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Culture II] 대제국의 번영과 함께한 로마문학
[History Culture II] 대제국의 번영과 함께한 로마문학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3.11.25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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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유럽의 공생을 꿈꿨던 로마인의 세계 정신


안드로니쿠스부터 베르길리우스까지, 라틴 문학의 정점을 이룬 문인들



유럽 문화의 근간을 이룩한 그리스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로마 문학은 라틴어의 체계 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다. 그리스를 계승했다고 공언하는 로마의 문학가들은 그리스 문학과 동일한 신화적 제재와 장르를 채택하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유럽적’ 공생의 정신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그리스의 전통을 서양의 전통으로 계승, 확대해 가며 유럽 전역을 로마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리스 문학에서 출발한 로마문학

로마는 예로부터 에트루리아나 남부 이탈리아의 여러 민족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아왔다. 간헐적인 문화유입만이 이뤄졌던 로마에 처음 본격적인 그리스 문학을 소개했던 이는 그리스인이었던 리비우스 안드로니쿠스(Lucius Livius Andronicus, BC284~BC204)였다. 남이탈리아에 위치한 그리스식민지 타렌툼 출신의 그리스 소년 리비우스 안드로니쿠스는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로마에 간 후 해방되어 로마인의 그리스어·라틴어 교사가 되었다. 이후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로마에 알맞게 번안하며 그리스문학을 로마에 이식하게 된다. 하지만 단순한 이식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라틴어에 의한 그리스식 문학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로마 문학의 시조로 자리 잡게 된다.

리비우스 안드로니쿠스 이후 그나이우스 나이비우스(Gnaeus Naevius, BC270~BC201)가 비극과 희극작품을 아울러 저작했으며, 특히 희극은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마침내 그 절정에 달한다. 로마 희극의 절정을 이룬 것은 플라우투스(Titus Maccius Plautus, BC254~BC184)와 테렌티우스(Publius Terentius Afer, BC195~BC159)에 의한 것이었다. 플라우투스는 그리스의 메난드로스와 그 밖의 신희극 작가들의 작품을 능숙하게 번안하고 그 가운데 가요를 삽입해 훌륭한 희극을 만들었다. 21편에 이르는 작품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포로’, ‘밧줄’, ‘허풍선이 병사’ 등이 있다. 그는 다른 라틴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희극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당시 로마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라틴어로 표현 가능한 운율의 극적 효과를 탐구하고 사랑의 고백이나 욕설, 임기응변의 대답 등에서 라틴어 표현의 새 분야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테렌티우스는 아프리카 출신이었으면서도 그리스 신희극과 마찬가지로 당시 상류사회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라틴어를 구사하며 신희극다운 희극을 만들었다. ‘자학자’, ‘포르미오’ 등의 작품을 상연해 성공을 거두기도 한 그는 독자성이 풍부한 작품과 개막 전의 내레이션 등 상연기술면에서도 새로운 창의를 시도했다. 그는 우아한 문체를 통해 “사람 수효만큼 의견이 있다”. “늙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병이다”, “현인에게는 한 마디면 족하다”, “나는 돈을 주고 희망을 살 생각은 없다”, “나는 인간이다. 인간에 관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남의 일로는 여기지 않는다”와 같은 수많은 명구를 남겼다. 특히 마지막 구절은 독일의 철학자인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가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고 한다.




로마문학의 완성 - 카이사르와 키케로

BC 2세기 후반의 공화정 말기에는 로마문화로서의 라틴문학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당대의 교양으로 평가받았던 헬레니즘 문화에 익숙한 교양 있는 인사들은 모두 그리스, 라틴의 두 가지 언어를 다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용도와 격식에 따라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구분해 사용했으나 점차 라틴어는 그리스어의 풍부한 어휘와 표현력을 담아내기 위해 문어체의 언어로 변해갔다. 그들의 정치적 특징도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공화정 체제에서 유려한 말솜씨는 교양인이 가져야할 덕목 중 하나였다. 이 혼란의 시대에 활약한 정치가, 군인들은 모두 웅변가였다. 그 중에서도 공화정치에 최후의 타격을 준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100~BC44)와 그의 정적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106~BC43)는 가장 탁월한 웅변가였다.

