년 국가 예산 가운데 무려 16%를 국방비로 지출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국방비 예산은 10년 주기로 두 배씩 늘어나고 있다. 1992년 국방비는 8조 4,100억 원, 2002년에는 16조 3,640억 원, 10년 후인 2012년에는 32조 9,576억 원이었다. 2014년 국방비는 전년대비 4% 증가한 35조 7,057억 원이다. 2013~2017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요구안의 연도별 국방예산은 매년 증가해 2017년에는 45조 4,703억 원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의 5년간 국방예산 요구안 총액은 199조 1,991억 원이다. 이 중 3천톤급 잠수함, 공중급유기, 차기전투기 등을 도입하는 등의 무기 도입예산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장비를 유지하는 데 비용만 해도 12조 9천억 원에 이른다. 물론 지난해 7월 국방부가 발간한 ‘국방비, 대한민국의 생존과 국민 행복을 지키는 원동력’ 홍보 책자에 따르면 동북아 4개국 중 가장 적은 수준이라고 하지만 상대적 비교 측면이 아닌 경제의 규모와 절대적인 비용의 측면에서 남북한의 대립에 인한 과도한 군비 경쟁체제에 도달한 것만은 사실이다.



▲출처 :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


끝없는 북한의 도발과 기약 없는 이산가족

  경제적 지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심리적 비용도 부담하고 있다. 지난 4월 크기 2m, 무게 15kg의 작은 비행물체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바로 ‘무인기’이다. 이 작은 비행물체가 북한의 것임이 밝혀지고 그동안 청와대를 비롯한 우리 영토 곳곳을 관찰한 사실이 확인되자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무인기에 폭탄을 장착하면 공격용으로까지 활용 가능하다는 소식에 고가의 최첨단 군사시설을 갖추고도 주민들의 우연한 발견으로 무인기를 인지한 국방부에 대한 질타와 함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이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본 북한의 방사포와 장사정포의 공격 위협과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북한의 불바다, 전면공격태세 등의 자극적인 발언들과 도발에 충분히 시달려왔다. 하지만 국제사회를 뒤흔드는 북한의 화두는 바로 핵이다.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이래로 북한은 나라의 운명을 핵에 걸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009년과 2013년에 2, 3차 핵실험까지 진행하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대립을 더욱 증폭시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핵불용 정책에 맞물려 북한의 도발 수준은 한층 강화됐다. 최근 들어 북한이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시기에 4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관찰돼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심화할수록 시급히 해결해야 할 분단의 아픔도 있다. 바로 이산가족이다.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신년사를 통해 설 명절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됐다. 이산가족 상봉은 헤어진 가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인도주의적 측면과 남북한의 대결국면의 갈등을 완화하고 남북한을 심리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의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부터 이어진 대립 국면으로 3년 4개월 만에 이루어진 상봉은 이산가족 상봉의 대상자 80%가 80, 90대의 고령자라는 점에서 상봉의 기쁨만큼이나 시사점을 남겼다. 국민들을 눈물짓게 하는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이산가족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이게 되어 '13년까지 총 18차례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산가족의 상봉이 남북한의 정세에 따라 정례화되지 않고 이산 1세대의 고령화와 사망으로 이산가족문제 해결 및 교류 확대가 더욱 시급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종북논쟁’

   북한이라는 존재 자체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심어 놓았다. 바로 이른바 ‘종북논쟁’이다. ‘종북논쟁’이 본격적으로 가열된 것은 17대 대선 직후였다. ‘종북’이라는 말은 민주노동당 내 논쟁의 산물이다. 2010년 10월 <경향신문>이 ‘민노당은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는 제목의 사설이 게재되면서 ‘세습 논쟁’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던 ‘종북’이라는 단어는 북한의 세습을 인정하는가. 인정하지 않는가에 많은 정치인이 논쟁에 참여하며 세습논쟁이 ‘종북’ 프레임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종북논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논란과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와 내란음모 사건을 거치면서 정치, 사회의 전면에 등장했다. 소수 진보 정당의 정체성 논란이 보수진영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면서 무차별적 낙인찍기와 진보와 복지, 정권의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각종 현안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이에 사회 전문가는 우리사회에 건전한 비판과 ‘종북논쟁’을 구분하고 후진적 사상검증으로 이어지는 과도한 색깔론은 지양해 올바른 토론 문화가 형성되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제 ‘종북’이라는 시선은 우리 사회 한복판을 가르는 프레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 민족, 두 개의 나라, 다른 시선

  남과 북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 면에서 2000년 6.15선언은 상호 체제를 인정하는 의기투합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6.15선언 제2항에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 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나가기로 했다’는 남북의 공통분모를 인정하게 된 역사적인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6.15선언과 10.4선언의 바통을 이어받지 않고 또다시 대결구도가 형성되어 남북한의 화려한 약속들은 정치적 수사로만 남게 되었다. 2015년은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남북한 주민들은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2012년 KBS에서 합법적으로 외국을 방문한 북한 주민 102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97명이 통일을 매우 바란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통일은 원해도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낮게 보는 의견이 높았다. 함경북도 출신의 북한 주민은 “우리는 통일이 어렵다고 말한단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잘 살기 때문에 말로만 통일하지 실제 통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단 말입니다”라고 답했다. 또한, 통일의 방식도 59명이 사회주의를 41명이 중국식 일국양제를 선택했다. 통일은 원하지만 우리와는 분명한 시각차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2014년 3월에 전국 남녀 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우리 국민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이 통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령별로는 50대와 40대 응답자의 80% 이상이 통일이 필요하다고 대답했고 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는 20대는 57.1%에 그쳤다. 지난해 통일교육협의회가 전국 중·고등학생 20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27.1%는 통일과 북한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답변했고 북한 주민에 대한 부정적 답변도 73.8%에 달했다. 통일이 필요 없다는 답변도 25.7%였다. 우리나라에서 젊은 층을 대상으로 북한의 각종 도발과 사건으로 통일에 대한 필요성과 북한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통일이라는 지향점은 같지만 서로 결이 다른 남과 북. 전쟁이 낳은 필연적 갈등의 시대. 알렉산더는 풀 수 없었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렸지만, 통일은 칼을 내려놓고 오랜 시간 매듭의 처음과 끝을 찾아 풀어가야 할 우리의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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