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과제 III] 무분별한 취재와 언론보도, 또 한 번의 상처를 남긴다
[한국 언론의 과제 III] 무분별한 취재와 언론보도, 또 한 번의 상처를 남긴다
  • 김재훈 기자
  • 승인 2014.05.23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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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재훈 기자]



무분별한 취재와 언론보도, 또 한 번의 상처를 남긴다


국민의 알권리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의 인권과 사생활도 지켜줘야




칼럼 /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김종호 변호사



지난 3월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판사 배호근)는 지상파 방송, 일간지, 종편 방송이 ‘고종석 사건(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보도하면서 피해를 입힌 가족에게 모두 7,800만원을 배상하고 관련기사 일부를 삭제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공익 보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국민의 알권리와 무관한 피해자의 사적 영역을 침범한 것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을 내렸다. 





언론의 보도가 어떻게 달라져야할지 되짚어 봐야할 때


  세월호 침몰 사고를 다룬 언론의 보도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다. 사건 자체만으로도 우리 국민에게 큰 상처를 남겼는데, 이번 사태에 대한 과도한 취재경쟁과 부정확한 보도는 국민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피해자 가족들이 받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해 부정확하고 자극적인 보도로 비판받은 언론이 조금씩 자정 노력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매번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 같은 우리 언론의 보도행태는 계속돼 왔다. 


  이 같은 피해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고종석 사건’ 언론보도로 인한 2차 피해소송 판결의 의미를 되짚어 보며, 국내 언론의 보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김종호 변호사와 짚어 본다.





‘고종석 사건(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은 많은 국민들이 아직 기억하리라 생각되는데요. 이후 피해자와 가족들이 보도로 인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번 언론보도 2차 피해 소송은 어떤 계기로 진행하게 되었는지요.


  2012년 어느 여름날 밤, 한 어린이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성폭행 피해자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성인 남자의 손에 무참히 성적으로 농락당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피해자와 그 가족은 이 사건 범죄의 악몽이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치유가 되리라 위안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이러한 위안은 더 잔인한 가해자들에 의해 처참히 무너졌습니다. 언론의 자유과 국민의 알권리라는 부끄러운 변명 아래 피해자 가족의 집 위치가 위성사진으로 공개되고,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보호받아야 할 집 내부의 모습은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되어 온 국민에게 공개되었습니다. 피해 어린이의 꽃다운 모습이 담긴 사진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써내려간 일기장은 부모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피해자 어린이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로 보도되었고, 피해자 어린이의 어머니는 게임중독자, 엄마로서 자격이 없는 여자로 비난받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더 큰 비극은 시작되었습니다. 성폭행의 악몽은 피해자 가족 내부의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나, 언론의 보도로 인한 피해는 피해자 가족의 노력과 상관없이 외부에 의해 잊혀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해야 합니다. 이 사건과 관련한 언론보도로 인한 2차 피해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것은 변호사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운 좋게도 본 변호사에게 변호사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뿐입니다.




무엇보다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된다는 것을 명확히 판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언론보도 2차 피해 소송의 판결 요지는 무엇인가요?


  이번 판결은 피해자의 아버지를 알콜중독자라고 보도하는 등 명예를 훼손한 경우,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가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이라 하더라도 범죄사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언론보도는 사건 경위를 설명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성질의 사실이 아닌 경우 사적 인물의 사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된다는 것을 명확히 판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폭행 관련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범죄의 원인 또는 경위와는 무관한 피해자나 그 가족의 인적사항 등에 관한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태도입니다(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제14부, 2013가합52016, 2013가합50737, 2013가합50317 판결).

