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ical drama] 팩션의 한계
[Historical drama] 팩션의 한계
  • 김재훈 기자
  • 승인 2013.11.25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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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재훈 기자]

기황후 역사 왜곡, 우리가 알아야 할 것


높은 시청률과 더불어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져






드라마 '기황후'는 방송 전부터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기황후는 고려의 여인에서 원나라 황후가 된 인물로 기황후의 친정 오빠이자 원 소종의 외숙부인 기철 일당이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고려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도록 지원한 인물이다. 기황후를 다룬 드라마 '기황후'가 제작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각에서는 드라마가 고려를 장악하려 한 기황후를 대륙을 평정한 철의 여인으로 포장하고 고려사에서 빛나는 인물로 보이게 한다고 지적했다.



드라마 ‘기황후’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월화극 1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5일 방송된 '기황후'는 14.5%의 전국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4일 방송분이 기록한 12.8% 보다 1.7% 포인트 상승한 수치이자 자체 최고 시청률이다. 동 시간대 방송된 SBS '수상한 가정부'는 10.3%를, KBS2 '미래의 선택'은 5.4%를 각각 기록했다. 닐슨코리아 분석에 따라 기황후 시청률을 살펴보면 성연령별로는 여자 40대, 50대가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중년 여성 시청자의 채널 고정에 따라 월화극 승부가 판가름 나는 확률이 높은 편이기에 '기황후'의 상승곡선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성적표 이면에 ‘기황후’의 역사 왜곡과 재미를 놓고 시청자들의 논쟁이 한창이다. 13일 한 포털 사이트에는 방영금지 청원 서명운동 게시글도 올라왔다.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역사 왜곡과 미화, 기황후 방영금지 청원”이라는 제목의 서명운동이 시작했다. 지난달 25일 시작한 서명운동은 13일 2,866명이 참여했다. 익명의 다음 사용자는 서명운동 게시글에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한다”며 “제 바람은 이 드라마의 제작이 중단되는 것이며, 국민을 우롱하고 역사를 우습게 알고 무시한 제작진과 연기자들의 사과 및 방영 금지조치”라고 했다.



기황후는 누구인가

기황후의 본관은 행주이고 아버지는 기자오(奇子敖)이다. 기자오는 문하시랑평장사를 한 기윤숙(奇允肅)의 증손으로 음보로 관직을 할 정도였으니 그렇게 한미한 집안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기황후는 이 기자오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위로 오빠가 다섯에 언니가 둘 있었다. 1333년(충숙왕 복위 2)에 원나라의 휘정원(徽政院)에 있던 고려 출신 환관 고용보(高龍普)의 추천으로 궁녀가 되어 순제의 총애를 받게 되자 정후인 다나시리(答納失里)로부터 학대를 받았다. 1335년에 다나시리의 일족이 축출되자 황후로 책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바엔(伯顔) 등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1339년 황자 아이유시리다라(愛猶識理達臘)를 낳았으며, 이듬해 2월에 바엔세력이 물러나게 되자 4월에 드디어 제2황후로 책봉됐다. 황후가 된 뒤 곧 반대세력을 몰아내고 휘정원을 자정원(資政院)으로 이름을 바꾸어 이를 배경으로 막대한 권력을 행사했다. 기황후가 실권을 장악하면서 원나라에서는 고려의 풍속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를 고려양(高麗樣)이라고 한다. 고려의 복식과 음식들이 원나라 고위층들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고 명문가에 속하려면 고려 여자를 아내로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졌다.

원나라에서의 세력이 비대해짐에 따라 고려에서도 일족인 기씨(奇氏)의 세력이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기씨 집안이 고려를 넘어서 원나라로부터 힘을 얻게 되자 고려 조정은 기씨 집안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형편이 됐다. 문제는 이 기씨 집안의 아들들이 원나라의 힘을 고려에 유익하게 쓰기보다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이용했다는 데 있었다. 기황후도 가족들을 위해 고려에 대한 내정 간섭을 지나치게 했다. 기씨 집안의 악행은 결국 공민왕(恭愍王) 즉위 후 원나라 힘이 약해진 틈을 타 이들을 비밀리에 제거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때도 기황후는 공민왕을 제거하고 충선왕(忠宣王)의 셋째 아들 덕흥군을 왕으로 세우려고 고려를 침공했으나 이때는 이미 원나라의 국세가 기울고 고려가 원나라 군대를 잘 막아내서 실패로 그쳤다. 1365년에는 전례를 깨뜨리고 정후가 되었으나, 1368년 원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행적을 알 수 없게 되었다. 대도를 떠나 응창부까지 가는 동안의 기황후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기황후의 최후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우리나라 연천에 기황후의 능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조선 시대 기록인 ‘동국여지지’에 전하고 있다.




