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논란에 빠진 ‘국민참여재판’
공정성 논란에 빠진 ‘국민참여재판’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3.12.1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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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Social Focus]


공정성 논란에 빠진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무죄 평결 뒤집고… 안도현 시인 일부 유죄 선고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의 만장일치 무죄 평결을 받은 안도현(52·우석대 교수) 시인이 지난 11월 7일 법원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받았다. 안 시인에 대한 판결은 국민참여재판의 공정성이 도마에 오른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진행자들과 안 시인이 잇따라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무죄 평결을 받자 정치적 편향성, ‘감성 재판’ 논란이 불거졌다. 법원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이 시행 5년 만에 전례 없는 뜨거운 관심과 우려를 동시에 받고 있는 상황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참여재판이란 무엇일까? 국민참여재판은 2007년 6월 공포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2008년 1월부터 시행됐다. 시행 첫해인 2008년 2월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배심원이 참여한 재판이 처음으로 열렸다. 배심원은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해당 지방법원 관할 구역에 거주하는 주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다. 정당한 사유 없이 법원에서 통지한 선정 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배심원으로 선정돼 재판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법률에서 정한 여비가 지급되며, 배심원 제도가 적용되는 재판은 살인, 강도상해, 성범죄 등 대부분의 범죄가 해당된다. 이들 사건의 피고인이 원하지 않거나 배제 결정이 있는 경우 국민참여재판은 열리지 않는다. 배심원 수는 법정형이 사형·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의 경우에는 9명, 그 밖의 사건은 7명이다.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공판준비 절차에서 공소사실의 주요 내용을 인정한 사건은 5명이다. 또 법원은 배심원의 결원 등에 대비해 5명 이내의 예비배심원을 둘 수 있다.



여야, 국민참여재판 정치성 놓고 ‘갑론을박’

11월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국민참여재판에서 정치적 사건을 배제해야 한다”는 여당과 “정치적 사건을 구분할 수 없다”는 야당의 주장이 팽팽히 맞붙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치성이 있는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 맡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은 “주진우·안도현 사건 등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 대해서는 감성재판이 된다는 논란이 있다”며 “문재인 후보가 큰 지지를 받았던 전북지역을 찾아 전주지법 법정에 앉는 순간 정치재판이 됐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이주영 의원도 “서울중앙지법과 전주지법이 검찰에 ‘일부 사건의 국민참여재판이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을 냈다. 정치적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국민여론도 형성되고 있다는 사후 평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참여재판이 처음 시작될 때는 강력범죄 관련 재판 위주로 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지난해부터 모든 사건에 대해서 할 수 있도록 확대됐다면서 법원에서 좀 더 세심하게 고려를 해서 사법행정을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 등 야당은 한 두건의 사건을 가지고 국민참여재판 전체적 의미에 흠집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맞받았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법원이 재판하는 사건을 ‘정치적 사건’과 ‘비정치적 사건’으로 구분할 수 없다”며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을 소중히 다듬고 지켜갈 생각은 안하고, 한 두건의 재판을 가지고 흠집 내는 것을 보며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같은 당 박지원 의원도 “국민참여재판은 사법부의 권한을 배심원인 국민에게 위임하는 것”이라며 미국의 사례를 들었다. ‘OJ심슨 사건’으로 떠들썩했지만 지금도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정착되고 있고, 한 나라의 재판제도가 ‘조변석개(朝變夕改)’식으로 되면 안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안도현 재판부, 국민참여재판 ‘제3의 길’ 언급

국민참여재판에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 11월 7일 전주지법 제2형사부(은택 재판장)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안 시인에게 허위사실 공표 혐의는 ‘무죄’, 후보자 비방 혐의는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장이 유죄 취지의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자 안 시인과 지지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재판부는 유죄를 판결하면서도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을 최대한 존중해 양형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죄는 되나 처벌하지 아니한다’에 가장 근접한 형에 해당하는 선고유예 외의 다른 형은 선택할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배심원 7명 전원은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했지만, 재판부는 ‘일부 유죄’로 판단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선고를 연기했다.