  나아가 언론사가 보도한 피해자 가족의 집 위치나, 집 내부 사진 등 피해자들의 사생활의 영역에 관한 사항은 이 사건 범죄의 경위를 설명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공개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에 해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범죄 자체는 공적인 사안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피해자들은 이 사건 범죄에 있어 사적 인물일 뿐 공적인 인물에 해당하지 않고 이 사건 범죄로 말미암아 비로소 공적 인물의 지위를 취득하게 된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설령 공개된 사항들이 일반 대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관심이 피해자들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인격적 이익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요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결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며, 앞으로 우리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기존 언론보도의 2차 피해와 관련 명예훼손 판결의 경우 대부분 명예훼손 성립은 인정하면서도 위법성 조각을 사유로 언론사에 면책을 부여해왔습니다. 이에 명예훼손의 피해자들은 피해를 구제받을 방법이 딱히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언론보도라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뒷전으로 밀려 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경우 사생활 침해의 인정 범위에 대한 기준을 완화하여 민사적으로나마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과, 언론보도에 있어서 명예훼손을 중심으로 위법의 고려 사항으로 삼아왔던 과거의 언론보도의 행태에서 진일보하여 언론사로 하여금 국민의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 등 인격권 또한 엄격히 보장하여야 한다는 경종을 울리고 있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기존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 등 인격권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이익형량과 2차 피해를 중심으로 하는 일반론을 기준으로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 등 인격권 침해를 인정해온 반면, 이번 판결은 다음과 같이 좀 더 구체적이며 진일보한 판시를 하고 있는바 그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것입니다. 적어도 이번 판결로 인해 언론사의 자정 노력을 촉발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번 세월호 사태에서도 사고 초기에 피해를 겪은 당사자나 가족들에게 상황에 맞지 않은 질문이나 인터뷰를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언론에 의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2차 피해와 관련한 언론보도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중의 욕망과 언론의 욕심이 빚어낸 관음증 때문입니다. 언론은 피해자의 신상이나 개인 사생활의 영역 등 범죄의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필요치 않는 부분들이 첨가될수록 대중들은 열광하고 기사의 클릭수는 늘어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 사건 범죄와 같이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사건의 경우 대중은 사소한 부분까지 알고 싶어 하고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 범죄의 예방 등 공익 차원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로 무장하고 범죄사건 피해자의 신상을 보도하고 사실을 적시한 가치 판단으로 그들의 명예를 거침없이 훼손하고 사생활을 침해하였던 것입니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언론은 권리 위에 잠자거나 잠 잘 수밖에 없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차별화합니다. 이번 언론에 의한 2차 피해 사건을 살펴보면, 언론이 보도 대상을 차별화하여 보도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2차 피해 보도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소시민이자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였던 피해자 가족은 이러한 언론의 대상 차별화에서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언론은 피해자 가족의 명예를 훼손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면서 피해자 가족이 사회적 보호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민적 관심이 지대했던 범죄사건에서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할 것처럼 판단되는 피해자 가족의 명예와 사생활을 이러한 언론의 대상 차별화에 의해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지적해 봅니다.




언론은 그 시대의 얼굴


  재난이 발생하면 각종 정보 전달 뿐 아니라 피해를 최소화하고 다른 피해를 예방하는 데 힘을 써야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다.


  지금처럼 지난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에도 일부 언론들의 오락가락하는 보도와 구조보다 언론보도를 우선시하는 모습은 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후 재난보도 준칙이 논의되면서 지난 1996년 2월에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 요강’이 개정됐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른 ‘재난방송 및 민방위경보방송의 실시에 관한 기준’에도 재난방송의 준칙과 취재 원칙이 명시돼 있습니다. 이 준칙의 첫 원칙은 보도가 정확해야 한다는 것. 또 사생활 보호를 위해 '장시간 인터뷰’나 ‘피해자의 심리적·육체적 안정을 저해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2차 피해 언론보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론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언론은 한 시대를 대변하는 얼굴이다.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도 있고, 소리 없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이번 판결과 세월호 사태로 인한 언론의 자정의 목소리에 힘입어 언론의 보도로 인한 피해자들의 2차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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