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계의 제로센 열풍…자신감 잃은 일본, 전투기에서 영웅의 모습 찾아
일본 문화계의 제로센 열풍…자신감 잃은 일본, 전투기에서 영웅의 모습 찾아
  • 조재휘 기자
  • 승인 2014.02.13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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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조재휘 기자]




자신감 잃은 일본, 태평양 전쟁 시절 전투기에서 영웅의 모습 찾아


소설로, 영화·애니메이션으로… 문화계 전반 제로센의 공습



▲ 일본 문화계 전반에 제로센 열풍이 일고 있다. 사진은 태평양 전쟁시기 일본의 주력 함재기였던 제로센의 모습.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3년의 일정을 일본군 자폭 특공대, 이른바 ‘가미카제(神風)’를 소재로 만든 영화 관람으로 마무리했다. 아베 총리는 작년 12월 31일 도쿄 롯폰기 한 영화관에서 제로센 전투기 조종사가 주인공인 <영원의 제로>를 본 뒤 “감동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는 난징(南京) 대학살을 부정하고, 평화헌법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 문화계의 대표적 우익작가 하쿠타 나오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베스트셀러 소설<영원의 제로>, 영화로도 대박

일본에서 태평양 전쟁 때 해군의 주력 함재기로 활약한 ‘제로센’ 열풍이 불고 있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이 격화하자 지난 전쟁 초기 ‘일당백’의 활약을 한 제로센에 대한 일본인들의 향수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열풍은 소설, 애니메이션, 영화 등 일본 문화계 전반을 아우른다.

  제로센을 조종한 가미가제 특공대원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영원의 제로>가 작년 12월 21일 개봉했다. 개봉을 하루 앞둔 20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이 영화의 원작자인 소설가 하쿠다 나오키의 인터뷰를 실었고, 산케이신문도 이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오카다 쥰이치(33)가 실제 제로센 대원이던 야나기이 가즈오미(91)와 함께 가고시마 가노야의 옛 해군 비행장을 찾는 현장을 소개했다. 영화의 원작 소설은 39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도 12월18~19일 태평양 전쟁과 제로센에 대한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영화 <영원의 제로>를 보기 위해 50,60대는 물론 20,30대 청년층까지 몰리면서 영화는 2014년 1월 6일 현재 30억엔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며 매서운 관객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작년 7월엔 일본의 저명한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로센의 설계자인 호리코시 지로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를 발표해 뜨거운 찬반양론이 일었다. 제로센 관련 전시관과 각종 서적이나 프라모델의 판매도 예년보다 느는 등 제로센 열풍이 확산되는 추세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 포스터




자신감 잃은 일본, 맹목적인 향수는 위험

일본 전문가들은 제로센에 대한 관심의 배경에 영웅을 바라는 심리가 투영돼 있다고 지적했다. 제로센 전문가인 야나기다 구니오(77)는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국제경쟁력이 후퇴하고 있어, 많은 사람이 ‘일본도 부족하지 않다’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심리가 강하다”라고 짚었다. 제로센은 비행거리와 속도를 극단으로 끌어올리려 얇은 강판을 사용하는 등 조종사의 생명과 안전을 경시한 기체였다는 점 따위를 들어 맹목적인 향수는 위험하다는 의견도 많다. 

  한편, 일본 외무성은 미국인 1000명을 상대로 작년 7~8월 벌인 ‘일본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12월 19일 발표했다. 이를 보면, 유사시에 미국이 일본을 방어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미·일 안보조약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들이 67%로 전년보다 22%포인트 하락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를 꼽으라는 질문에선 중국(39%)이 일본(35%)을 앞섰다. 이는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갈등이 심각해지자 이에 말려들고 싶지 않은 미국인들의 심리가 작동한 결과로 해석된다고 아사히 신문이 짚었다.



제로센을 닮은 일본 사회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 개봉 당시 논란이 일자 미야자키 감독은 한국 취재진과 기자회견을 갖고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는 군의 요구를 받으면서도 그에 대항해 살아온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그 죄를 같이 지고 가야 한다고 말해야 할까? 전쟁에 반대한 나의 아버지 역시 전쟁에 일조했지만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그 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그 그림자를 업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순간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쟁 초기 제로센은 뛰어난 방향전환 등으로 미국 전투기를 압도했다. 그런데 미국은 추락한 제로센을 분해하고는 더 놀랐다. 앞서 말했듯 제로센은 조종석의 장갑판과 연료탱크의 봉합장치마저 떼어내는 방법으로 기체 무게를 최소화했던 것이다. 조종사의 생명을 담보로 한 무리한 개조였다. 제로센의 최후는 비참했다. 미국 F6F 등 신형 함상전투기에 밀려 제공권을 빼앗겼고 결국에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공격용으로 전락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제로센이 일본 문화계의 주된 콘텐츠가 되어 소비자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것은 “일본의 우경화가 대중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역사의 퇴물이 됐던 제로센의 부활. 일본사회는 여전히 제로센을 닮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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