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etition I] 끝 모르는 우리 사회의 경쟁구도, 어디까지인가
[Competition I] 끝 모르는 우리 사회의 경쟁구도, 어디까지인가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4.04.01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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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Competition I] 사람 간의 경쟁

 

 

끝 모르는 우리 사회의 경쟁구도, 어디까지인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삶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수 억분의 일의 경쟁을 뚫고 살아남는다. 태어나기 위해 엄마 뱃속에서 경쟁하고, 태어난 후에는 곧바로 남들보다 뛰어나기 위해 선행학습을 하며 친구들과 경쟁하고, 커서는 입시경쟁, 입시 후에는 취업경쟁, 심지어 더 좋은 묏자리를 선점하는 경쟁 등에 시달리는 모습은 경쟁이 이미 한국사회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음을 시사한다. 경쟁이란, 같은 목적을 두고 서로 이기거나 더 큰 이익을 얻으려고 겨루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 간 서로 경쟁하며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러한 의미의 경쟁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이를 위한 경쟁인가, 아이(I)를 위한 경쟁인가 

지난겨울, 서울시 내 한 유명 유치원 앞은 원아 등록을 위해 몰려든 학부모로 장사진을 이뤘다. 각 유치원 등록이 선착순으로 이뤄진다고 알고 있던 일부 학부모는 ‘줄서기 아르바이트’까지 고용하며 유치원 등록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유치원 측은 ‘선착순 등록이 아닌 공개추첨으로 원아를 모집하라는 교육청 지침이 내려왔다’며 입장을 바꿨고, 추운 날씨에 줄을 서며 기다렸던 학부모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상황이 이렇지만, 서울을 포함한 전국의 국·공립 유치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 같은 상황은 유명 사립 유치원은 물론 교육비가 최저 10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고 커리큘럼도 풍성한 국ㆍ공립 유치원에서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종일반을 운영하는 곳도 있어 맞벌이 부부에게는 비용과 효율적인 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3년 3월 기준 유치원 입학연령 어린이는 24만 7359명인데, 이중 유치원에 들어간 건 37.8%인 9만 3450명(공립 1만 3400명·사립 8만 50명)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대학입시만큼 치열한 유치원 입학경쟁은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유치원 입학 경쟁률이 날로 높아지면서 어린이 10명 중 6명은 유치원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경쟁률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때문에 최근에는 유치원 추첨을 잘 받을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하는 학원이 등장하는가 하며, 좋은 유치원에 자신의 자녀를 보내는 방법에 관한 인터넷 자료들과 전문가의 칼럼 등이 즐비 하는 기이한 형태가 등장하기까지 이르렀다.

 

 

성적에 의해 ‘기회’의 평등 깨진다 

경쟁이 심해지며 가장 먼저 나타나는 문제는 교육의 문제이다. 치열한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게 되며, 이는 곧바로 사교육의 증가와 조기 유학으로까지 이어진다. 경쟁에서 낙오될까 두려워 벌어지는 입시 경쟁은 이제 초등학생을 넘어 유아기부터 조기 교육을 시작하는 지경에 다다랐으며, 그에 따라 사교육비 지출이 가계를 압박하는 비정상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계 입시 문화에서의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병폐는 상대평가 제도가 도입되며 더욱 격화되었다. 교육계의 한 전문가는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다른 사람들까지 열심히 노력한다면 경쟁에서 ‘패배’하게 되는 모순된 구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이 높은 환경에서는 그만큼 좌절로 인한 패배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라고 말했다. 물론 상대평가 제도가 항상 문제만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교사의 재량에 맡기거나 충분한 논의와 점검을 거쳤어야 할 문제였다. 실제로 몇몇 성적이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중,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서로 적대시하여 교과서를 몰래 숨기거나 노트를 훼손하는 사례도 생겼다. 사실상 공교육이라는 제도를 통해 협력해야 할 친구가 아닌 밟고 올라서야 할 적으로 돌려세우는 지나친 경쟁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SBS 박진홍 PD는 "2010년 통계로 청소년들이 1년에 300명 넘게 자살하고 있다. 그중 절반이 넘는 이유는 학업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일상이 돼버려 그냥 그대로 묻히고는 한다. 부모를 그렇게 만든 사회가 일차적인 문제다. 사회가 아이의 삶의 저하, 자존감의 훼손, 학교폭력 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문화평론가는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의 성적을 확인할 기회는 많지만, 인성을 파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높은 성적의 학생은 상대적으로 신임받고, 낮은 성적의 학생은 설령 공부와 상관없는 일일지라도 높은 성적의 학생에 비해 덜 신임 받는다. 이 말은, 성적에 의해 '기회'의 평등이 깨진다는 의미이다. 민주주의를 기초로 가르쳐야 하는 학교에서 성적으로 인해 평등이 무시된다면 모순일 것이다”라며 무한경쟁 속에서 모순된 교육계의 형태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생존을 위한 경쟁, 동료가 아닌 적 