카이사르의 문체는 간결하고 수식이 없어서 청중에게 진실을 전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산문체였다. 카이사르는 이러한 문체의 웅변으로 갈리아총독이 된 이후 자신의 행동을 3인칭으로 표현했다. 카이사르의 대표적인 저작물인 ‘갈리아 전쟁기’는 전쟁의 승패를 가늠하는 전략과 전술이 실전적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구체적으로 풍부하게 보여주는 최고의 전쟁 회고록이자, 보고 문학(Reportage)의 백미로 평가받는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가 전쟁문학의 효시이지만, ‘갈리아 전쟁기’는 격렬한 전투 상황을 객관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함으로써 전쟁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갈리아 전쟁기’는 출간되자마자 로마인들의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로도 그의 또다른 저작물인 ‘내전기’와 함께 라틴어 과정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교본으로 사용된다. 나폴레옹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를 일컬어 “전쟁 기술에 관한 최고의 교과서”라고 극찬했다.

한편, 키케로는 의회나 법정에서의 연설에서는 표현이 풍부하고 대하의 흐름과 같은 긴 표현의 수식이 가득한 문체를 사용했으나, 철학, 웅변술 관련의 저서에서는 자연스러운 문체를 사용했고, 전해 내려오는 그의 많은 서한에서는 친근감이 있는 일상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통해 자유자재로 적절한 문체를 구사했음을 알 수 있다. 보수파 정치가로 활동하다가 카이사르와 반목하며 정계에서 쫓겨나 문필에 전념하게 된 그는 수사학의 대가이자 고전 라틴 문학의 창조자이며 동시에 완성자라 불린다. 그의 그리스의 웅변술과 수사학 소양에서 우러나온 문체는 도도하게 흐르는 대하에 비유되기도 한다. ‘카틸리나 탄핵’외 58편의 연설과 ‘국가론’, ‘법에 관하여’ 등의 철학서, ‘우정에 관하여’ 같은 소품을 남긴 그는 한때 로마의 국부로 불리며 영예를 차지했다.



대제국의 확립, 하나 된 유럽을 노래하다

BC 30년에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제정을 수립한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63~AD14)는 시민들이 바라는 평화를 로마에 가져다주었다. 이에 호응한 것이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BC70~BC19)와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BC65~BC8)의 시였다. 베르길리우스는 날씨, 수학, 가축, 양봉 등을 노래한 ‘농경시’와 11년간에 걸친 대작 ‘아에네이스’를 통해 로마의 국민시인, 고대 로마 최대의 시인의 명예를 얻게 된다. ‘오디세이아’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아에네이스’는 그가 작품 활동을 위한 그리스 여행 도중 병을 얻어 사망하며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생전 베르길리우스는 친구에게 ‘자신에게 사고가 일어나거든 원고를 불태워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를 아꼈던 황제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아에네이스’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한편, 호라티우스는 서정시와 루킬리우스 이래의 풍자시를 비롯해 '서간'이라고 하는 경묘하고 화사한 시를 썼다. 특히 그의 서간 중 하나인 '시론'은 후대에 큰 영향을 주었다. 기교가 탁월하고 도회인적인 유머와 인간미에 가득 찬 그의 시편들은 ‘서정시집’ 4권을 통해 최고를 이루며 로마 서정시를 완성한다.

그리고 로마 역사문학의 정점을 이룬 리비우스(Titus Livius, BC59~AD17)는 아우구스투스의 문학 서클에 영입되어 40년에 걸쳐 로마 건국부터 아우구스투스의 세계 통일에 이르는 역사를 기술한 ‘로마 건국사’를 저술한다. 대제국 로마를 건설한 로마인의 도덕과 힘을 찬양한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의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 회상’, ‘소아시아 원정기’와 필적하며 ‘로마사 연구의 성서’로 알려져 있다. 이후 제국의 최전성기를 거치며 라틴 문학은 일상적인 언어로부터 멀어지며 기교에 치우친 인공 언어로 변질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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