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허수아비야, 소통의 불을 밝혀라!
[기고] 허수아비야, 소통의 불을 밝혀라!
  • 임성희 기자
  • 승인 2014.04.01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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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임성희 기자]

 

 

허수아비야, 소통의 불을 밝혀라!

 

 

서양화가 남궁 원

 

 

바야흐로 봄이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따스한 햇살에 숨을 쉬고 땅 속 생명의 씨앗들이 새록새록 머릴 내민다. 변함없는 자연의 이법과 질서는 수 만년 어김없이 매 해 되풀이되어 왔건 만 유독 새 봄 살랑 봄바람에 마음이 설레는 이유가 무얼까?... 각박한 세상 쉼 없이 달려 온 44년 교육자의 생에서 정년을 맞은 여유로운 한가함일까? 아니다. 30여년 허수아비를 그려 온 작가로서 나는 지금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창작열에 불타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거다. 지금이 인생1막을 내린 최고봉 정점이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다시 2막1장을 여는 그 첫 발을 내딛는 설렘이 봄기운에 취해 더 들뜬 것일 게다.

 

하늘을 쳐다보고 있자니 지나 온 과거가 스친다. 나는 1947년 11월, 경기도 가평(북면 백둔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세 살이던 1950년,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재가, 유년시절을 계부 슬하 이복형들로부터 핍박과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이를 가엽게 여긴 이웃 아저씨 손에 이끌려 나와 할머니와 보낸 어린 시절, 가평 연인산 자락의 수려한 산세와 계곡, 눈부신 대자연 속에서 나는 행복했다. 자연은 그렇게 내게 다가와 어머니가 되었다. 그 어린 시절 고통과 핍박의 아픈 기억으로부터 성장하기까지 내가 파란만장한 질곡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의 포근함 속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

 

가난한 형편에 그림에 대한 열정만으론 미술대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1968년 3월, 인천교대를 졸업하고 양평동국민학교 교사로 교육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중등미술교사 자격고시 합격 후, 중등학교 교사까지 10년의 세월 동안에도 틈틈이 작품 창작에 혼을 불태웠다. 그림은 힘들고 벅찬 현실에서 나를 지탱시켜주는 에너지원이었다. 1979년 3월, 경원공업전문대학이 설립되어 대학교수로 강단에 섰다. 이후 경원대학 합병에서 2012년 가천대학교로 합병되기까지 창립교수로서 34년을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 만 44년을 교육에 몸 바쳤다.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 온 삶, 지난 해 2월, 퇴직과 더불어 국가로부터 ‘황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 온 삶, 나의 인생 1막은 그렇게 내려졌다.

 

 

유년시절, 질곡과 가난으로 미대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던 나에게 고향 들판을 지키는 허수아비가 눈에 선명히 들어 왔다. 나에게 있어 허수아비는 고향이요, 아버지이다. 사시사철 들판에 외롭게 서 있는 허수아비! 그러나 나에게 있어 허수아비는 결코 외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바람과 구름과 대화하고 익어가는 알곡을 키우고 지켜내는 허수아비는 우리 내 인간 군상들의 삶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미술교육과)을 마치고 미술교사, 미술학부 교수로서 30여년 허수아비만을 화폭에 담아 오다보니 어느새 나에게 ‘허수아비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의 정서는 항상 작품에 투영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허수아비 속에 녹아져 있었다. 흐르는 세월, 나이를 먹어 가면서 우리 삶에 천태만상으로 펼쳐지는 희․노․애․락의 정서에 내 자신이 젖어들면서 그 강열한 느낌의 정서를 허수아비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 무렵이었다. 살아있는 물상으로 다가 선 허수아비가 진정한 삶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사람 누구나에게 점철되어 있는 에고(ego)를 극복해야 한다는 자각이 일었다. 이기적인 욕심으로 차 있는 자아를 극복하고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눈에 들어 왔다. 나를 부정하고 비우는 과정에서 화폭의 허수아비는 추상화되고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허수아비에 나름의 비움과 지킴의 철학이 반영, 투영되면서 내가 나고 자란 고향 가평에 ‘허수아비마을’을 설립했다. 17년 전의 일이다.

 

정년퇴임을 하고 뒤돌아 본 삶! 많은 사건들의 영상이 뇌리를 스쳐갔다.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사랑을 속삭이고 쌍둥이 딸, 아들을 키우던 일, 하루하루 열정의 삶 속에서 창작에 대한 고뇌의 시간들... 그 중에서도 먼저 하늘로 간 딸 송이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이 아직도 또렷하기만 하다. 어느새 인생 1막의 정점에 선 나를 보며 새롭게 펼쳐 갈 2막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간 내 삶의 여정을 성찰하고 보다 넓고 크게 펼쳐갈 여정에 가슴이 뛴다.

 

우리 사회가 갈수록 각박하다고 말한다. 음지에서 신음하는 이들, 소외되고 격리된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그들에게 희망이 무엇일까? 보듬고 안아 주어야 할 사회가 계층 간 갈등은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소통이 되지 않아 불통, 먹통의 우리 사회 과연 해법은 무엇일까?... 물이 고이면 썩고 통풍이 안 되면 곰팡이가 슬게 마련이라 하지 않았던가! 소통이 없는 곳엔 고통만이 있을 뿐이라는 어느 논객이 말이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답답한 불ㅅ그 답답함을 허수아비(虛守我非)철학으로 소통의 물꼬를 트고 정감이 오가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허수아비(虛守我非)란, 30여년 희․노․애․락 삶의 그림을 그려 오며 정립된 내면의 가치의 울림이요, 가치다. 내 안의 좋은 것은 나눔으로서 비우고 나쁜 것은 버림으로서 비우라는 비움(虛)과 이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시켜주는 사랑과 헌신, 봉사와 감사 등 여러 소중한 가치는 찾아서 지키자는 지킴(守) 그리고 손(手)에 창(戈)을 들고 있는 나(我)를 부정(非)하고 내면의 참사람과 참사랑을 일깨워 바로 세우자는 세움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이기적인 나를 탈피하지 않고서 사람과 소통을 할 수 있을까? 그늘지고 어두운 곳에서 고통 받는 이들이 눈에 들어 올 리 만무하다. 허수아비(虛守我非)로 우리 사회를 정화하는 일에 삶에 작은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 그간 내재된 열정을 화폭에 담아 허수아비만을 그려 온 작가의 삶에서 이제 이 사회와 세상을 향한 ‘허수아비철학’으로 인생 2막1장을 열고자 한다. 허수아비가 이 사회 어둠을 밝히는 소통의 불씨가 되었으면 한다.

 

<경력>

現) 서양화가 / 남송미술관장

前) 가천(경원)대학교 미대교수, 사)경기도예총회장, 대한민국미술대전심사위원

• 개인전 / 예술의전당 미술관(2014), 인사아트센타 등

• 파리시 순회전 및 북경, 상해 등 초대전

• 마니프국제아트페어 특별상

• 한국미술작가상, 골든아이아트페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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