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법에 빠졌던 17년, Adios Yuna
아름다운 마법에 빠졌던 17년, Adios Yuna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4.03.03 1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4 소치올림픽서 마지막 무대 펼친 김연아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아름다운 마법에 빠졌던 17년, Adios Yuna

2014 소치올림픽서 마지막 무대 펼친 김연아


국제대회 메달리스트조차 배출해보지 못하던 ‘변방’ 한국 피겨에 쏟아진 ‘축복’이 바로 김연아였다. 그녀의 출현과 놀라운 활약은 비단 피겨스케이트의 역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심장에 강한 울림을 남겨놓았다. 김연아는 2014 소치올림픽 마지막 갈라 무대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이날 그녀는 에이브릴 라빈이 부른 ‘이매진(imagine)’에 맞춰 호소력 짙은 연기를 펼쳤다. 이매진은 전설적 밴드 비틀즈의 존 레넌이 1971년 베트남 전쟁 당시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 작곡한 곡으로, 그녀의 연기와 어우러져 테러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전 세계를 울렸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상상해 봐요”라고 시작되는 노랫말에 맞춰 김연아가 빙판을 활주하자 모두들 숨 죽여 무대를 감상했고, 기도하듯 손을 모으는 동작으로 연기가 마무리되면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감동적인 메시지와 연기가 어우러진 무대를 보며 우리는 생각했다. ‘이보다 아름다운 선수가 스포츠 역사에 다시 나올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피겨 여왕’ 김연아(24)가 약 17년의 피겨 인생을 뒤로하고 땀과 눈물이 서린 은반 위를 떠났다. 김연아는 21일 새벽,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2014 Sochi Winter Olympic)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에서 쇼트, 프리 합계 총 219.11점을 받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러시아 선수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 홈 어드밴티지 적용으로 금메달을 내주며 올림픽 2연패는 실패했지만 김연아는 경기가 끝난 직후 인터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해 만족스럽다”라며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마지막 무대를 은메달로 마무리했지만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피겨스케이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김연아는 훈련장도 없는 ‘불모지’였던 한국 피겨스케이팅계에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기적을 일궜다. 김연아 덕분에 피겨스케이팅은 우리에게 친숙한 스포츠가 됐고 그녀의 환상적인 연기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피겨 불모지에 피어난 꽃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과 만난 것은 운명적이었다. 김연아는 2010년 10월 출간한 자서전 ‘7분의 드라마’에서 처음 피겨를 접했을 당시 상황을 “세렌디피티. 우연을 붙잡아 행운으로 만드는 것. 누구에게나 우연을 가장한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을 붙잡아 행운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라고 표현했다. 6살이던 1996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찾아간 과천 빙상장에서 처음 피겨를 접한 김연아는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게 된다. 당시 김연아는 고모가 선물했던 낡은 빨간색 피겨 부츠를 신고 초등학생 언니들과 어울려 피겨스케이팅을 즐겼다. 현재 김연아의 코치인 류종현 코치는 김연아의 재능을 발견하고 피겨스케이팅으로 입문시킨 당사자다. 처음에는 피겨스케이팅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그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미셸 콴(Michelle Kwan, 미국)의 모습을 보고 올림픽 무대를 꿈꾸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든 운동이 그렇듯 김연아 역시 지금의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성공’이라는 단어 뒤에 항상 따라오는 수많은 좌절과 실패라는 그림자 속에서 그가 혹독한 훈련을 참아내고 10년이 넘는 인고의 시간을 거칠 수 있던 원동력은 어머니 박미희(올댓스포츠 이사)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사춘기가 찾아왔던 초등학교 6학년 때 매일 빙상장과 학교만을 오가야 하는 선수 생활이 힘겨워 피겨스케이팅을 그만두려 했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숱한 부상과 고통을 참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세계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묵묵히 기틀을 마련했다.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김연아는 초등학교 때부터 전국 동계체전 등 각종 국내 피겨스케이트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일찍부터 재능을 보여주었고,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터로서는 처음으로 12살에 트리플 점프 5종을 모두 완성했다.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인 2002년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 트로피 대회 노비스 부문에서 우승했고, 2003년 크로아티아 골든베어 대회 노비스 부문에서도 우승하며 국제 대회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2003년인 중학교 1학년 때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일생일대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와의 만남
 2004년 출전한 ISU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김연아는 첫 출전에도 불구하고 파이널라운드까지 진출하며 은메달을 획득했고,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트 사상 유례없는 기록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다. 그리고 김연아는 평생의 라이벌이 될 아사다 마오를 만나게 된다. 당시 아사다 마오는 어린 나이에 최고난이도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며 주니어 대회를 모두 휩쓸고 일본 피겨스케이팅의 미래로 주목받고 있었다. 2005년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출전한 아사다 마오는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었고, 동갑내기인 김연아에게는 난공불락의 경쟁자였다. 김연아는 자서전에서 아사다 마오를 처음 만난 순간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와 비슷한 체형에 같은 나이, 공식연습 때도 마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나 가볍게 점프들을 성공시켰고 실수가 거의 없었다. 왜 하필 저 아이가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에게 있어 최고의 경쟁자였고 또 동료였다. 김연아는 앞서 여러 번의 인터뷰에서 “아사다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것이다. 서로 피하고 싶은 존재지만 그 때문에 동기부여가 됐기 때문에 고마운 선수이다”라며 라이벌 아사다 마오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아사다 마오 또한 “김연아는 대단히 훌륭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주니어 시절부터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런 점에서 나도 성장할 수 있었다. 힘든 점도 많았지만 스케이트 인생에서 하나의 좋은 추억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로가 최고의 경쟁자였고 또 동료였기에 경쟁하며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두 선수는 수많은 대회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된다. 그리고 김연아는 점점 성장하며 2006년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 아사다 마오를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룬다. 그렇게 같은 꿈을 위해 나란히 달려오던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때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올림픽 무대에서 김연아는 자신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뽐냈으며 세계 최고 신기록 점수인 228.56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사다 마오 역시 개인 최고점인 205.50점을 기록했지만 김연아와는 23.06점의 큰 차이를 기록한다. 올림픽에 앞서 김연아는 “피겨는 기록경기가 아니다. 완성도에 신경쓰겠다”고 했지만, 그녀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고통의 시간과 함께 써내려간 기록들
2006년 11월 처음 출전한 시니어 대회인 ISU 그랑프리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3위 입상과 이후 ISU 그랑프리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 대한민국 최초 1위를 차지한 김연아는 2007년부터는 주요 훈련지를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토론토 크리켓 스케이팅 & 컬링 클럽’으로 옮기고 훈련을 시작한다. 이후 부상과 같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으나, ISU 그랑프리 시리즈 및 세계 선수권, 4대륙 대회 등에서 우승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 
  그는 2003년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 금메달 16개를 비롯해 은메달 7개, 동메달 2개를 차지했다. 또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그랜드 슬램(세계 선수권, 4대륙 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 동계올림픽 우승)을 달성했다. 2006년 12월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을 시작으로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금메달까지 이 모든 것이 그녀가 10여 년 동안 이룬 업적이다. 그 중 백미였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쇼트프로그램인 ‘제임스 본드 메들리’와 프리프로그램인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 음악에 맞춰 환상적이고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펼쳐, 세계 신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자신의 꿈이었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채점제 도입 이후 여자싱글선수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김연아는 100년이 넘은 피겨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선수로 꼽힌다. 데뷔 후 참가한 모든 국제대회에서 입상했고, 11번의 세계신기록 경신, 공인국제대회 200점 최초 돌파 등 전 세계가 주목하는 피겨스케이팅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이번 소치올림픽 대회에서의 스케이팅 연기 이후 해외 각국의 언론과 전문가들 모두 입을 모아 김연아를 피겨스케이팅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극찬했다. 선수로서의 마지막 무대를 끝내고 은반에서 내려올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메달 색깔과 상관없이 뜨거운 박수와 눈물로 김연아를 보냈고, 그녀 역시 만감이 교차하는 듯 17년을 함께 해온 류종현 코치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김연아의 파란만장한 피겨 인생은 금빛보다 더 찬란한 은메달로 마무리됐다.