충혜왕은 어떤 인물인가

고려 28대 충혜왕(忠惠王, 1315~1344)은 주색에 빠져 방탕한 행동을 일삼다가 원나라에 의해 폐위된 임금이다. 충혜왕의 이름은 왕정(王楨)이며, 몽골 이름은 부다시리(普塔失里)로, 고려 27대 충숙왕(忠肅王, 1294~1339)과 명덕태후 홍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31대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의 친형이다. 그의 행적은 교과서에서조차 자세히 다룰 수 없을 만큼 지저분한 인물이 바로 충혜왕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되어 있는 충혜왕의 극악무도한 행적의 기록은 아래와 같이 매우 많다.

“왕이 죽은 후 충혜왕이 두 번이나 공주를 위해 영안궁(永安宮)에서 잔치를 열었고 공주도 왕을 불러 잔치를 열었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충혜왕이 취한 척 하며 나가지 않고 있다가 날이 저물자 공주의 침소에 들어가 누웠다. 공주가 놀라 일어나자 충혜왕이 송명리(宋明理) 등을 시켜 꼼짝 못하게 붙든 다음 입을 막고 겁탈하였다. 다음날 부끄럽게 여긴 공주가 원나라로 돌아가려고 말을 사게 하자 충혜왕은 이엄(李儼), 윤계종(尹繼宗) 등에게 명하여 말의 매매를 금지해버렸다.” - ‘고려사’ 충숙왕(忠肅王) 후비열전 경화공주전

“기묘일. 밤에 왕이 재상 배전(裴佺)의 집으로 가서 그 처와 그 동생 김오의 처를 간음했다. 당시 배전은 원나라에 머물고 있었다.” - “고려사” 세가 충혜왕 후 4년(1343) 3월조

“기미일. 밤에 또 상호군(上護軍) 송명리(宋明理)의 집에서 잔치를 열었다. 앞서 폐행 최원(崔遠)이 왕에게 진사정동(進士井洞)에 예쁜 처녀가 있다고 속살거리자 이날 밤에 왕이 그와 함께 그 집으로 가 처녀를 찾았는데 주인집의 노파가 본래 딸이 없다며 버텼다. 왕은 노파가 딸을 숨긴 것이 아닌가 의심하다가 또 최원이 거짓말을 했는가 의심해 둘 다 죽여버렸다.” - “고려” 세가 충혜왕 후 4년(1343) 4월조

충혜왕은 대신의 부인들을 납치해서 강간했고 측근의 가족들을 강간했으며 장모와 새어머니를 강간했다. 건달 무리와 어울려 다니며 여염집 여인들을 욕보였다고 하니 그야말로 나라꼴이 정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충혜왕의 만행은 위에 열거한 것조차 최대한 걸러진 것이며 사관들을 가까이하지 않아 기록에 남은 것은 극히 일부분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의 인물을 드라마화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이 정도의 인물을 고려가 자주적인 국가로 나아갈 수 있게 원나라와 맞서는 기개 넘치고 영민한 고려의 왕으로 그린 것은 차마 그냥 넘어가기가 어렵다는 반응이다.



역사 왜곡 논란, 시청자의 비판의식이 필요

배우들의 호연을 바탕으로 드라마는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드라마는 분명 사실성을 둔 픽션임을 밝히고 있지만, 실존인물을 그리는 역사드라마의 특성상 사전 지식이 없는 시청자들은 자칫 잘못된 역사관을 가질 수도 있다. 고려왕으로 나오는 왕유 역시 역사상 유례없는 폭군이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원나라에 맞서 싸우는 지조 있는 왕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기황후 역시 원래는 자신의 모국인 고려를 핍박한 악녀이나 드라마는 이를 고려를 돕는 애국자로 표현하고 있어 문제가 된다. 특히 배우 하지원은 이 같은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 “기황후는 고려 문화를 원나라에 전파한 인물이라고 들었다”며 “때문에 지금의 한류를 일으킨 여인이다. 그래서 출연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원의 이 같은 발언이 오히려 논란의 불씨가 됐다. 이에 대해 많은 누리꾼들이은 하지원은 “기황후란 인물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찾아보고 저런 소리를 하는 건가?”, “하지원에게 실망이 크다. 역사드라마에 캐스팅됐으면 적어도 그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출연해야 하는거 아닌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주진모가 맡은 배역인 '충혜왕'의 묘사는 더 큰 문제다. 논란이 된 후 제작진은 충혜왕을 가상 인물 ‘왕유(주진모 분)’로 바꿨다. 그러나 기황후라는 기본인물 설정이 그대로이므로 시청자들은 가상 인물인 ‘왕유’가 아닌 충혜왕으로 받아들일 우려가 크다. '기황후' 측은 방송에 앞서 자막을 통해 "이 드라마는 고려 말, 공녀로 끌려가 원나라 왕후가 된 기황후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으며, 일부 가상의 인물과 허구의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실제 역사와 다름을 밝혀드립니다"라며 팩션임을 고지하고 있다. 방영 전부터 일었던 역사 왜곡 논란을 피하기 위한 장치지만 그렇다고 별반 달라질 것은 없다. 창작은 자유지만 팩션의 한계에 대한 논의는 한 번은 짚어봐야 할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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