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시부터 산문까지, 그리스의 흥망을 함께한 그리스 문학사
서사시부터 산문까지, 그리스의 흥망을 함께한 그리스 문학사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3.10.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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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을 통해 드러난 지중해 패권국가 그리스의 자부심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History Culture I] 서구정신의 근간, 그리스 문학

 

 

서사시부터 산문까지, 그리스의 흥망을 함께한 그리스 문학사

문학작품을 통해 드러난 지중해 패권국가 그리스의 자부심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 스틱스 강에 어린 아킬레스를 담그는 테티스(Thetis dipping the infant Achilles into the river Styx, 1625)

 

 

서양문학은 그리스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로마 문학에 감화를 주었고, 중세와 르네상스로 이어졌으며, 근세 서양 문학에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도 영화나 소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비롯해, ‘오이디푸스’, ‘아가멤논’ 등 그리스가 낳은 수많은 문학작품들은 오랫동안 서양 문화 정신의 근간을 이뤄왔다.

 

 

 

그리스의 성장 : 영웅들의 이야기 ‘서사시’

▲호메로스(Homeros)의 입상

  그리스의 문학은 BC 800년경의 서사시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3,000년간이나 끊임없이 계속되어왔다. 그 중에서 역사적으로 그리스 문학이라 함은 호메로스부터 로마 제정시대 후기인 5세기 사이에 그리스어로 쓰였던 문학을 가리킨다. BC 10세기경부터 식민정책을 유지해 온 그리스는 넓은 지역에 여러 도시국가를 건설했는데, 그 결과 그리스 각 지역에서는 양식과 언어, 음율이 서로 다른 그 지방 특유의 문학이 탄생하였다. 이로 인해 그리스 문학은 그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성을 띄게 되었다. 서사시․서정시․연극․산문 등이 이때 탄생했으며 이 같은 문학양식은 현재까지도 그대로 내려온다. 오직 ‘소설’만이 근대문학의 산물로 남아있다.


  그리스 문학은 시대적으로는 대체로 고전 전기(BC 8세기~BC 6세기), 고전기(BC 5세기~BC 4세기), 헬레니즘 시대(BC 3세기~AD 1세기), 로마제정시대(2세기 ~ 5세기)로 나눌 수 있다. 그리스 문학은 이오니아 지방에서 탄생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부터 시작된다. 그 중 ‘유럽인의 정신과 사상의 원류가 되는 그리스 최대 최고의 민족 대서사시’라고 불리는 ‘일리아스(Ilias)’는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해에 일어난 사건들을 노래한 서사시이다.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의 왕비로 절세의 미인인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유혹해 간다. 이에, 그리스인들은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지휘로 1,000척의 배를 거느리고 트로이를 공격하지만 트로이 성은 함락되지 않는다. 자신을 섬기는 사제 크라이세스의 딸 크라이세이스가 아가멤논에게 잡혀가자 격노한 아폴론 신이 벌로 역병을 내린다. 이 수습책 때문에 벌어진 말다툼에서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한 그리스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가 노하여 싸움에서 손을 뗀다. 이 아킬레우스의 이탈이 바로 ‘일리아스’의 주제이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간청으로 주신 제우스는 신들에게 양군을 원조하지 말도록 명하여 그리스군을 패배케 한다. 패배한 그리스군의 참상을 좌시할 수 없어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무구와 전차를 빌려 그의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적을 패주(敗走)시켰으나 그는 트로이의 장수 헥토르에게 살해된다. 이 소식에 접한 아킬레우스는 복수하기 위하여 헤파이스토스가 특별히 만들어준 갑주를 입고 출전하여 헥토르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욕보인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왕은 신들의 비호(庇護)로 야음(夜陰)을 틈타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가 헥토르의 시체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맺는다.


  ‘일리아스’는 비극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여, 트로이 공방 50일 동안의 이야기 속에 10년의 전망을 담았으며, 과거를 뒤돌아보고 미래를 암시함으로써 비극성을 강조하였고, 여러 가지 비유로 자연계와 인간계의 관계를 특색 있게 묘사하였다. 무용을 노래하고 그리스 기사도를 찬양한 이 시는 방랑 시인 호메로스에 의해 BC 900년경 쓰인 작품이다. 그리스인들에겐 오디세이아(Odysseia)와 함께 그리스 민족의 단일성과 영웅적 자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유럽인의 정신과 사상을 낳은 원류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서사시는 주로 영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아테네의 패권이 확립되어가는 기원전 5세기까지 이어진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이전의 그리스 시는 전하지 않지만, 호메로스의 시에서 보게 되는 고도로 발달된 기법과 운율의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이전에 이미 그리스의 시는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메로스 이후로도 호메리다이(Homeridai)라 일컬어지는 호메로스의 계승자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며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으나 기원전 6세기 이후에는 서사시의 전성시대가 끝나고, 호메로스의 시 이외에는 점차 잊혀지게 된다.

 

 

 

그리스 문화의 중흥기 : 춤과 노래의 향연 ‘희극과 비극’
서사시의 시대가 끝난 이후 등장한 문학은 극시이다. 극시의 등장은 그리스의 대표적인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의 중흥기와 맞물려 있다. 그리스가 성장해나가던 시기의 서사시가 영웅신화를 통해 자부심과 영웅심을 고취시켰다면 중흥기의 희극과 비극은 영화를 지속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의 신들에 대한 경배 의식이 담겨있다.


