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표정과 몸짓 하나에 담긴 정치적 함의
[이슈메이커] 표정과 몸짓 하나에 담긴 정치적 함의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8.08.0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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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표정과 몸짓 하나에 담긴 정치적 함의

 

회담 전후 프로토콜이 역사의 물줄기 바꾸기도

 

ⓒPixabay
ⓒPixabay

 

외교는 흔히 ‘프로토콜’이라고 할 만큼 의전(儀典)이 중요하다. 동선, 경호, 보안뿐 아니라 음식이나 의상과 태도, 심지어 고개를 숙이는 각도 등 작은 몸짓 하나도 의미를 담고 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 자체가 내용을 뛰어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최근 국제 정세가 숨 가쁘게 흘러가면서 각국 정상들이 외교 무대에서 보여주는 행동들에 담긴 ‘정치적 함의’를 분석하고자 하는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의전 정치의 집합체, 북·미 정상회담

 

프로토콜(protocol)은 원래 기후변화협약의 대명사인 ‘교토 프로토콜’에서 보듯 의정서나 협약서를 뜻하는 외교용어이지만 국가 간의 의례나 약속을 지칭하는 말로 더 자주 이용된다. 지난 6월 열린 북·미 정상회담은 의전 정치의 집합체와도 같았다고 평가받는다. 비핵화라는 민감한 의제가 다뤄진데다 표정과 몸짓 하나가 잘못된 정치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김씨 일가의 오랜 집사’로 불리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은 회담 이전부터 치열한 기싸움과 조율 과정을 거쳤다.

 

특히 관심을 모았던 점은 두 정상의 예측 불가능성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악명 높은 악수’로 대표되듯 그간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강조해 온 미국의 외교사에선 전례가 없었던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역시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깜짝 월경을 유도하거나 박력있는 포옹으로 친분을 나타내는 등 스킨십을 통해 호방한 정상국가 리더의 모습을 보이며 외교무대에서 주목받았다. 이처럼 경호에서부터 두 정상의 숙소와 입장 방식, 만찬의 메뉴와 테이블 크기, 좌석 배치나 심지어 20cm가량 차이나는 신장의 차이를 고려한 사진 촬영에 이르기까지 북·미 회담에서 나타날 의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잘 구성된 연출 통해 만난 트럼프와 김정은

 

실제 회담 현장은 의미만큼이나 의전에 있어서 세심한 모습이 돋보였다. 제3국에서 진행되는 정상회담인데다 현실적으로 북한과 미국의 국력 차이와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나이 차이가 적지 않지만 이러한 점이 부각되지 않도록 신경 쓴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이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만남 순간부터 확인됐는데, 두 정상은 어느 한쪽이 먼저 회담장에 도착해 상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동시에 입장해 자연스럽게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연출했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은 간간히 김 위원장의 팔과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 쓰다듬는 모습을 보였지만 악명 높은 ‘공세적 악수’라기보다는 ‘대등한 관계’로 보이게 하려는 배려의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배려는 회담장 안에서도 재연됐다. 외교 프로토콜에 의하면 정상회담이나 외교장관 회담에서 두 사람이 앉거나 걸을 때 그들의 정면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 왼쪽이 ‘상석’으로 개최국이 오른편, 초청국이 왼편에 자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독정상회담을 할 때 김 위원장에게 왼편 자리를 양보하고 자신은 오른편에 자리했다. 두 정상의 회담장 도착 장면도 한편의 잘 짜인 시나리오를 보는 듯 했다. 숙소에서 출발은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였지만 회담장 도착은 김 위원장이 앞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두 정상의 회담장 도착 시간 등도 정교하게 시나리오를 짜서 훈련한 것 같다”며 “미리 양 정상이 훈련과 준비를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전반적으로 두 정상과 수행원들이 우왕좌왕하지 않았고 행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듯 했다”고 평가했다.

 

냉전 해소한 ‘세기의 연출’

 

의전이 외교 무대에서 큰 빛을 발휘한 것은 1972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의 베이징 회담이 손에 꼽힌다.

 

두 사람의 만남은 헨리 키신저 대통령 국가안보 보좌관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를 주축으로 한 양국 실무진의 끈질긴 ‘물밑 협상’ 끝에 이뤄졌다. 회담 전년도에 미국 탁구팀이 중국을 방문해 중국 탁구팀과 경기를 가진 것을 계기로 두 나라 분위기를 먼저 무르익게 만들었다. 이후 날짜 선정부터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2월 21일에 닉슨 대통령이 방중한 시기에 대해서도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계절의 길목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가, 차후 저우언라이 총리의 요청으로 조정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는 같은 기간 대만에서 예정된 장제스 총통의 5선 달성 여부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닉슨 대통령과 저우언라이 총리의 악수도 상징적이었다. 앞서 저우언라이 총리는 1954년 제네바 국제회의장에서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에게 악수를 청했다가 거절당한 기억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닉슨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기까지 저우언라이는 꾹 참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미국의 정상이 먼저 악수를 청하는 ‘세기의 순간’이 탄생하자 저우언라이 총리는 손을 꽉 잡고 “당신과의 악수가 세계 최대의 대양(태평양)을 건넜다. 오랜 불통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회담의 성공으로 냉전 시대의 긴장은 확연히 완화되고 ‘전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지난 싱가포르 회담 속에 담긴 사소한 모습들에 담긴 의미가 시간이 흘러 어떤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될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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