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vs Book] 시대를 통찰하는 힘, 과거를 통해 오늘을 보다
[Book vs Book] 시대를 통찰하는 힘, 과거를 통해 오늘을 보다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3.10.2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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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셀러 로마인이야기와 대망을 통해 살펴보는 역사의 힘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Book vs Book] 로마인 이야기 vs 대망

 

시대를 통찰하는 힘, 과거를 통해 오늘을 보다
밀리언셀러 로마인이야기와 대망을 통해 살펴보는 역사의 힘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처럼 책은 언제나 우리에게 해답을 제시해 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해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준다. 우리는 책을 통해 몰랐던 것을 배우고, 그들의 삶을 체험하며,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힌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역사서는 과거를 살았던 이들의 삶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들이 치열한 삶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결과로 달려 나가는 과정은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찬란하게 빛나고 허망하게 스러져간 위대한 제국 - 로마인 이야기
유럽 문화의 근간이 되는 ‘로마 제국’의 이야기는 수많은 작가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어 왔다. 카이사르와 브루투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폭군 네로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 등 대제국 ‘로마’의 이야기는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수많은 예술작품을 낳았다. 로마를 다룬 서적 중 고전 중의 고전이라 불리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이후 수많은 로마 서적이 등장한다. 그 중 단연 손꼽히는 작품이 바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이다.
  1995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에서는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한 권씩 총 15권이 출판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초 마지막 15권인 ‘로마세계의 종언’이 출판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국내에서도 35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로마인 이야기’는 역대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지금까지도 최고의 역사교양소설로서 꾸준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역사는 위대한 교훈이자 탁월한 오락”이라는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뛰어난 상상력과 빼어난 글 솜씨로 빈자리를 채워 흥미진진한 로마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200자 원고지로 2만 1,000장 분량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지만 매 순간 격동과 변화가 가득한 내용으로 누구나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기원전 753년 변방의 도시국가로 출발한 로마는 주변 부족국가들을 통합하며 기원전 270년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다. 그러한 로마를 막아선 것이 지중해 패권국 ‘카르타고’였다.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 초반 승리가도를 달리지만 명장 ‘한니발’의 등장 이후 이탈리아 본토를 유린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젊은 집정관 ‘스키피오’의 활약으로 한니발을 이탈리아에서 쫓아내는 데 성공한 로마는 아프리카의 지마에서 한니발과 최종결전에 임하고, 결국 카르타고는 멸망한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지중해 세계의 패자가 된 로마는 승리에 도취한 채 차츰 안에서부터 병들기 시작한다. 그라쿠스 형제는 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원로원에 도전하지만 결국 혼란 속에서 살해당한다. 이후 등장한 마리우스와 술라는 강력한 군사력을 통해 개혁을 실현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파 숙청’ 속에 처형당하고 만다.
  혼란의 시기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이다. 30대 후반에야 역사의 무대에 올라선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삼두정치’의 밀약을 맺고, 41세에 집정관에 오른다. 갈리아를 평정한 카이사르는 단숨에 로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등극한다. 그를 경계한 원로원은 그에게 군 해산과 귀국을 명하지만 로마에 변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카이사르는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넌다. 이탈리아를 장악한 카이사르는 방대한 로마에 걸맞은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개혁을 단행하지만 기원전 44년 3월 15일, 폼페이우스 회랑에서 브루투스 일당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는 공화정으로 복귀를 선언하며 원로원의 환대를 받지만, 이는 사실 카이사르가 지향했던 ‘제정’의 첫 단계였다. 아우구스투스 자신은 절대로 황제를 입에 담지 않았지만 행정기구의 개혁을 밀고 나가 실질적인 제정을 실현한다. 그리고 제국 내의 치안유지와 안전보장에 힘쓴 결과, 광대한 영토에 ‘로마에 의한 평화(팍스 로마나)’를 가져온다.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뒤에 이어진 4명의 황제(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는 민중과 타키투스를 비롯한 동시대 역사가에게 신랄한 비판을 당한다. 결국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던 로마에 위기가 닥쳐온다. 내적으로는 내전이 발발하고, 변경에서는 이민족의 반란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베스파시아누스의 노력에 힘입어 로마는 다시금 평화와 번영의 시기 ‘5현제 시대’를 맞이한다. 이처럼 로마의 힘이 최고조에 달했던 전성기. 시오노 나나미는 이러한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근간은 ‘인프라 스트럭처(사회적 기반)’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로마 제국이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며 평화를 향유한 5현제 시대 이후 제국은 쇠망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의 분할통치를 실시하고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방위하는 것으로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고,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인, 일신교의 가치관을 도입하여 그것을 ‘지배의 도구’로 삼는 것으로 제국 재통합을 꾀했다. 그러나 제국 재건을 위한 그들의 결사적인 노력도 보람 없이, 서서히 로마는 ‘로마다움’을 잃어갔다. 그리고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했던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죽음 이후 사실상 동서로 분리되어 통치되던 로마 제국은 훈족과 서고트족, 반달족의 침입에 의해 결국 멸망의 길에 이른다.