  그리스 비극의 기원은 숲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의 전설을 내용으로 하는 사티로스(Satyros, 디오니소스의 시종으로 반인반수의 숲의 신)의 분장을 한 합창대가 노래하는 디튜람보스(디오니소스 송가)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극은 아테네의 독재자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기원전 534년경에 창설한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처음으로 경연 대회가 열리게 되었고, 테스피스(Thespis)가 최초의 승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합창대의 서정적인 노래와 춤이 초기에는 압도적으로 중요했으나, 점차 일상생활의 리듬에 가까운 이암보스에 의한 대화 부분이 증대되어 합창부는 중요도가 감해지게 되었다.


  비극은 기원전 550년경 아티카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테스피스에 의해 배우 한 명에 의해 연주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534년 이후 해마다 비극 콩쿠르가 열리게 되었다. 아이스킬로스(BC 525-456), 소포클레스(BC 496~406), 에우리피데스(BC 484경~406)는 아테네의 비극 전성기의 각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비극이 인간의 불행과 고난의 신비와 관계있는 제사와 춤에서 성장했듯이, 희극은 디오니소스 축제 때 행해진 우스꽝스러운 행렬(코모스)에서 기원된 듯하다. 도리스 지방의 시인 에피카르모스(530경~440경)는 최초의 희극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 형식은 기원전 486년 이래로 아테네의 연극 콩쿠르에서 정식으로 인정되었다. 희극은 비극이라는 진지한 예술과는 정반대의 성질로서 그 영역에 야유와 욕설을 내포하고 있다. 아티카의 희극은 비극보다 뒤에 구성면 등에서 비극을 모방하여 발달했다. 그리스 희극은 아리스토파네스(BC 450경~388경)에 의해 정점에 도달했다. 이 시대의 희극을 가리켜 고(古)희극이라 한다. 그리고 기원전 400년에서 336년 사이에 고희극(개인적․정치적 풍자)과 신희극(풍속희극)의 교량적 역할을 한 중기 희극의 시대가 있는데, 그 대표적 작가는 안티파네스이다. 그리고 기원전 336년에서 250년 사이의 신희극의 대표적 작가로는 메난드로스(BC 342경~292경)가 있다.

 

 

 

그리스에서 로마로 : 현학적 논리의 세계 ‘산문’
문학에 산문을 도입하는 일은 운문보다 훨씬 뒤인 기원전 6세기 후반부터였다. 헤카타이오스의 경우와 같이 오락적이 아니라 과학적 태도로써 진실을 기록하려는 산문작가를 거쳐, 이 산문은 헤로도토스(BC 480경~425)의 ‘역사’, 히포크라테스 의학서,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서 등에 의하여 발달의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을 주제로 하여 간결하고 우아한 산문으로서 ‘역사’를 썼다. 또한 아테네 명문 출신으로 그리스 최대의 역사가 투키디데스(BC 460경~400경)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주제로 하여 극히 엄정하고 공평한 태도로 사실을 추구하여 독자적인 산문 문체를 창조했다. 그 뒤를 이은 크세노폰(BC 431경~350)은 역사 외에 여러 수기와 회고록을 썼다. 한편 철학의 진보와 소피스트에 의한 변론술의 발달이 산문의 완성에 이바지했다. 플라톤(BC 427경~348)의 ‘향연’과 ‘대화편’, 데모스테네스(BC 384~322)의 웅변,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의 ‘시학’과 ‘수사학’ 등은 아티카 산문 완성기의 산물이다.


  로마 시대의 그리스 산문 비극과 희극의 완성에서 시작되어 산문의 완성으로 끝난 아테네 시대가 지나고, 다음의 알렉산드리아 중심 시대가 되자 그리스 문학은 이미 창조력을 잃게 되었다. 산문이 시보다 중요하게 되었으며, 그 산문도 무척 기교적이며 현학적이 되었다. 로마 시대로 들어서자 산문 문체의 연구가 행해졌고 기원후 1세기 중엽에 나온 저자 불명의 ‘숭고에 대하여’는 후세의 문학론으로 다뤄졌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의 레오니다스(Leonidas at Thermopylae, 1814)


  기교적인 많은 산문 작품 중에 특히 뛰어난 것은 ‘영웅전’의 저자인 철인 플루타르코스(AD 46경~119 이후)와 웅변가로서 뛰어난 에세이 풍의 작품을 쓴 루키아노스(AD 120경~180경)이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은 16세기 아미요의 프랑스어 역과 노드에 의한 영역을 통하여 셰익스피어 등 여러 작가에게 재료를 제공했고 후세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의 수필집 ‘에티카’는 에세이의 시조라 일컬을 수 있다. 루키아노스의 ‘진짜 이야기’는 가공 여행담의 선구적 작품이다. 또한 풍자적인 여러 작품은 뒷날 에라스뮈스를 비롯한 모방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서간의 경우 플라톤의 서간집 이래로 문학의 한 형식으로서 수사학의 한 부분으로 발달했으며, 백과사전적 지식의 편찬이 행해진 것도 이 시대이다. 기원후에는 산문의 사랑 이야기가 생겨나 3세기경 롱고스(Longos)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목가적인 사랑 이야기 ‘다프니스와 클로에’가 나왔다. 이 시기는 세계의 중심이 그리스에서 로마로 넘어가던 시기로 그리스인 지식의 총체를 기록한 산문문학은 이후 로마 문학의 기반을 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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