피겨여제의 아름다운 뒷모습

지난 2010년 밴쿠버올림픽 이후 김연아는 유니세프의 국제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공익홍보영상과 뉴욕 유엔본부의 기념행사에 참가했다. 그리고 TIME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과 미국 여성 스포츠 재단의 ‘올해의 스포츠 우먼’으로 선정되어 2010년을 빛낸 유명인사들과 함께 시상식에 참가하기도 했다. 
  김연아는 여러 활동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피겨 꿈나무를 위해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으며, 공연 수익금을 희귀병을 지닌 어린이들에게 기부했다. 뿐만 아니라, 2010년 1월에는 지진 피해로 신음하고 있는 아이티를 위해 1억이라는 큰 금액을 구호 자금으로 기부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같은 해 4월에는 아이스쇼 수익금 중 일부를, 8월에는 미주 동포 후원재단의 ‘자랑스런 한국인상’ 상금 1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리고 성탄절을 맞아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후원금을 전달하는 등의 선행을 이어왔다. 2011년에는 일본 대지진 피해를 어린이들을 위해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 상금을 기부했고, 2013년에는 태풍 피해를 입은 필리핀 구호기금으로 10만 달러를 전달했다.

  김연아는 마지막 무대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심판진들의 석연찮은 판정으로 올림픽 2연패 달성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 세계 각국의 언론과 그의 팬들에게는 영원한 ‘피겨 여왕’이자 금메달리스트로 남았다. 수많은 외신에서는 그녀를 진정한 금메달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재심사 불가’라는 ISU(국제빙상연맹)의 공식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오히려 김연아는 “점수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어떤 결과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답하며 오히려 국민들을 달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 김연아는 정들었던 은반 위를 떠났다. 하지만 그녀가 흘린 땀과 눈물, 이뤄낸 성과 하나 하나는 한국 피겨스케이팅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온 김연아는 세계 피겨스케이팅 역사에서 또 하나의 ‘전설’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8길 11, 321호 (여의도동, 대영빌딩)
  • 대표전화 : 02-782-8848 / 02-2276-1141
  • 팩스 : 070-8787-897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보승
  • 법인명 : 빅텍미디어 주식회사
  • 제호 : 이슈메이커
  • 간별 : 주간
  • 등록번호 : 서울 다 10611
  • 등록일 : 2011-07-07
  • 발행일 : 2011-09-27
  • 발행인 : 이종철
  • 편집인 : 이종철
  • 인쇄인 : 정찬민
  • 이슈메이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이슈메이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1@issuemaker.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