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외교전…일본, 야스쿠니 참배로 ‘자살골’
전방위 외교전…일본, 야스쿠니 참배로 ‘자살골’
  • 조재휘 기자
  • 승인 2014.03.0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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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바마 모시기’에서는 승리, 실리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해야
[이슈메이커=조재휘 기자]





전방위 외교전…일본, 아베 총리 야스쿠니 참배로 ‘자살골’


한국 ‘오바마 모시기’에서는 승리, 실리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해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는 4월 말 한국을 공식 방문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첫 방한이다. 백악관은 이번 방한에서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고 북한 비핵화 공조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만 2박 3일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한국과 일본을 각각 1박 2일씩 방문하는 걸로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잇따른 일본의 우경화 정책으로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화된 시점에서 한국을 빼고 일본만 방문할 경우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여론이 미국 내에서 제기된 데다, 아베 일본총리의 우경화 행보에 대한 부담과 우리 정부의 설득 노력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오바마의 일정을 바꾼 한국의 외교력

한국의 외교력이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에 집중된 것은 작년 11월부터다. 당시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 계획에서 한국은 제외된 상태였다. 동북아 3국 가운데 오바마가 일본만 콕 찍어 방문하는 건 한국 정부에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아베의 우경화 행보에 제동을 걸어야 할 미국이 되레 정상외교로 이를 추인하는 모양이 되는 점도 문제였다. 한국은 물밑에서 총력전을 벌였지만 백악관의 침묵은 길었다.

  이런 분위기를 바꾼 중요한 사건이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였다. 과거사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에 양비론적인 시각을 보이던 오바마 정부는 이때 이후로 갈등 원인이 일본에 있다는 한국의 논리를 수긍하기 시작했다. 오바마가 한일 갈등의 민감한 시기에 일본만 방문하는 것이 가져올 후폭풍도 심각히 고려됐다. 이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연내 한국 방문 희망 의사를 밝히면서 백악관의 선택지는 더욱 좁아졌다. 오바마가 시 주석보다 먼저 한국을 찾지 않으면 동북아에 혼란스런 메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백악관은 2월 12일 성명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이 4월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방문한다"며 한국을 순방국에 포함시켰다. 아직 자세한 일정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일본이 요구한 국빈방문 일정인 2박 3일을 쪼개 일본과 한국을 1박 2일씩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의 일정 조정은 아베의 우경화 행보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않겠다는 미국의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미 안보동맹 태세와 북핵 및 도발에 대한 빈틈없는 공조를 강조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따라서 이번 방한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과거사에 대한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 우회적 압박을 요구하는 등 한일 관계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 2월 13일 방한한 케리 미 국무장관도 박 대통령을 예방하고 우리 정부의 역사 인식에 힘을 실어줬다. 당시 인터뷰를 통해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복잡하고 어려운 역사문제 등에 있어 지금까지처럼 강하고 효율적인 동맹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또 윤병세 외교장관을 만나 한일 과거사 갈등과 남북 고위급 접촉 결과 등을 심도있게 논의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결정에 대해 “우리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을 환영하며 금번 방한이 한·미 동맹의 발전과 한반도·동북아·범세계적 문제에 대해 양국 정상간 심도 있는 논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결정은 오바마 대통령의 4월 아시아 순방 일정을 놓고 한일 양국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친 결과다. 오바마 대통령이 결국 한국도 방문하기로 결정하면서 청와대와 외교부는 ‘한일 외교전의 승리’라며 자축하는 분위기다. 







2박 3일에서 1박 2일로…서운함 드러내는 일본

반면 일본은 한국 정부가 얄궂다는 반응이다. 최소 2박3일의 국빈 일정을 잡아놓고는 ‘역사 논쟁에도 미·일동맹은 건재하다’는 것을 안팎으로 널리 과시하려던 아베 내각으로서는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기시다 후미오 외상이 ‘전세기 외교’까지 동원하며 워싱턴을 공략한 마당에 최종 결론이 ‘1박2일 실무 방문’이라면 꽤나 당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일동맹이 한·미동맹보다 한 수 위라고 믿어온 일본이기에 더욱 그렇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4월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에 관해 일본 언론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방문의 여파로 예정에 없던 방한(訪韓)이 결정됐다고 2월 14일 분석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14일 "한국 방문은 당초 예정에 없었는데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워싱턴의 풍향이 변했다"고 보도했다. 도쿄신문은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의 대립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일본을 편들었다고 한국이 해석하는 것을 미국이 피하고 싶어했다"고 결정의 배경을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 방문 결정에는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에 대한 불신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다.

