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가 곧 삶, 당신의 입맛을 사로잡다
끊임없는 도전으로 한 차원 높은 외식문화 선도하겠다
2008년 출간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책을 통해 ‘1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한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1만 시간의 노력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단순한 수학계산으로는 1만 시간은 416일 정도에 불과하지만 말콤 글래드웰이 이야기하는 것은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간 연습한’ 1만 시간이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의 일에 투자하고 노력한 결과가 결국은 성공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증명된다.
1990년대 초반, 급격한 성장을 통해 이룩한 경제 부흥은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낯설었다. 경제 규모는 눈에 띄게 성장해 선진국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평가되고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문화적 역량과 국민 생활수준은 아직 미비한 수준이었다. 이처럼 우리 스스로에게 부족했던 부분들은 외국계 기업을 통해 충당하고 있었고, 식문화도 그 중 하나였다. 불과 7~80년대까지도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우리에게 선진 식문화란 사치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요리사라는 직업이 천대받고, 무시당하던 시절 과감히 요리에 뛰어들었던 청년은 이제 국제적인 스타 쉐프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주)이케이푸드의 대표이사이자 유명 요리연구가인 에드워드 권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쉐프로 손꼽히고 있는데요. 처음 요리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 원래 꿈이 요리사였던 것은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요리사가 꿈이었던 사람이 지금은 성공한 요리사가 되었다’라는 스토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저는 그런 경우는 아니거든요. 방황하던 시기 우연치 않게 요리를 접하게 되었고, 이후 전문대학교 조리과에 입학하면서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죠. 그 전까진 요리를 배워본 적도 없었으니 막막한 건 당연한 일이었죠. 지방 전문대였으니 취업도 어려웠고요. 고민이 많았지만 ‘어차피 시작했으니 제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무급으로 리조트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고, 호텔에도 취업하게 됐죠. 이왕 하겠다고 마음 먹었으니 남들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고 싶었거든요.
○ 요리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힘든 부분은 없었나요?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굴곡은 있어왔던 것 같아요. 우선 어렸을 때는 낯선 곳에 적응하기도 힘들었고, 월세로 간신히 얻었던 지하방에는 비만 오면 온갖 집기가 둥둥 떠다니기 일쑤였어요.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언어적인 장벽과 인종 차별이 제일 힘든 부분이었죠. 말을 섞는 게 두려웠을 정도였으니까요. 요리하고 남는 시간들은 모두 공부에 투자해야 했어요. 나름 성공한 뒤 한국에 돌아와서도 힘든 일은 있었어요. 지금의 화려한 모습만 아는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사기를 세 번 연속으로 당했었거든요. 그때까지 벌었던 돈 거의 대부분을 잃었었어요. 게다가 당시 여러 가지 논란에도 함께 휘말렸었어요. 그때 한국을 떠나려고 생각도 했었죠. 외국에서 오퍼도 오고 있는 상황이라 흔들리기도 했고요.
하지만 두바이에서 저와 함께 한국에 왔던 다른 쉐프들이 한 이야기가 저를 붙잡았죠. ‘분하다. 너무 자존심 상한다’라는 이야기였어요. 칼을 꺼냈으니 무라도 썰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해본 채로 이렇게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거였죠. 그때 우리끼리 회사를 차려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저를 좋게 봐주신 지인 분의 투자로 지금의 이케이푸드를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 최근 이케이푸드를 통해서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고 계신데요. 시장의 반응은 어떤가요?
제가 여러 가지 사업하는 거 보면서 혹자들은 ‘돈 밝힌다’고 비난해요. 그러면 저는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있냐’라고 이야기하죠. 전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중요한 건 ‘어떻게 쓰느냐’인 것 같아요.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계획하고 있는 것들도 있고요.
