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신고자 급증, 신종 재테크 ‘파파라치’
전문 신고자 급증, 신종 재테크 ‘파파라치’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4.01.0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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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Economy Focus]

 

신종 재테크 ‘파파라치’

 

포상금 올렸더니… 탈세제보·추징 사상최대

 

3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인 이 모씨와 박 모씨는 혼수 준비를 위해서 대형 가전대리점을 찾았다. TV와 냉장고를 구입하려고 보니 6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대리점 점원은 자연스럽게 현금으로 결제하고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550만 원에 판매하겠다고 제안했다. 가뜩이나 부족한 신혼자금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현금으로 결재했다. 한국에서 살다보면 한번쯤 마주치는 지하경제의 일면이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관행이라는 말로 암묵적으로 이뤄지는 이 지하경제에 국민 대부분이 일조해왔던 셈이다. 눈앞에 이익은 법보다 앞서기 쉬운 탓이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조세형평성을 통해 세수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부담스러운 증세를 대신해 복지공약을 실천할 재원까지 마련하려는 계획이다. 최근 정비된 제도 중 특히 ‘국민참여 탈세감시제도’는 위력적이다. 소기의 성과는 벌써 감지됐다. 주워 담는 게 벅찰 정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탈세 제보가 급증하는 상황이다.

 

 

현금영수증 미발급 신고기한 5년, 신고 기준 30만 원→10만 원

지난 12월 12일 국세청에 따르면 현금영수증 신고 제도가 강화되고 의무발급 업종이 확대되면서 현금영수증 미발급 신고, 특히 포상금을 노린 ‘세파라치’의 지난해 2,144건에 그쳤던 신고 건수가 올 들어 4,000건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국세청은 현행 제도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직을 포함한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율이 30~40%에 달하는 주된 원인이 현금 거래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내년에도 의무발급 업종을 확대하는 등 현금영수증 제도의 고삐를 더 죌 것”이라고 말했다.

현금영수증 미발급 신고가 급증한 이유는 간단하다. 신고 기한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인데, 거래 후 1개월이던 것이 2012년 2월부터 거래 후 5년으로 대폭 확대됐다. 신고 기한이 늘어난 것을 사람들이 인지하면서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과거 현금영수증 미발급 신고가 상대적으로 저조했던 것은 인식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거래 후 1개월’이란 기한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이에 국세청 관계자는 “최근 병원이나 산후조리원 예식장 등에 대한 신고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진료와 각종 서비스 등을 충분히 이용한 뒤 1년 정도 지나 신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대전에 거주하는 김명희(가명·여)씨는 현금영수증 미발급 신고를 한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최근 아이를 출산하고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마친 그녀는 “산후조리원은 선불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리원에 있는 동안 신고하기가 찜찜하기도 하고 퇴원 후에 바로 국세청으로 달려갈 여건이 안됐다”며 “하지만 기한이 5년으로 늘어났다는 소식에 신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즉 기한이 늘어나면서 심리적 압박감이 줄었다는 분석이다. 신고기한의 연장 뿐 아니라 신고 방법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소비자가 거래 내역만 입증하면 된다. 예를 들어 간이 영수증이나 계좌 이체 등의 기록을 국세청에 제출하면 된다.

현금영수증 미발급 신고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란 게 국세청의 전망이다. 지난 10월부터 보석상 미용실 운전면허학원 포장이사업체 등 10개 업종이 의무발급 업종에 추가됐기 때문이다. 기존 병원 골프장 산후조리원 부동산중개업 예식장 등을 합해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업종 수는 44개로 늘었다. 의무발행업종 가운데 전문직·병의원을 제외한 기타업종은 이전까지 직전연도 수입금액이 2천 400만 원 이상인 경우에만 현금영수증 가맹점 가입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국세청은 현금영수증 제도가 현금거래를 투명하게 노출해 자영업자의 과세표준 양성화에 이바지한 것으로 보고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를 확대하기로 했다.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업종은 30만 원 이상 현금 거래 시 소비자의 요청이 없어도 반드시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한다. 올해 1월 1일부터는 이 기준도 10만 원으로 하향 조정됐다. 이를 어기다 적발되면 거래금액의 50%에 해당하는 과태료가 부과되고, 신고자에게는 해당금액의 20% 한도 안에서 신고포상금을 지급한다. 한도는 건당 300만원, 동일인 지급 연간 포상한도는 1천 500만 원이다. 현금영수증제 도입 첫해인 2005년에 18조 6천억 원이었던 발급액은 지난해 82조 4천억 원으로 약 4.4배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소비지출에서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발급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47%에서 지난해 89%로 증가했다.

 

 

탈세제보 포상금 급증

한편 세파라치 포상금이 웬만한 대기업 연봉 수준에 달할 전망이다. 최근 정부가 탈세제보 포상금 지급 문턱을 허물면서 관련 예산도 3배 넘게 늘어났다. 지난 11월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예산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탈세제보 포상금 예산은 102억 500만 원이 배정됐다. 올해 29억 7,900만 원에 비해 3.4배 증가한 규모다. 국세청이 예상한 탈세제보 포상금 지급 건수는 올해와 내년 모두 150건으로 동일하다. 1건당 평균 포상금은 2,000만 원에서 6,800만 원으로 증가한다.

