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ion Politics I] 붕당정치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Faction Politics I] 붕당정치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4.05.2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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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치의 모순된 모습, 그 해답은 과거에 있다
[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Faction Politics I] 현대 붕당정치




붕당정치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현대정치의 모순된 모습, 그 해답은 과거에 있다



한 나라의 정치는 그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나라는 역사에 도태되기 마련이다. 나라의 정치가 위태롭고 불안정해지면 국민은 물론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그 때문에 정치의 발전은 한 나라의 발전과 긴밀한 관계에 놓여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에서 정당이 사라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대통령 권력 속에 박혀있고, 민주당은 수권능력 절대결핍상태이며, 급기야 진보정당은 위헌정당으로 제소 당했다. 정당이 정치주체로서 정치중심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청와대 권력과 원로 및 외곽 단체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여야 간의 정당정치경쟁시스템이 사라진 것이다. 



정치적 순기능을 했던 역사적 실체


  붕당 정치의 ‘붕당’은 한자로 ‘朋(친구 붕), 黨(무리 당)’으로, 이는 ‘서로 뜻이 같은 사람끼리 뭉친 당’을 의미한다. 즉 붕당정치란 ‘이해관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당을 만들어 상대 당과 조화를 이루며 나라의 발전과 백성들의 생활 안정을 위하여 노력하는 정치’를 말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붕당 정치’를 말하면 ‘나라를 어지럽힌 정치’라는 인식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붕당 정치가 갖는 본래의 의미가 시간을 거듭할수록 심하게 왜곡되었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붕당 정치가 계속되며 자신이 속한 당의 이익만을 위하여 진흙탕 싸움을 벌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초기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초기의 붕당 정치는 각 당이 서로 합리적인 정책을 내놓고 바른 정치를 펼치기 위해 노력했으며, 붕당의 결성은 결국 정치를 활성화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러한 조선 중·후기의 붕당정치는 오늘날 정당정치 형태와 비교해 볼 때 많은 유사점을 가진다. 조선 중엽에 이르게 되면 정치적 결단은 ‘공론’(公論)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 성립되었다. 충북대학교 이재룡 교수는 “조선 중·후기에 붕당정치가 형성된 배경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성리학적 이념으로 무장된 사림(士林)들에 의한 도학적(道觀)인 정치이상이다. 붕당정치는 붕당을 중심으로 국정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조선 후기의 정치 운영의 한 양태로서 조선왕조에 특유한 공론정치의 역사적 유형”이라고 말했다. 붕당정치의 의의는 그것이 조선반도에서 새롭게 모색되고 검증을 거쳐 비록 일시적이나마 순기능을 했던 역사적 실체로서 현대 한국적 정치모델로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양사상학계의 한 전문가는 “현대의 국가정치체제는 정당 정치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근대적 간접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 정치로의 전환을 말한다”며 “국회의원은 정당의 대표자이자 국민의 대표자이다. 때문에 각 정당들은 서로 간에 견제와 비판을 통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 점이 조선의 붕당정치에서 발전시켜야 할 중요한 정치원리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조선의 200여 년을 이끈 붕당정치


  조선시대 당쟁에 관해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속된말로 ‘당파 싸움만 하다가 나라를 망쳤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비판의 강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역사 속에서 붕당의 개념은 지금의 파벌과 다르다. 물론 이념·혈연·학연·지연 등에 얽혀있었지만, 상대를 인정할 줄 알았고, 허무맹랑한 인신공격을 하지 않았다.


  조선 후기 숙종 때의 일이다.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 선생은 건강관리 차원에서 향부자(사초과 식물)를 아이 오줌과 함께 자주 먹었다. 그러다 한번은 급체해 생명이 위독해져 그의 아들을 시켜 의술이 뛰어난 미수 허목에게 처방을 받아오라 했다. 미수는 남인의 영수로 우암에겐 최대의 정적(政敵)이었다. 아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우암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미수는 우암의 아들에게 ‘비상(극약) 석돈’이라는 처방전을 적어줬다. 우암의 아들은 괘씸하다고 생각했지만 우암은 처방대로 약을 가져오라 했고, 그 약으로 병이 나았다. 미수는 우암이 평소 오줌을 마신다는 걸 알고, 식도에 소금기가 있으니 극약을 써도 괜찮을 거라 판단했던 거였다.


