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용으로 그친 대입전형제도
1회용으로 그친 대입전형제도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3.10.08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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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손대는 대입제도, 수험생만 괴롭다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Edu Focus]2014 대입전형

 

멀리 보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뜻의 백년대계(百年大計)로 일컬어지는 교육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상황은 정반대다. 1969학년도에 예비고사가 도입된 이후 2014학년도 입시까지 46년간 대입제도는 38회 바뀐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1.2년에 한 번꼴로 새로운 대입제도가 시행됐다는 수치이다. 결과적으로 대입제도의 잦은 변경은 수험생과 학부모를 혼란에 빠뜨리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땜질식 ‘백년대계’…46년간 38번 바꿨다

 

대입제도가 가장 자주 바뀐 것은 대입 국가고사였다. 예비고사는 1969학년도에 시작해 1981학년도까지 13년간 이어지다 1982학년도부터 학력고사로 바뀌었다. 1994년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체제로 바뀌었지만 “일생이 걸린 문제인데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냐”라는 시럼 횟수를 늘리자는 요구가 빗발치자 1년에 두 차례 시험을 치루기도 했다. 성적이 우수하지만 시험 당일 컨디션이 나빴거나 답안지를 밀려 표기하는 등의 실수로 시험을 망친 학생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대입 국가고사를 1년에 두 차례 치르는 실험은 결국 한 해로 끝났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학입시 결과가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는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입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치러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성화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정부는 학생들을 볼모로 해마다 새로운 실험을 했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기존 제도에 만족하는 학부모들은 아무 소리를 하지 않지만 불만을 가진 학부모들은 거세게 정부를 비난하니까 어떻게든 대입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대학별로 치르는 시험도 수시로 바뀌었다. 1969학년도부터는 예비고사와 함께 대학별 본고사를 치렀지만 1981학년도에는 본고사가 폐지됐다. 1986학년도부터 논술이 대학별로 치러지는 등 대학별 고사가 부활했다가 2년 만에 논술이 없어졌고 국어·영어·수학 중심의 학교별 지필고사가 1994학년도에 다시 생겼다가 3년 만에 폐지되는 등 끊임없이 오락가락했다. 오종운 이투스청솔 평가이사는 “입시 제도의 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바꾸다 보니 교육 정책 신뢰가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사교육 의존도만 높여 왔다”고 말했다.

대입제도의 변화는 학생을 대학이 자율로 선발하느냐, 정부 주도 아래 통일된 기준으로 뽑느냐를 놓고 끊임없이 갈등한 결과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가장 먼저 등장한 대입제도는 대학별 입학시험으로 1953학년도까지 이어졌다. 초기에는 지원자가 절대 부족해 정원 미달이 속출했으나 몇 년 후 자율권을 악용한 정원초과 현상이 나타났고 무자격자에 대한 입학 허가 남발 등 입시부정이 판을 쳤다. 정부는 이 같은 병폐를 막기 위해 1954년 대학별 고사 전에 일종의 자격시험인 국가연합고사를 실시했지만 ‘권력층 인사 자녀가 연합고사에 떨어졌다’는 소문이 떠돈다는 이유로 그해 시험 결과가 백지화되는 해프닝을 겪었다. 국가주도 대입시험이 제대로 정착한 시기는 대학정원 관리를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대학입학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를 도입한 1969학년도였다. 그러나 대학들이 국어·영어·수학 본고사를 어렵게 출제하면서 고액 과외가 성행하는 결과를 빚었고, 정부는 1980학년도부터 본고사를 폐지하고 1982학년도엔 학력고사 성적과 내신만으로 선발하도록 했다. 1994학년도엔 통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되고 대학별 고사가 다시 허용됐지만 국·영·수 중심의 지필고사가 고액과외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3년 만에 대학별 고사가 또 폐지됐다.

 

오락가락 입시, 수험생만 ‘골탕’

대입 국가시험도 거의 매년 부분적으로 변경됐다. 학력고사 과목 수가 차츰 늘면서 1986학년도에는 인문계의 경우 17개 과목을 풀어야 했다. 수능 체제에서도 외국어 듣기 문항을 늘리거나 표준점수를 도입하는 등 변경이 잦았고 2008학년도부터 도입된 수능등급제도 1년 만에 폐지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또한 1945년 이후 단과대별로 모집했다가 1966학년도부터 학과제로 바뀌는 등 그동안 7차례나 모집단위가 바뀌기도 했다. 적성에 대해 잘 모르는 수험생들이 대학에 입학해 1년여 교양과정을 통해 폭넓게 사고하도록 돕자는 측과 비인기학과에는 학생이 가지 않으려 해 기초학문을 살리기 위해서는 학과별로 모집해야 한다는 측이 치열하게 치고받은 결과다. ‘선지원 후시험’이냐 ‘선시험 후지원’이냐도 논란거리였다. 선시험 후지원은 1981학년도 도입됐지만 경쟁률이 낮은 곳으로 수험생이 몰리는 ‘눈치 작전’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1988학년도 다시 선지원 후시험으로 환원됐다.

