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를 위한 정부의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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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광 기자
  • 승인 2014.02.0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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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이진광 기자]

[Economy Focus]

신규 순환출자 금지법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부의 한 수

 

재계의 순환출자 꼬리는 잘릴 것인가

 

 

순환출자는 재벌들이 계열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동원하는 변칙 중의 하나로서, 3개 이상의 계열사가 연쇄적으로 출자해 자본금을 늘려가는 것이다. 순환출자의 문제는 계열사의 장부상 자본금은 큰 폭으로 늘어나지만, 실제로 자본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있다. 결국 한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출자한 다른 계열사까지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그동안 이러한 순환출자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었지만, 얼마 전 국회에서 신규 순환출자 금지법이 통과되면서 재계의 반응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문어발식 경영’의 구조적 악순환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순환출자의 개념은 단순하다. A, B, C 3개의 계열사가 출자 관계에 따라 A→B→C→A로 연결되는 형태로서 여기에서 핵심은 A사에서 출발해 몇 단계를 거쳐 다시 A사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순환출자에 참가하는 계열사가 많을수록 그 단계는 더욱 늘어나 순환출자의 규모나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순환출자의 단순하지만 복잡한 구조는 개념상의 혼란에 기인한다. 순환출자 비판론자들은 순환출자가 가공자본을 창출하기 때문에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9년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 방침의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도 초점은 가공자본 억제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공자본이 순환출자 고유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석해 발표하면서 비판론자들의 주장에 반박했다. 실제로 가공자본은 분식회계 같은 범죄적 사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합 재무제표를 보면 누구나 가공자본을 뺀 실제 자본 상황을 투명하게 알 수 있다. 가공 의결권은 가공자본에서 파생되는 문제다. 가공자본은 결합 재무제표에서는 제거되지만 의결권은 그대로 남게 된다. 여기서 대주주의 소유권과 지배권의 괴리 문제가 발생하지만 이 역시 순환출자의 고유한 문제점이라고 할 수 없다. 이때 ‘환상형 순환출자’라는 다소 어색한 용어가 등장한다. 순환출자라는 말 속에 이미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온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환상형 순환출자’는 불필요한 동어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순환출자 고유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이 용어를 더 선호한다. ‘환상형 순환출자’를 살펴보기 위해 지배주주가 10억 원, 소수 주주가 40억 원을 출자해 만든 A사가 있다고 가정하자. A사가 자본금 50억 원을 출자해 B사를 설립하고 B사가 50억 원을 출자해 C사를, 다시 C사가 50억 원을 A사에 출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놀랍게도 A사 자본금이 5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늘어나고 지배 주주의 지배권도 20%에서 60%로 높아진다. C가 A에 출자한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궁극적으로 지배 주주가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지배 주주가 실제로 지불한 비용은 전혀 없게 된다.

 

 

재벌의 탐욕인가, 자본주의의 부산물인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경영 환경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재계 3위 대우그룹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은 순환출자가 기업의 방어기제라는 점을 설명한다. 비판론자들은 순환출자를 지배주주의 ‘탐욕’과 연결시키지만,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에 적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2006년 연세대 경제학과 신현한 교수의 ‘기업 지배 구조의 개념, 대규모 기업집단 체제의 현황과 정부의 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 5개의 기업에서 5% 이상 순환출자가 5건 발견됐으나, 2005년에는 10개 기업 14건으로 증가했다. 신 교수는 “순환출자가 많은 기업집단으로 확산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밖에도 그룹 분할과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인수·합병(M&A) 등이 순환출자의 확산 요인으로 꼽힌다. 신 교수는 “일부 시민 단체의 주장처럼 순환출자가 단순히 대주주의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활용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계열 분리, 부실기업 인수, 민영화 기업 인수 등 순환출자가 등장한 역사적 과정을 무시하고 무조건 이를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그룹을 해체하라는 말과 같다”며 과연 그게 국민경제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걱정했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법’ 여야 한목소리로 환영