‘샐러던트(Saladent)’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용어는 영어로 봉급생활자를 뜻하는 샐러리맨(Salaryman)과 학생을 뜻하는 스튜던트(Student)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신조어(新造語)로 ‘공부하는 직장인’을 의미한다. 직장에 몸담고 있으면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거나 현재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더욱 높이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러한 신조어가 등장한 것은 결국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는 직장인의 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한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학이나 자격증 취득은 물론 다른 분야의 전문지식을 섭렵하지 못하면 더 이상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무서운 현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더욱 치열해져 결국은 평생직장보다는 평생직업을 찾기 위해서 평생 공부해야만 하는 사회가 온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한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문구가 유행했다. 그렇다면 '열심히 공부한 당신'에게 주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어학원에 다니는 한 직장인 A씨는 “용산의 한 컴퓨터업체에 다니면서 더 안정적인 직장으로 이직하기 위해 1년 전부터 샐러던트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직업을 갖게 되더라도 영어는 기본이라는 생각에 무작정 학원에 등록했다. 회사 일을 마친 저녁 시간은 물론 주말까지 학원을 집처럼 드나들며 살았다”고 밝혔다. 그는 회식이나 업무를 핑계로 공부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 회사에 영어공부를 시작했다며 일부러 더 소문을 내고 다녔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1년 내내 퇴근 시간이 되면 당당하게 인사하고 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이제 어느 정도 영어에 자신감이 생긴 그는 현재 외국계 회사로 이직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지금 공부하고 변화에 대비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듯이 직장인들은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학습하고 있다.

이는 곧 연봉제로 대표되는 성과주의 임금체계의 이면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성과주의 임금체계는 최근 수년간 기업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급여제도다. 5천 명 이상 대기업 약 80% 이상의 직장인이 연봉제를 택했고,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이 시행 중이거나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기업들이 앞다퉈 연봉제를 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해, 직원 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이를 통해 능력·성과주의 문화를 확산하고, 기업 생산성을 동시에 높이자는 복안도 깔려 있다. 직장인 처지에서도 외면할 일만은 아니다. 어차피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기업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송민수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은 “성과주의 임금체계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학계나 전문가 집단에서도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면서 “연봉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노사 간 오해가 쌓이게 되고, 오히려 기업 시너지 제고 등의 측면에서 역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플리커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 ‘경쟁’

우리 사회에서의 경쟁은 경제활동이 끝난 은퇴 후에도 지속된다. 최근 ‘신빈곤층’이라는 용어가 사회 전반에 퍼져있으며, 2008년 이후 신빈곤층의 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이는 ‘실버푸어’라는 새로운 형태의 빈곤층을 탄생시켰는데, 실버푸어란 ‘한평생 일하고도 가난하기만 한 노년층’ 세대를 지칭한다. 국민연금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지난해 우리나라 노인가구의 35.1%는 소득수준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절대빈곤’ 상태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빈곤률 14.1%보다 2.5배나 높은 수치다. 이 같은 실버푸어의 양산은 저축 여력이 없고 부채만 쌓이는 현상을 겪고 있는 노년층이 증가한 탓이다”라고 말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두 노인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실행해가는 영화 ‘버킷리스트’를 보면, 노년의 삶은 낭만과 역동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소원을 ‘해치우기’ 위해 주인공들은 타지마할에서 세렝게티까지 종횡무진하고, 카레이싱에 문신, 프로펠러 비행까지 도전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상일 뿐 현실은 정반대다. 대부분 노인들은 여행경비는커녕 생활비 걱정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쟁은 죽음의 순간까지 계속된다. 신재영 감독의 ‘자살도 경쟁이다’라는 단편영화의 두 주인공은 유서를 남긴 채 동시에 빌딩 옥상에서 투신한다. 모든 걸 놓겠다는 선택을 하고 뛰어내렸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몸이 땅바닥에 닿기 전까지 둘은 서로 엉겨붙어 치고받는다. 서로 ‘내가 먼저 떨어질 거야’라고 고집하면서. 죽기 직전까지 경쟁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블랙코미디다. 늙어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경쟁사회로 내몰리고 있는 현대사회 노년층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정재학 자유논객연합 부회장은 “경쟁은 산 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죽어서도 경쟁을 한다. 누가 더 좋은 묘지를 차지하는가 하는 명당 차지하기부터, 누가 더 오래 이름을 남기는가에 이르기까지 경쟁은 죽어서도 변함없는 본능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의 원인을 따져 보면 심화된 경쟁이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대중적인 요법들을 동원하더라도 근원적인 문제가 치유되지 않는다. 교육 전쟁, 취업 전쟁, 빈부의 격차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문제의 원인부터 밝혀 순차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캐나다 윈저 대학의 서상철 교수는 “경쟁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진단을 사회가 공유하는 데에서부터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나면 경쟁 완화에 필요한 여러 조치를 사회적인 합의 하에 도출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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