  당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있었던 유명한 일화다. 흔히 조선시대의 당쟁을 요즘의 ‘패거리’ 혹은 ‘파벌’과 동일시하는 이들이 많지만, 일화에서 보듯 엄연히 달랐다. 이념이 다른 정적이라도 상대가 군자로 칭송받는다면 신뢰하고 예를 다했다. 김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 원장은 “조선시대의 당쟁을 제대로 알려면 당쟁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며 “당쟁은 ‘원래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던 기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때는 왕권에 도전하는 역적으로 몰려 처벌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인재를 골라 쓰면 붕당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논리가 나오면서 ‘사림정치(붕당정치)’가 들어섰다. 이러한 정치시스템이 조선 후기 200여 년을 이끌었다. 


  이렇듯 순기능이 많았던 당쟁이 ‘나라 망치는 주범’으로 바뀐 이유는 붕당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라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역사학계의 한 전문가는 “상대방을 인정해야 대립을 해도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정치다”라며, “한쪽이 너무 세면 균형이 깨지며 상대도 인정하지 않는다. 서인들이 집권할 당시 일부러 남인을 둔 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라고 주장한다. 마치 현대 정당정치의 모순된 모습에 대한 해결책이 조선시대부터 제시되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대목이다. 



눈과 귀를 닫아버린 정당정치


  오늘날의 대한민국 정당 정치는 마치 조선시대의 붕당정치와 흡사하다. 과거 붕당정치는 명보다는 암이 극명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며, 이는 곧 조선의 병폐라고 인식되고 있다. 결과론적으로 붕당정치는 세도정치로 변모되며 조선을 부패의 끝으로 몰아놓았지만, 영조와 정조때의 붕당정치는 ‘탕평책’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남겼다. 하지만 무오, 갑자, 기묘, 을사로 이어지는 사화(士禍)는 결코 좋은 모습을 남지는 못할 것이다.


  과거부터 이어진 예송논쟁, 환국, 사도세자사건, 가톨릭 박해사건 등의 당쟁은 특정한 주제에 대한 정당성을 위한 것보다는, ‘좌와 우’,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단순한 힘 싸움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는 대립하는 당과 무조건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을 견지함으로, 정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당쟁의 시작은 15세기부터 이어졌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행태를 살펴보면, 과거로 다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이다. 역사학계의 한 전문가는 “붕당정치가 파국을 불러일으켰던 역사를 우리의 눈으로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21세기 정치는 과거를 거울로 삼지 않고 과오를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종북좌파, 보수꼴통이라는 은어가 등장하게 된 이유 역시 눈과 귀를 닫아버린 현대 정당정치의 이면이 아닐까 생각된다. 프랑스 정치학자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고 말했다. 국민의 손으로 선택된 정치인들에게서 현시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모습이 반영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신념과 가치관, 국민이 지지하는 당파와 이념 모두 국가와 국민을 위한 자신들의 선택이지만, 국민대통합을 위한 획일성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학계 전문가는 “다름을 인정하고 경청하되 모든 것에 옳은 판단이 바탕 되어, 실질적인 국익으로 이어지는 것이 진정한 국민대통합이 아닐까”라며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국민의 잣대이다”라고 주장했다.


  최근 정당정치 전개에서도 한 당의 일방적인 독주보다는 건전한 비판세력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당의 이합집산이 선거를 앞두고 당선을 위해 잠시 제휴했다가 또 갈라지는 행태라든가, 정책이나 이념의 비전 없이 지역색에만 편승하려는 점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문제이다. 조선 중기 이후 정치사를 좌우했던 붕당정치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현대 정당사의 문제점을 단계적으로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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