이번 판결문에는 최근 논란을 빚은 국민참여재판 제도에 대한 재판부의 고심이 묻어난다. 재판부는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법리적 관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정치적 입장이나 지역의 법 감정, 정서에 판단이 좌우될 수 있는 여지가 엿보인다”며 비판론을 일부 인정했다. 다만 배심원 평결이 국민의 뜻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다소 지역적, 감성적이고 때로는 정치적 색채가 짙어 보이더라도 이를 존중해 판결에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배심원 평결이 재판부에 사실상의 기속력을 가진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지만 그 기속력은 법관의 직업적 양심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작용한다고 봤다. 이번 사건에서 최소한의 직업적 양심은 유무죄에 대한 판단이었다. 직업적 양심에 따라 일부 유죄를 선고하고서도 배심원의 무죄평결 기속력을 양형 부분에 반영, 처벌하지 않기로 ‘모순된 결론’을 내린 배경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미국식 배심제도를 채택하지 않는 현행 국민참여재판에서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의 요청에 부응하면서 법의 지배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중화상생의 원리에 입각한 ‘제3의 길’”이라고 판결문에 적기도 했다.

법적 절차를 거쳐 선정된 배심원들이 편향된 정치색 때문에 감성에 치우쳐 잘못된 판결을 했다는 것을 전제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어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과 교수는 “배심원의 판결을 존중했다지만 엄밀히 말하면 전혀 존중하지 않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유무죄 판단에는 국민이 만든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법관보다는 국민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 적합했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정 지역의 정치색을 언급하며 국민참여재판의 공정성을 흔드는 것은) 여성이 피해자인 가정폭력 사건에 여성이 배심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논리와 같다”고 말했다. 또 “국민의 의사는 장기적으로 옳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국민참여재판 제도인데 이에 대해 계속된 신뢰를 보여주지 않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안 시인은 항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재판 직후 안 시인은 “국민참여재판에서 전원 일치 무죄 평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해 굉장히 안타깝고 이해할 수 없다”며 “(내 처지가) 재판관이 쳐놓은 법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 같다”고 불만을 표했다.



국민참여재판서 배심원 평결 기속력 높여야

현재까지 다수결 원칙에 따른 배심원의 유·무죄 판결과 양형(형벌의 정도 또는 형벌의 양을 결정하는 일)에 관한 의견은 ‘권고적 효력’을 지닐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 참여재판법은 제46조 제5항에서 법원은 배심원의 평결과 의견에 기속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평결이 권고적 효력만 갖도록 돼 있어 법관은 평결과 반대되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안도현 시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이 전원 무죄 평결을 내린 것을 두고 ‘감성 평결’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 일각에서 평결의 기속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이다.

법제사법위원회 서기호 정의당 의원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11월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가져온 변화와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서 의원을 비롯, 법원행정처 사법법지원심의관,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선전담변호사 등 법조계 인사들이 참여해 국민참여재판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방향을 이끌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참석자들은 사법절차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평결의 효력에 대해 기속력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종선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은 “참여재판의 무죄율(6.8%)이 형사합의사건 1심 무죄율(3.4%)보다 높은 이유는 배심원들이 감성적이어서가 아니다.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해 유무죄를 격렬히 다투는 사건이 참여재판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 판결의 일치율이 92.5%이고 양형의견과 선고형량이 비슷한 경우가 87.0%”라고 소개했다. 김형국 국선전담변호사는 “평결의 효력에 대해 사실상의 기속력을 법령에 명문으로 인정할 경우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히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정별님 국선전담변호사는 “현행법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라며 “법관이 평결에 반대되는 판결을 선고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재판 결과에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어 “형사재판에 국민의 법 감정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평결을 법관이 뒤집을 수 없도록 기속력을 부여해야 한다”며 “이로써 국민의 사법참여제도의 취지를 살리고 바람직한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2008년 국민참여재판이 처음 실시된 이후 지난 4년 동안 국민참여재판 574건 중 배심원의 평결과 재판부의 판결이 일치한 것은 90.6%에 이른다는 통계를 근거로 들었다.

참여재판 대상사건 선정과 심리과정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주용완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은 “배심원들 앞에서 진술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한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 “장시간 재판으로 배심원들의 판단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나꼼수 주진우·김어준씨 재판에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박주민 변호사는 “4건의 참여재판 변론을 맡으며 배심원 평균연령이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연령대별로 치우침 없이 구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을 놓고 ‘지나친 감성(感性) 재판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일부 사건의 배심원 평결에 대해 상식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전문가들은 개별사건을 이유로 제도 자체를 흔들려 하거나 드러난 문제점을 방치하는 것 모두 온당치 않은 태도라고 말한다. 국민참여재판의 취지를 이어나가고 사법 개혁의 이정표로 세우기 위해선 판사·검사·변호사, 시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취재/안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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