  보수성향의 산케이(産經)신문은 일본이 왕실 만찬이 포함된 국빈방문으로 일정을 준비하며 일본에서 2박 이상을 머물라고 요구했지만 "한국이 일본에 대항해 비집고 들어오는 모양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을 강하게 요구했고 미국이 수용해 일본 체류가 단축됐다"고 보도했다.요미우리(讀賣)신문은 "당초에 상정하지 않았던 한국 방문을 짜 넣은 것은 냉각된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해석했다. 






동해병기, 세계유산 등재 둘러싼 외교전도 치열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을 대상으로 벌이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외교전은 ‘오바마 대통령 모시기’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백악관이 성명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을 발표하기 일주일 전, 미국 버지니아주(州)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 병기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주 하원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버지니아주 하원은 2월 6일(현지시간) 리치먼드 소재 의회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티머시 휴고 공화당 의원이 발의한 '동해병기'법안(HB 11)을 표결에 들어가 찬성 81, 반대 15라는 압도적 표차로 가결했다. 앞서 같은 내용의 법안이 상원에서도 가결 처리된 바 있어 의회 절차는 완전히 마무리됨에 따라 테리 매콜리프 버지니아 주지사만 서명하면 최종 확정돼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일본으로서는 최근 버지니아주 동해병기법안 의회 통과를 비롯해 대미 외교전에서 잇따라 타격을 입은 모양이 됐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이런 일본의 처지를 빗대 "아베가 야스쿠니 참배로 자살골을 두 개나 먹었다"는 말도 한다.

  이에 일본은 구사카 스미오 일본 뉴욕 총영사가 동해 병기 법안을 추진 중인 뉴욕주 상.하원 의원들에게 직접 반대 편지를 보내는 등 동해 병기 저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편지를 쓴 날짜는 지난 11일.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10일 기자회견을 열자 바로 다음 날 반대 로비에 착수한 것이다. 버지니아주에서 동해 병기를 막지 못한 외교전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번엔 일찌감치 조직적인 로비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에 따르면 구사카 총영사는 편지에서 "미 국무부와 유엔이 이미 일본해라는 명칭만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해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확립된 명칭"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동해 병행 표기의 부당함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원들 사무실엔 일본인들의 항의 메일도 쇄도하고 있다. 

  지난 1월 일본 정부가 지난달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추진 중인 규슈와 야마구치현의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과 관련한 외교전도 치열하다. 일본이 등재를 추진하는 산업현장에는 조선인 4700여명이 노역한 나가사키조선소와 노역자 122명이 목숨을 잃은 미쓰비시 그룹의 해저탄광이 있던 하시마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 일본은 한국 등 주변국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비공개로 등재를 신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4일 방한 중인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일본 측이 우리 국민이 강제 징용당한 아픈 역사가 서린 규슈ㆍ야마구치 근대 산업유산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은 유산 등재의 기본 정신에 반한다”며 유네스코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이에 대해 보코바 사무총장은 “세계유산 등재는 관련국을 분열과 갈등이 아닌 통합으로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윤 장관은 우리나라가 세계유산위원회에 진출한 사실을 상기하면서 “인류가 함께 누리고 보호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들이 등재될 수 있도록 위원국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해 일본의 등재추진을 저지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인 강제징용자들이 피땀을 흘리다 목숨을 잃기도 한 산업 현장을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려고 하는 데 대해 한국 정부가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힘으로서 위안부 문제와 동해표기에 이어 다시 한·일 간 외교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형식상은 승리, 실리를 내줘야 할 수도

이렇듯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외교전이 전방위적으로 벌어지는 가운데, 미국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까지 바꾼 한국 정부의 외교력은 일단 칭찬할 만한 일일 것이다. 일각에서 지적하듯 이번 결정을 미국이 한·일 외교전에서 한국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일본만 방문할 경우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 측 주장을 용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우리 측 주장이 먹힌 셈이다. 하지만 지나쳐서는 안 될 대목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확인하는 오바마의 당초 순방 일정에 한국이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순방에서 오바마는 미국의 아시아 중심축이 일본이라는 점을 재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형식을 양보하는 대신 최대한 실리를 챙기려 들 수 있다. 대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확실한 지지는 물론이고 헌법개정에 대한 이해까지 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오바마의 방한을 얻어 낸 대신 미국에 실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정상회담에서 다룰 현안 가운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과정 문제가 포함된 것이 이런 우려를 키운다. 미국이 말하는 FTA 이행과정 논의란 곧 한국시장 개방을 다루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순방을 둘러싼 한일 외교전을 한국의 승리로 보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여기에서 나온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오바마 대통령의 4월 방한은 외교적 승리인 동시에 만만찮은 부담인 게 사실이다. 흔히 얘기하듯 ‘공짜점심은 없는 법’이다. 자칫하다가는 원론적인 외교적 수사만 오가는 가운데 실리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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