탈세제보 포상금 단가가 높아진 이유는 지급 규정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포상금 최대 지급 한도를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린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포상금 지급률을 2~5%에서 5~15%로 높이고, 지급 기준도 1억 원 이상 징수에서 5,000만 원 이상 징수로 완화했다. 국세청도 탈세 제보로 인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해 접수된 탈세제보는 1만 1,087건이었고, 올해는 8월까지만 1만 2,147건으로 전년 실적을 이미 뛰어 넘었다. 탈세 제보 가운데 실제로 추징하는 경우는 55% 수준이며, 추징 규모는 2012년 5,224억 원에서 2013년 8월까지 6,537억 원으로 늘었다. 이에 법무법인 바른의 박승헌 변호사는 “이제 이른바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은 존재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단언했다.

한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국세청이 포상금 예산을 느슨하게 짰다고 지적했다. 당초 포상금 규정을 바꾼 이유가 탈세제보 유인을 통해 세금을 많이 걷는 것인데, 포상금 지급 단가만 높이고 예상 건수가 늘어나지 않아 타당성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이곳의 관계자는 “단순히 지급 기준을 1억 원 이상에서 5,000만 원 이상 추징으로 완화하는 것으로는 탈세제보를 대폭 확대하는 효과는 낮은 반면, 포상금 지급규모는 대폭 늘어나기 때문에 개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현금영수증 신고 제도가 강화되고 의무발급 업종이 확대되면서 현금영수증 미발급 신고, 특히 포상금을 노린 ‘세파라치’의 지난해 2,144건에 그쳤던 신고 건수가 올 들어 4,000건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세파라치 전문 교육학원 ‘성업’

자신의 직업을 세파라치라고 밝힌 이종석(36·남)씨.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가 전업하게 된 계기는 주말에 용돈벌이로 시작했던 불법 현장 제포를 통한 포상금이 월급보다 많아지면서였다. 이 씨는 “시장이나 골목상권 등 동네 어디를 가도 현금결제 시 할인해주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우리나라에서 탈세는 너무나 당연시돼 있고 특별히 문제도 삼지 않는 분위기”라며 이런 맹점을 파고드는 게 자신의 업무영역이라고 설명했다.

포상금을 노린 전문 신고자가 늘어나면서 일명 ‘파파라치 학원’도 성행 중이다. 도대체 포상금 수입이 얼마이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학원 수료생들의 포상금 수입액은 월 1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 이상까지 지급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전국 단위로 성업 중인 파파라치 학원만 20여 곳에 달하고 이 중 서울에서만 4~5곳 정도가 영업 중이다. 포상금 파파라치 전문 교육원인 넘버원 이튼스쿨의 김태현 대표는 “공익자원이라고는 하지만 1990년대만 해도 포상금 파파라치는 ‘남의 잘못을 고자질해 돈을 번자’는 식의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포상금제의 긍정적인 점이 부각되면서 수강생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학원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 등에는 ‘현금영수증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자세한 기법까지 나돌고 있다. 해당 글은 세제보서 양식과 각종 신고포상 제도에 대한 설명 및 신고요령 등을 담고 있지만,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단속 촬영 방법이다. 현금영수증 단속요령에는 △간판을 촬영할 것 △주인이나 종업원 얼굴을 정확히 촬영할 것 △현금영수증 카드 제출 장면을 촬영할 것과 거부 시 행동요령 등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를 위해 손목시계, 볼펜, 촬영용 스마트폰, 선글라스, 넥타이, 여성용 장신구 등 다양한 형태의 동영상 및 녹취 장비를 마련한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파파라치 포상금제 관련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게 현실이다. 실정법을 잘 모르는 영세 자영업자나 서민이 피해를 보는 게 대부분이며 국민 간 불신만 조장한다는 주장이다. 박수정 행정개혁시민연합 정책실장은 “공무원이 할 일을 하지 않고 민간에 떠넘기듯 손쉽게 포상금제를 도입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불법 행태에 대한 신고는 민주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의무이며 포상금제는 이를 위한 동기부여의 한 방편일 뿐이라는 찬성론이 대세를 이룬다. 박홍식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경제성장과 함께 우리 사회의 각 분야는 급속하게 발전했지만, 시민의식은 더디게 바뀌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포상금제는 시민가회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상금제에 대한 시각이 다양한 가운데 최근 세파라치 학원에 등록했다는 김남옥(42·여)씨도 “탈세하는 사람들이 잘못이지, 신고자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활동하면서 예상외로 포상금 수입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생각보다 신고건수가 많다. 집에서 있느니 포상금도 챙기면서, 탈세를 막는다는 자부심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업계 관계자도 “정부 기관의 손이 닿기 어려운 법의 사각지대까지 포상금 파파라치들이 접근해 불법 현장을 잡아내고 있다. 이는 정부의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주고 우리 사회가 바르게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순기능을 한다”고 강조하면서 포상금제 관련 종사자만 2만여 명에 이르는 시대에서 이들이 위법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닌 만큼 불편한 시선보다는 하나의 직업군으로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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