이에 이희범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사무총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입정책이 바뀌었지만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된 적은 거의 없다”며 “학생과 학부모들은 대입제도 변경의 실험대상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준별 수능’, ‘니트 연계’ 폐지…졸속 대입제도

지난 8월 27일 교육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발표를 접한 뒤 학부모 이남주(47)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 씨 가족은 중3인 아들을 위해 약 2주 전 강남구 논현동으로 이사했다. 지금 중3이 대입을 치르는 2017학년도부터 대학입시에 ‘성취평가제’를 적용한다는 교육부의 2011년 발표를 믿고 무리해서 진행한 이사였다. 성취평가제는 상대평가를 통해 9등급으로 학업성취도를 나누는 현재 방식과 달리 절대평가로 5개 등급을 나누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특수목적고(특목고)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등 일부 선발형 학교와 이른바 교육특구의 학생들이 유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날 ‘성취평가제를 2019학년도까지 유보한다’는 발표를 듣고 이 씨는 망연자실했다. “아들이 서울권 대학에 진학하길 바라는 마음에 이사까지 갔는데, 힘들어질까봐 걱정돼요.”

2~3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졸속 대입제도 탓에 성취평가제뿐만 아니라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니트)의 대입 적용 방안도 시행 한번 하지 못한 채 폐기됐고, 올해부터 시행되는 국·영·수 수준별(쉬운 A형과 어려운 B형) 수능 역시 단 한 해만 적용되고 폐지의 길을 걷게 됐다. 대부분 이명박 정부 때 제시된 방안들이 박근혜 정부 들어 뒤집히는 모양새다. 교육부는 여기에 더해 새로운 대입제도 개편 방안 중 하나로 문·이과를 완전히 통합하는, 큰 틀의 변화 방향까지 제시했다. 우선 2017학년도 대입부터 적용하겠다던 성취평가제를 2019학년도 대입까지 유예하고 그 이후 적용 여부는 2016년 하반기 중 결정하기로 했다. 당장 내년부터 고교 현장에서는 기존의 석차 9등급제에다 성취평가제를 병행하는데도, 가장 중요한 대입 반영을 5년이나 미루고 기존 9등급제를 그대로 입시에 반영하겠다는 것은 성취평가제를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의 수능 연계 방침 철회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2·3급(학생용)으로 수능 영어 시험을 대체하겠다는 계획은 2008년 1월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인수위가 처음으로 밝혔다. 그러나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칠 준비가 안 돼 사교육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돼 왔고, 결국 5년여 만에 폐기됐다. 이 과정에서 50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이 낭비된 것으로 보인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이 8월 27일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올해까지 약 465억 원의 예산이 2·3급(고교생용) 시험을 개발하는 데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7만 명에 달하는 응시자들도 쓸데없는 준비를 한 셈이 됐다. 2·3급 시험에는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무려 6만 9,197명이 응시했다.

올해 11월 치러지는 2014학년도 수능부터 도입되는 수준별 수능(A·B형)도 마찬가지다. 2015학년도부터 영어는 폐지되고, 국어와 수학은 2016학년도까지만 유지된다. 이 방안도 2011년 1월 발표된 것이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모의고사 시행 과정에서 문제제기가 이뤄져, 계속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교육부, 現 고1·2 대입제도 확정안 발표

한편 대입제도의 무한변신은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 치르게 되는 2015학년도 대입(大入) 수시모집에서는 논술고사로 선발하는 대입 정원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지난 9월 23일 ‘2015~2016학년도 대입제도’ 확정안을 발표하고 “2015학년도 입시부터 대학들이 논술고사를 가급적 시행하지 않도록 유도하겠다”며 “논술고사를 실시하는 대학은 정부 재정 지원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대입에서는 서울·수도권 주요 대학을 포함해 29개 대학에서 논술시험을 치른다. 교육부는 또 교과 지식을 평가하는 문제 풀이식 적성고사나 구술형 면접고사를 실시하는 대학에 대해서도 내년부터 재정 지원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사교육에 의존하는 논술·적성·구술고사보다는 학생부·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등 대다수 학생이 부담 없이 준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학들이 학생을 선발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수시모집에서 수능 성적을 반영해 학생을 선발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수능 점수를 최저학력기준으로 사용하는 대학에 대해 정부가 재정적 불이익을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대학들이 지금까지 논술·면접고사 등을 실시하고도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높게 설정해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을 뽑는 편법을 써왔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학들이 수시모집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수단이 줄어들면서 내년부터 정시모집 비중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올해 서울에 있는 주요 사립대가 정시에서 약 30%의 학생을 선발하는데, 2015학년도에는 정시 선발 비율이 50% 이상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며 “수시모집에서 수능의 영향력은 줄어들겠지만 정시 모집 정원이 늘어나면서 수능시험의 중요성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수시모집에서 학생부 위주 전형은 교과 중심의 ‘학생부 교과 전형’과 비(非)교과 중심의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나뉘게 된다. 기존의 ‘입학사정관 전형’은 ‘학생부 종합 전형’에 해당한다. 교육부는 “앞으로 입학사정관 전형이 약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현장 교사들의 지적이 있었지만, 입학사정관이 참여해 학생부 비교과 영역을 바탕으로 선발하는 전형을 따로 구분해 강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복잡한 입시를 단순화하기 위해 2015학년도부터 대학별 전형 방법 수를 6개로 제한했다. 지난 8월 말 입시안 시안(試案)을 발표할 때 교육부는 ‘정시모집에서 학과 내 분할모집을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날 최종안에서는 “모집 정원 200명이 넘는 계열은 최대 2개 군(群)까지 분할모집이 가능하도록 예외를 둔다”고 일부 방침이 수정됐다.

대입전형제도 변경으로 또 다시 세상이 시끄럽다. 대입전형제도로 인해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량과 준비 부담, 이로 인한 학교의 입시 학원화와 사교육 문제, 그리고 전인교육 실패 등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단순한 현상방지를 위해 대입전형제도를 정권마다 바꾸는 것은 벽에 비친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세척제를 바꾸는 것과 다름없는 일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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