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Culture I] 역사가 보이는 시대, 로마미술
[History Culture I] 역사가 보이는 시대, 로마미술
  • 방성호 기자
  • 승인 2013.11.25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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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방성호 기자]


그리스 미술의 새로운 변신


이상을 넘어서 현실적, 실용적 미술로



로마의 미술은 일찍이 이탈리아반도로 이주해 온 에트루리아인의 미술과 반도 남부에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인의 미술, 이 두 요소를 이어받아 융합해 발전시킨 것이다. 로마미술은 그 형식의 대부분이 그리스 미술에 바탕을 두었지만,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점에서는 지극히 에트루리아적이다. 로마미술의 시작은 에트루리아의 영향에서 출발했으나 에트루리아가 점차 세련된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게 되자 로마도 점차 그 형식을 계승했다. 다시 공화정(共和政) 말기부터 그리스의 헬레니즘 세계와 접촉함으로써 이후 10세기 동안 유럽문화의 일축을 담당하게 된다.




판테온(Pantheon)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모든’을 뜻하는 ‘pan’과 ‘신’을 뜻하는 ‘theon’이 합쳐진 말로,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을 뜻한다. 로마의 황실 조형물인 판테온은 제국이 형성된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원수의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게 된 평화로운 ‘5현제 시대(Five Good Emperors :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 피우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그 배경으로 한다. 모든 고대 로마 건축물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전 세계를 통틀어 당대 건물 가운데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현존하는 건물의 설계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건축가인 다마스쿠스의 아폴로도루스가 했다는 견해도 있으나 건물 자체와 건물의 설계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 그의 건축가들이 공로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테온은 현재 로마에서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돔(dome) 구조다. 바닥에서 천장의 원형 구멍(oculus)까지의 높이와 돔 내부 원의 지름은 43.3m로 정확히 일치한다. 건물 외형적 구조로는 직사각형의 형태를 가진 고전적 현관인 프로나오스(pronaos)와 원형건물(rotunda)이 합쳐진 구조를 가진다. 상이한 두 요소가 한데 합쳐진 건물의 전체 구조에 대해 프로나오스는 아그리파가 세운 것이며 하드리아누스가 여기에 원형 건물을 덧붙였다고 보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원형건물과 프로나오스가 하나의 연결되는 석회화로 이루어져 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됨에 따라 전체 건물이 하드리아누스 때 세워졌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판테온의 원형건물은 전통과 혁신이 만난 독창적인 건축양식이다. 원형건물은 로마의 건축사에 있어서 판테온 이전에도 존재해 왔지만 그 거대한 규모와 목적은 새로운 것으로서 창조성을 가진다. 원형의 돔은 하늘(천국)을 상징하기 위한 의도였을 가능성이 크며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우주, 조화의 이미지를 이룬다. 돔은 하나의 오쿨루스(oculus)와 28개의 리브(ribs), 그리고 5개의 열을 이루는 정간(coffer)으로 구성되어 있다. 돔의 꼭대기에 원형으로 뚫린 오쿨루스는 로마의 건축물에서 몇몇 예를 찾아볼 수 있으나, 지름 8.3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는 건축 공학적으로 매우 극단적이면서도 과감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판테온은 그 수적 비례의 미와 강대한 내부 공간의 창조라는 당시 경이적인 토목기술로서 서양건축사상 불후의 명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후대에 와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판테온의 돔 건축 방식을 채용해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건축했고 이로 인해 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7세기 이후로 현재의 판테온은 가톨릭 성당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미사가 집전되거나 가톨릭 종교 행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판테온에 숨겨진 비밀

로마 제국의 절정기에 건립된 판테온은 117년에서 137년까지 통치한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립되었지만 사실 그 이전에 먼저 건립된 사례가 있다. 여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는데, 바로 초대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의 절친이자 사위, 정치적 조력자, 군사지휘관 등 수많은 타이틀의 소유자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Marcus Vipsanius Agrippa, 기원전 62 ~ 12)’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에게 발탁되어 초대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를 도와 제정시대를 여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아우구스투스는 뛰어난 정치적 감각으로 혼란스러웠던 로마정국을 수습했지만 전쟁에는 상당히 둔감했고 체력이 약해 원정을 나가는 경우에는 병석에 누워있기 일쑤였다. 일찍이 그의 이러한 문제점을 눈치 챘던 카이사르는 그의 단점을 보완해주고자 아그리파를 그의 후원자로 채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아우구스투스가 생전에 이뤘던 모든 전쟁의 성과는 아그리파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의 업적으로는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에 대한 해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항한 악티움 해전 등을 성공적으로 치렀으며 로마시의 상·하수도, 목용탕 등 공공 시설물을 건립하는데 주력했다. 또한 지리서를 제작해 로마제국에 있어서 세계지도 작성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판테온은 아그리파가 기원전 27년에 건립했다. 서기 80년 로마의 대형 화재로 인해 소실된 이 건축물은 서기 12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 재위 시 재건했고, 이후 202년에는 카라칼라(칼리큘라, 아그리파의 외손자) 황제에 의해 보수되었다.

아그리파의 업적은 실로 대단했다. 대내·외 국가 정세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특히 세 번의 집정관 시절 공공건축물 사업을 통해 당시 해방노예를 선도했으며 아그리파가 건립한 최초의 판테온은 그가 이끄는 약 240여 명의 노예기사단이 건설에 참여했다. 원래 있던 명문(오른쪽 사진)이 새로운 건물의 정면(파사드)에 덧붙여졌으며, 하드리아누스가 계획한 로마 전역에 걸친 재건 계획의 일부로 이 건물은 완전히 재건되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 건물을 최초로 지은 아그립파에게 얼마나 많은 경의를 나타내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그리파는 또한 미술학도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줄리앙, 비너스와 함께 기본 석고상 중의 하나인 아그리파상이 바로 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깊게 패인 두 눈과 굳게 다문 입술에는 마치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 사상을 바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대종사로서의 기품이 서려있다. 시대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판테온을 통해 아그리파의 위대한 업적은 2,000여 년이 지난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의 여운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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