재벌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올해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 가운데 하나로, 작년 상반기에 국회를 통화한 재벌총수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과 함께 경제민주화 2대 핵심법안으로 꼽혀왔다. 개정안은 자산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집단에 대해 계열사끼리 신규 순환출자를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법이 순환출자 고리로 연결돼 있는 삼성, 현대차 등 재벌의 지배구조에 곧바로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신규 순환출자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기 때문에 순환출자를 통한 총수의 지배력 확장과 경영권 승계 관행 등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또 동양 등의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신규 순환출자를 통해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거나, 개별회사 부실이 대기업집단 전체로 확산되는 등의 폐해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야는 재벌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개정안에 대해 모처럼 한목소리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함으로써 순환출자를 통한 지배력 확장 등 부작용을 방지하고 대기업 집단이 무리한 확장보다는 내실 있는 성장에 주력할 수 있도록 유도한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라고 밝혔다. 민주당 역시 “재벌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는 순환출자는 편법적 경영권 승계, 부실 계열사 지원 관행 등으로 경제민주화를 가로막는 수단이었다”라며 개정안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한 이번 개정안에서 빠진 기존 순환출자의 해소에 관해서도 지속적으로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 측은 “기존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근본적 개선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라며 이를 위해 추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민주당은 신규 순환출자금지뿐 아니라 기존 순환출자 금지까지 입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면서 신규 출자만을 금지한 개정안에 아쉬움이 있다고 평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평가는 엇갈려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 정무위가 의결한 가운데 보수·진보 시민단체별로 각기 다른 논평을 내놨다.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에서는 일단 법안 의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추후 기존 순환출자까지 제한할 것과 철저히 금산분리 등 경제민주화 방안의 후속조치가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논평을 통해 “신규 순환출자 금지 관련법이 의결된 점을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기존 순환출자를 인정한 점, 시대적 요구인 경제민주화 입법의 전반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여전히 미진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기존 순환출자까지 금지하기 위해 30대 기업집단에 대한 모든 형태의 순환출자를 전면 금지하고 이를 위해 사전적 규제인 ‘매각 강제형’과 사후적 규제인 ‘의결권 규율’ 방식을 동시에 적용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것을 국회에 건의했다. 반면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는 논평을 통해 “순환출자 전면금지에서 한걸음 물러났지만, 통상임금 확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순환출자 금지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바른사회는 이번 개정안에서 기업의 인수·합병이나 증자, 구조조정 등 불가피한 사유로 인한 신규 순환출자는 규제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순환출자가 결국 투자의 전단계라는 것을 감안하면 주요기업의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다. 또 바른사회는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자국의 기업들에게 불공정 경쟁을 야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정안의 기대효과는 미지수

이번 개정안은 기존 순환출자를 인정하면서 삼성, 현대 등 12개 그룹이 경영권 방어 비용으로 약 38조원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CEO스코어는 기존 순환출자가 금지된다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순환출자 고리의 마지막 단계 기업이 보유한 1% 이상 지분을 출자 기업이 자사주로 매입한다고 가정해 비용을 계산했다. 이 같은 기준을 적용했을 때 12개 그룹이 39개 순환출자 고리의 마지막 단계를 끊는데 필요한 비용은 모두 38조 45억원으로 추산됐다. 한편, 한국투자증권은 신규 순환출자금지법이 대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법안 개정안이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의 대기업 내 계열사 간 신규 순환출자만을 규제하고 있다”며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순환출자구조를 유지한 그룹이 이를 해소해야 하는 강제성은 없다고 말했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3년 4월 기준 대기업의 소유 구조 중 지분율 1% 이상인 순환출자 수는 124개로 이 가운데 56%(69개)는 2008년 이후 발생한 순환출자였다. 그러나 삼성, 현대 등 주요 그룹에서는 신규 순환출자가 발생하지 않아 개정안의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연구원은 “이번 개정안은 순환출자 자체를 금지한다기보다 부실 계열사에 대한 자금지원, 편법 상속을 규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기업투명성이 높아진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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