 

 

 

 

 

 

평생을 패배하고 한 번의 승리를 거머쥔 도쿠가와 이에야스 - 대망
출간되자마자 일본열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950년 3월부터 1967년 4월까지 무려 17년 동안 4,725회에 걸쳐 일본의 대표적 언론인 ‘츄니치 신문’, ‘홋카이도 신문’, ‘코베 신문’에 동시 연재된 경이로운 기록을 가진 작품이다. 이것은 200자 원고지로 계산할 경우 5만 매 가량으로 일본 문학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이다.
  단일 작품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이 작품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기초해서 독자의 의표를 찌르며 자유자재하는 광활한 상상력이 종횡무진, 시종일관 관통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분열과 싸움으로 뒤덮인 센고쿠 시대를 마침내 평정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 수 있었던 여러 인간성의 조건과 역사의 조건들을 깊이 있게 파헤쳐 이를 정갈하면서도 무게 있는 문체로 탁월하게 그리고 있다. 역사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인간성의 이상과 평화에의 꿈을 집요하게 추구해간, 그래서 저자 스스로 ‘이상 소설’이라 부른 이 작품은 전후 일본 국민들에게 전쟁과 평화, 이상적인 인간상 등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 ‘국민적인 문제작’이기도 하다.
  또한 신문 연재 중에 출간되어, 완간도 되기 전에 3,000만 부가 팔렸고 이후 문고판 등을 합칠 경우 대력 1억 수천만 부가 팔려, 일본 출판계의 전후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일본인이 가장 애독하고 있는 이 책은 일본의 정신, 문화, 역사, 심지어는 그들의 국민성까지도 가장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는, 일본 소설사상 최고의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을 일본의 가장 본받을 만한 지도자로, 난세를 평화의 시대로 이끈 일본 최대의 영웅으로 부각시킨 이 소설로 인하여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관심이 폭증, 언론과 학계에서 일대 붐을 이뤘다. 이후 수차례에 걸쳐 드라마와 영화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1970년 국내에 소개되어 곧바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대망은 이후 정재계 인사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미카와쿠니의 오카자키성 성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오다 가문과 이마가와 가문의 틈새에서 세력을 잃어가던 마츠다이라 가문은 결국 이마가와 가문에 이에야스를 인질로 보낸다. 그러나 호송 도중 오다 가문에 납치된 이에야스는 그곳에서 어린 노부가나와 친분을 쌓는다. 이후 다시 이마가와 가문의 인질로 보내진 이에야스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영지를 잃게 된다. 이에야스는 11년 간 인질생활을 하며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다 노부나가에 패하고 죽으면서 그에게도 기회가 온다.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은 이에야스는 그를 도와 천하 제패의 첫 걸음을 나선다. 이후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의 장녀 도쿠히메와 자신의 장남 노부야스를 결혼시켜 오다 노부나가와의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였지만, 이 관계는 결국 아들과 처의 죽음으로 끝난다.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난 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와 맞섰지만 손잡았던 오다 노부카쓰가 겁에 질려 항복해버림으로써 맞설 명분을 잃고 자신의 영지에 웅거하게 된다. 전국시대를 마감하는 마지막 통일전쟁을 치르던 히데요시에게 이에야스의 복종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결국,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품으로 들어갔다. 히데요시와 정면으로 싸울 경우 불리한 입장을 고려한 것이다. 배후를 안정시킨 뒤 히데요시는 호죠씨와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히데요시는 간토를 이에야스에게 하사한다. 하코네를 기준으로 동과 서로 나누어 간토라고 불리던 이 지역은 땅은 넓었지만 교토로 가는 길이 높은 산으로 가로막혀 중앙 정치 무대와는 심리적 거리감이 매우 컸다. 거기에 이 지역은 최후까지 히데요시에게 저항한 호죠씨가 정치를 잘했기 때문에 지역민들의 충성심이 컸다. 이런 곳에 히데요시의 부하인 이에야스가 지역 영주로 부임한다는 것은 혼란을 자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히데요시가 노린 것이 이것이었다. 중앙의 땅을 몰수하여 이에야스가 돌아올 땅을 없애면서 혼란한 가운데 그를 방치하여 중앙을 쳐다보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 그의 방책이었던 것이다.
  히데요시의 속셈을 아는 이에야스의 가신들은 분노했지만 이에야스는 오히려 덤덤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다스리던 영지를 서둘러 떠나 동쪽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주 근거지를 비옥한 오다와라에 정하지 않고 뜻밖에 늪지대인 에도로 정했다. 그는 에도의 늪지대를 메우고 길을 닦고 상인들을 불러 모아 에도를 어엿한 성으로 발전시켰다. 이에야스는 일본의 패권을 차지한 뒤에도 교토 인근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서 막부를 열어 이후 간토 지역의 발전을 꾀했고 특히 에도 지역의 개발을 통해 훗날 도쿄 탄생의 초석을 놓았다.
  동쪽에 자리 잡은 이에야스는 제어력을 상실한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켜 각 지역 다이묘들을 국제 전쟁터로 내몰 때 아직 영지의 혼란이 수습되지 않았다는 핑계거리를 대며 유일하게 전쟁에 참가하지 않고 일본에 남아 군사력을 비축했다.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중에 사망하고 전쟁이 끝이 나자 일본 국내는 다시금 중앙의 정권을 탈취하기 위한 다이묘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때 실질적으로 가장 큰 힘을 가졌던 이에야스는 임진왜란에 나갔던 무공파 다이묘들을 회유하여 자신의 아래에 두고 각지의 다이묘들과 혼인 동맹을 맺으면서 그 힘을 더욱 키워나갔다. 그리고 이시다 미쓰나리와의 역사적인 ‘세키가하라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며 에도 막부시대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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