식품사업의 경우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케이스였어요. 제가 2000년대 초반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였는데, 집 앞 슈퍼마켓에 가니까 쉐프 얼굴이 붙어있는 소스나 스프, 피자 같은 상품이 진열돼 있었거든요. 티비에서 종종 보던 유명 쉐프들이 자기 얼굴을 걸고 제품을 만드는 거였죠. 처음 보는 광경이었어요. 이 시장을 한국에도 들여오고 싶었어요. 제가 당시 그들을 보고 꿈 꿨던 것처럼 한국의 요리사들도 저를 보고 ‘나도 언젠가는 내 얼굴을 단 제품을 만들고 싶다’라는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제품을 만들면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쉐프의 요리’라는 점이에요. 공장에서 나올지언정 적어도 쉐프의 고민이 담긴 레시피로 만든 좀 더 요리다운 요리라는 거죠. 코코넛 돈까스의 경우 적절한 두께나 토핑을 만드는 데 6개월이나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최근 출시한 수비드 스테이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에요. 수비드나 분자요리 같은 분야는 아직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조리법이에요. 분자요리 기법을 시제품화 시킨 건 전 세계에서도 저희가 처음이구요. 아직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낯설어 하고 있지만 저희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조리법을 소개함으로써 우리나라 식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온숙성과 진공포장으로 육즙 손실을 최소화시키는 조리 방법이 있다’라는 지식을 알리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외식시장의 수준이 상당히 향상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 지난해 서울현대전문학교 학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취임의 소감과 학장으로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우선은 서울현대전문학교가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요리사를 배출해 낼 수 있는 학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제가 현대전문학교와 인연을 갖게 된 지도 벌써 5년이 되가는데요. 처음 오게 됐을 때 주변에서 의문을 가지는 분이 많았어요. 근사한 명패가 될 수 있는 제안을 뿌리치고 전문학교를 선택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시더라고요.
전 이곳에서 ‘절박함’을 봤습니다. 요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은 곧 열정과 노력으로 치환되기 마련이에요. 지금의 제 모습만을 보고 ‘화려함’이나 ‘명성’만을 좇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하지만 그 위치에 오기까지 거쳐야 했던 과정은 잘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여기 계신 분들은 정말 요리에 목숨 걸고 하는 모습이 있어요. 저 또한 이 분들을 보면서 배우는 점이 많구요. 이들의 열정과 목표의식을 잘 이끌어서 ‘좋은 요리사’들, 지각 있는 요리사들을 배출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
○ 부산 영화의 전당 더블콘에 오는 3월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하고 계신데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근 영화의 전당 측 보도 자료를 통해 많이 기사화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소 염려하는 내용의 기사들이 많은데 전 시각의 차이가 큰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더블콘 내부공간이 구조문제 상 ‘애물단지’ 취급을 당하고 있었는데요, 전 보자마자 엄청난 메리트를 느꼈거든요.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관광지인 부산이라는 점, 매년 10월이면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중심지, 기네스에도 등재되고 우리나라의 건축학도라면 반드시 봐야한다는 건물 중 하나인 더블콘에 레스토랑을 열 수 있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기회거든요.
물론 수많은 내부기둥이나 여러 개의 층으로 나뉘어져 있는 공간 등 구조적인 어려움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어떤 요리사가 이런 곳에 레스토랑을 열게 되는 경험을 가질 수 있을까요. 또 그냥 쉬운 빈 공간에 채우는 것보다 훨씬 스펙터클하고 재미있기도 하구요. 51%의 가능성만 있다면 시도해볼만한 도전이 아닐까요. 또한 이 장소에서 레스토랑을 오픈함으로써 전달하게 되는 메시지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장차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명소로서, 우리나라 레스토랑의 새로운 역사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요리’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먹지 못하면 살지 못하거든요.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음식’을 가지고 가장 큰 행복을 줄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요리사’이구요. 자신의 직업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했으면 합니다. 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항상 배웠으면 합니다. 누군가에겐 유명한 사람의 삶이나 책이 롤 모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우리가 생활하면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롤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항상 배울 것이 있습니다. 항상 배우는 자세로 자신에게 투자한다면 결과는 따라오기 마련이거든요. 시간과 노력의 투자는 물론이고 금전적인 투자도 필요합니다. 지속적이고 총체적인 투자만이 성공의 길을 여는 열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