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운명을 바꾼 계유정난의 설계자 사우당 한명회
조선의 운명을 바꾼 계유정난의 설계자 사우당 한명회
  • 임성지 기자
  • 승인 2013.11.2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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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임성지 기자]

 

조선의 운명을 바꾼 계유정난의 설계자 사우당 한명회


지략으로 조선의 권력 정점에 서다

 


 

 

 

지난 9월 개봉 13일 만에 700만 관중을 돌파하고 누적관객 900만을 달성한 영화 ‘관상’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사람은 수양대군도, 김종서도 아닌 한명회이다.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수양대군을 왕위에 올려놓은 조선 최고의 지략가, 4번이나 공신에 오를 만큼 정치수완이 남달랐던 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하지만 일개 문지기에서 영의정을 거쳐 왕의 장인으로까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지략과 힘으로 개척한 것은 목표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배워야할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칠삭둥이에서 조선권력의 중심이 되다

조선 초 문신이자, 정치인, 외척이었던 한명회는 ‘세조의 장량’으로 높여 부르기도 하며, ‘칠삭둥이’라고 낮추어 부르기도 한다. 그의 할아버지는 태조 이성계가 새 왕조를 건국할 때 학사로 파견되어 명나라에 가서 ‘영흥’과 ‘조선’, 두 국호를 받아온 한상질이며, 아버지는 사후 증직된 영의정 한기이다. 어머니인 여주 이씨가 수태한 지 7개월 만에 태어나 몸이 완전치 못한 상태로 태어났다. 집안의 늙은 몸종이 그를 보살펴 정상적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 조부모의 손에 길러졌고, 훗날 류태재의 문하생이 된다. 가난한 살림과 작은 체구로 놀림 받는 불우한 시절을 보내지만, 한학을 수학하면서 권람, 서거정 등과 교류하게 된다.

여러 번 과거에 낙방하고 38살이 돼서야 경덕궁직(敬德宮直)의 벼슬을 하게 된다. 이후 권람의 소개로 신숙주를 알게 되었고, 신숙주는 수양대군에게 한명회를 소개해준다. 한명회의 비범함을 알아챈 수양대군은 그를 가까이 두고 책사로 두었다. 한명회는 경덕궁직을 함께했던 홍달손, 홍윤성, 양정 등의 30여 명의 무사를 수양대군에게 소개했고, 이들을 통해 수양대군은 단종의 측근세력이었던 김종서, 황보인을 제거해 계유정난을 성사시킨다. 이때 한명회는 조정관료들의 수양대군에 대한 지지와 성향을 파악했으며, 설득과 제거의 대상을 구분 짓는 살생부를 작성했다. 1453년(단종 1년) 10월 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한 계유정난 때 핵심참모로서 공을 인정받아 군기녹사(軍器錄事)에 임명되고 수충위사협책정난공신(輸忠衛社協策靖難功臣)의 호를 받았다. 곧이어 사복시소윤(司僕寺少尹)이 되었다가 1454년에 승정원 동부승지가 되었다. 1455년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좌부승지로 승진했으며, 그해 가을 동덕좌익공신(同德佐翼功臣)의 호를 받고 우승지가 되었다. 1456년(세조 2년) 단종복위운동을 좌절시켰으며, 사육신의 주살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이어 좌승지·도승지를 거쳐 1457년 이조판서·병조판서가 되었고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졌다. 이때 한명회는 자신의 셋째 딸을 세조의 차남인 해양대군에게 출가시키면서 세조와 사돈지간을 맺게 된다.

한명회는 상당군에 봉해진 이후 병조판서를 역임하며 평안도와 함경도에 병력을 이끌고 나가 북방을 수습하기도 했다. 1459년 황해·평안·함길·강원 4도의 체찰사가 되었으며, 1461년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에 봉해지고 판병조사를 겸했다. 그 뒤 우의정·좌의정을 역임하고, 영의정에 올랐으나 곧 병으로 사임했다. 1467년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모함을 받아 투옥되어 위기를 맞이했지만, 곧 풀려났으며 오히려 남이를 제거한 공으로 추충보사병기정난익대공신(推忠保社炳幾定難翊戴功臣)의 호를 받았다.

