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오 대위를 죽음으로 몰고 갔나
무엇이 오 대위를 죽음으로 몰고 갔나
  • 김진완 기자
  • 승인 2014.05.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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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는 군 성범죄, 제도적 개선 시급
[이슈메이커=김진완 기자]

[Society Focus] 군 내 성범죄



무엇이 오 대위를 죽음으로 몰고 갔나


대책 없는 군 성범죄, 제도적 개선 시급


지난 2013년 10월, 육군 15사단의 여군 장교 오 대위가 자살한 사건이 밝혀지며 많은 사람의 분노를 샀다.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지나쳤을 이 사건은 지난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손인춘 국방위원이 오 대위 유족에게 받은 휴대 전화 문자메시지를 공개해 그 전모가 드러났다. 미혼의 오 대위가 상관이었던 노 소령에게 자살 직전까지 10개월간 지속적인 인격 모독적 언어폭력과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 생활을 편하게 해주겠다’는 등의 노골적인 성 상납 요구와 성추행에 시달렸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끊이지 않는 군 내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


  국방부는 오 대위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지난 2월 강간, 성희롱 등 성(性) 군기 위반사건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 관련자들을 엄중 처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육군 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피고인 노 소령의 혐의 사실은 물론 피해 여성장교가 그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됐다는 점까지 모두 인정하면서도 강제 추행의 정도가 약하고 초범이라는 이유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스스로 세운 원칙을 한 달이 채 넘어가기 전에 무너트리는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노 소령은 시종일관 자신의 무죄를 강변하며 자신을 같은 혐의로 고소했던 다른 여군이 있음에도 반성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사건을 은폐, 조작하려 했던 군부대의 모습이었다. 증거 채택을 위해 군사법원에서 소속 부대에 제출 명령한 부대출입기록이 ‘위병소 출입관리 체계상의 계정 삭제로 기록이 없다’며 거부당했다. 이후 유족들이 가지고 있던 진짜 부대출입기록을 군사법원에 제출하며 노 소령이 제출한 오 대위 관련 부대출입기록은 야간근무 기록이 없는 조작된 증거로 밝혀졌다. 하지만 재판의 증거채택 시기가 지나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사건을 의도적으로 은폐, 조작하려 했다는 의혹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군의 후진적 성 인식


  군대의 성범죄는 상명하복이라는 군 조직의 특성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어 일반 성범죄보다 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국방부에서 발표한 2011~2013년간 군 검찰에 의한 군 내 성범죄 사건 통계자료 325건을 분석해 본 결과는 달랐다. 성범죄의 유형으로는 297건은 추행, 21건은 성폭행이었다. 하지만 이는 군조직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은폐, 축소된 사건이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325건 중에 군 검찰이 불기소한 사건은 168건으로 ‘기소유예’가 93건으로 가장 많았고 ‘공소권 없음’이 72건이었다. 이처럼 유, 무죄를 따지기도 전에 종결처리 되는 사건이 전체의 절반을 넘었고, 민간보다 10% 높은 수치이다. 특히 남성 중심의 군 조직 사회에서 여군에 대한 성범죄는 사각지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여군 86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상당수 여군이 최근 1년 간 직접 성희롱 피해를 경험(11.9%, 102명)하거나 주변의 여군이 성희롱 피해를 겪은 것을 인지(41.3%, 355명)했으며, 부대 내에서 성희롱과 관련한 고충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을 알고있다(17.2%, 148명)고 답변했다”라며 군 내에서 여군의 성범죄 위험이 심각하다고 보고했다. 반면 성적 언동에 따른 피해를 경험한 338명 중 38.2%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거나 이후에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응답하였고, ‘여성고충상담관’이나 ‘인권상담관’에게 알렸다는 응답은 5.2%에 불과했다.





제2의 오 대위가 나오지 않도록 강력한 처벌 필요


  군 내 성범죄율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성범죄가 공론화된다더라도 피해자를 확실히 보호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황에 피해자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과 군의 폐쇄적 조직문화 앞에 무력감을 느껴 피해 사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에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군사법원 현안보고에서 서영교 의원은 김관진 국방장관에게 “그동안 몇 번이나 질의했고 문제를 제기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대책이 없느냐, 대책도 없고 강한 처벌도 없으니 군 내 성범죄가 만연되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에 김 국방장관은 또다시 예방적 차원의 성범죄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수동적인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수직적 질서에 의한 성범죄’ 성격이 강한 군 내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민정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병영 내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근절하기 위해선, 군대 내 고충처리 제도가 아니라 군대와는 독립된 민간 차원의 독립 기구를 통해 성폭력이나 성희롱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충상담관’ 이였던 오 대위를 보더라도 군 내 성범죄와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한 ‘고충상담관’ 제도가 얼마나 유명무실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여군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독일의 경우, 군에서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군이 국방감독관이 조사에 나서고 조사 결과는 민간 검찰에게 넘겨져 엄격한 재판을 받게 된다. 군인을 시민으로 보고 군대에도 동일한 법체계를 적용하는 것이다. 피해자 보호 역시 철저히 이루어지며 상관이 사건에 개입하는 것도 금지하여, 2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은 민간 차원의 독립 기구가 자정 능력을 상실해 보이는 군 내 성범죄에 대한 유일한 대책으로 보인다. 제2의 오 대위가 나오지 않도록 군의 다짐이 아니라 이제는 적극적인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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