예종이 일찍 승하하자 신숙주 등과 함께 자신의 넷째 사위이자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질산군을 왕위에 오르게 하니 이가 9대 성종이다. 성종이 어린나이에 즉위하자 성종을 대신해 인수대비가 수렴청정하게 되니 그 기간에 국정을 좌지우지한 사람이 결국 한명회이다.

 

 


 

 

 

최고의 권력자 압구정으로 지다

최고의 권력을 구가하던 한명회는 1476년(성종 7년) 여생을 유유자적하기 위해 한강 가에 압구정이란 정자를 지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그의 정치인생이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한명회 소유의 정자였던 압구정이라는 명칭은 한명회가 중국 문객 예겸에게 부탁해서 받은 것이었다. 한명회가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예겸과 마주 앉아 시로서 서로 응대하던 차에 한명회가 예겸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한 것이다. 이에 예겸은 압구(狎鷗)라고 명명하고 또 기(記)를 지어 주었던 것이었다. 압구정이 완성되는 날 성종은 이를 기려 압구정시를 직접 지어 내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 젊은 관료들의 반발로 철거되었다. 그런데 풍경이 좋아서 소식이 중국까지 알려졌다. 그래서 압구정은 중국에서 사신이 오게 되면 반드시 거치는 코스가 되었다.

1481년(성종 12년) 역시 중국 사신이 와서 압구정을 관람요청을 해 어쩔 수 없이 방문을 허가하였다. 문제는 한명회가 자신의 정자가 좁아서 중국 사신이 방문해도 잔치를 열 수 없다는 구실로, 국왕이 사용하는 차일을 청했다. 그러나 성종은 이를 허가하지 않고 매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거절했으나 한명회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보첨만(補簷幔 처마에 잇대는 장막)을 청하였다. 그러자 성종은 다시 제천정에서 잔치를 치르도록 하고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한명회도 여기서 굴하지 않고 심지어는 자기 아내가 아파서 잔치에 나갈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려고 하였다. 이에 대단히 진노한 성종은 승정원에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우리나라 제천정의 풍경은 중국 사람이 예전부터 알고, 희우정(喜雨亭)은 세종께서 큰 가뭄 때 이 정자에 우연히 거둥하였다가 마침 신령스러운 비를 만났으므로 이름을 내리고 기문(記文)을 지었으니, 이 두 정자는 헐어버릴 수 없으나, 그 나머지 새로 꾸민 정자는 일체 헐어 없애어 뒷날의 폐단을 막으라.”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후 승지나 대간의 비난이 한명회에게로 쏟아졌다. 이때마다 성종은 한명회의 잘못을 꾸짖는 선에서 일을 매듭지으려고 했으나, 반발이 계속되자 결국 성종도 한명회의 국문을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 벼슬을 떠나 갈매기를 벗 삼아 여생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로 지은 정자가 그를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다. 이후 한명회는 1487년(성종 18년) 향년 73세로 일기를 마감한다. 이후 1504년(연산군 10년)에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 사건을 막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자사화 때 정창손 등과 함께 12간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었다. 한명회는 결국 무덤에서 꺼내져 부관참시 되어 시체는 토막 내어졌으며, 목을 잘려 한양 네거리에 걸렸다. 뒤에 중종반정 이후 신원이 복관되었고, 1507년(중종 1년)에 충청남도 천안시 충성사에 제향되었다.

모사에 능하며, 책략이 뛰어난 인물로 ‘세조의 장량이라 불렸던 한명회. 그는 과단성 있는 결정력의 소유자였으며, 국방을 위해 변방에 나가 싸우는 장군의 모습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계유정난 이후 지나친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말년에는 그에게 줄을 대기 위해 압구정에 간신의 아부가 이어지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그의 모습은 아무런 노력 없이 일확천금을 바라거나 목표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볼 때 지탄의 대상으로 만 보기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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