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통과 즐거움은 하나,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라
[단독]고통과 즐거움은 하나,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라
  • 조재휘 기자
  • 승인 2013.10.08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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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터, 치열했던 케이지를 떠나 인생 제 2막을 준비하다
[이슈메이커=조재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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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Interview] 팀파시 강남 위승배 대표

 고통과 즐거움은 하나,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라

 

 

 

 

‘한국 종합 격투기 1세대’, ‘슈퍼 코리안 데니스 강을 꺾은 최초의 한국인’, ‘한국형 퀸튼 잭슨’, 팀파시 위승배 대표를 따라 다니는 수식어들이다. 지난 4월 기존의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로드 FC 11 무대에 다시 섰던 그는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팀파시 강남을 찾아 만난 위승배 대표는 그의 말대로 편안함 가운데서도 여전히 파이터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선수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2007년, 위승배 대표는 이재선, 유우성과 힘을 합쳐 팀파시를 창단해 선수와 지도자의 길을 함께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팀파시는 처음에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으나 남의철, 권배용 등의 정상급 파이터들과 수련생들이 서서히 모여들며 현재는 국내를 대표하는 명문팀으로 거듭났다.

 

 

 

팀파시 강남이 로드FC 최다승 부문과 승률 부문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팀파시 선수들의 유명세 때문인지 일반 관원도 많이 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팀파시 강남 소속 선수들은 지금까지 로드FC에 17번 출전해 14승을 차지했습니다. 남의철(5승), 위승배(2승), 권배용(2승), 김희승(2승), 김내철(2승), 이상일(1승)의 합작품이죠. 승률은 무려 82.3%이고 5승의 남의철은 아직까지 로드FC에서 무패를 자랑합니다. 이 때문인지 팀파시를 찾는 관원들이 꾸준히 늘어 별관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입니다.

처음 대림동에서 팀파시를 시작할 당시에는 관원이 1명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관원들이 늘어 공간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수부 만이라도 옮길 수 없을까 해서 2011년 만들어진 게 팀파시 강남입니다.

팀파시 강남이 짧은 시간 안에 자리 잡은 데는 강남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사실도 한몫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주요한 원인은 팀파시의 훈련된 트레이너들입니다. 도장의 운영은 첫째가 사람입니다. 두 번째가 프로그램이구요. 보통 반대로 생각해서 실패하는 겁니다. 격투기 지도자들은 파이터로서의 기량도 갖춰야 하지만 가르치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희 팀파시 강남의 트레이너들은 현역 선수이거나 전직 선수 출신으로 최하 3년 이상의 종합격투기 경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오픈 후 1년간 주말마다 지도자들이 모여 트레이닝법과 코칭법에 대한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저는 지도자들이 멈춰서 공부하지 않는다 싶으면 어느 정도 압박을 가합니다. 이런 점들이 지금의 팀파시를 만든 원동력입니다.

 

‘위승배’하면 2011년 데니스 강과의 시합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당시 1라운드 TKO로 위승배 선수의 승리가 선언되었지만 데니스 강의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져 10분 만에 시합이 재개되었다. 이어진 2라운드에서 위승배 선수는 다시 TKO로 데니스 강을 제압했다.

 

당시 시합 결과와 관련해 위승배 선수에 대한 비난여론도 있었습니다만.

먼저 1라운드에서의 승리가 로 블로(복싱에서 벨트 아래를 가격하는 행위, 종합격투기에서는 상대의 낭심을 가격하는 행위를 말한다)였느냐 하는 것이 논란이 됐었죠. 하지만 그 때 저는 상대가 제 니킥에 맞은 줄도 몰랐습니다. 어느 순간 데니스 강이 쓰러져 있었죠. 시합을 하다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합니다. 데니스 강 선수는 이걸 로 블로성 공격이라고 어필했고 저는 찜찜하게 시합을 끝내고 싶지 않아 시합 재개를 수락해 2라운드에서 다시 TKO로 이겼습니다. 데니스 강 선수도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구요. 그런데도 경기 이후 이런저런 잡음이 일어 안타까웠습니다. 솔직히 은퇴전이었고 많은 관심을 받을 것 같아 내심 기대도 했었거든요. 속상한 마음에 끊었던 담배도 입에 댔고 술도 마셨습니다. 하지만 내 가족과 후배들, 관원들이 보는 앞에서 최선을 다해 이겼고 원하던 것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데니스 강 전(戰) 당시의 은퇴선언을 번복하고 올해 4월 '로드 FC 11'에서 카메룬의 강자 소쿠주와의 시합을 가졌는데, 2년에 가까운 시합 공백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합에 나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원래 소쿠주와 싸우기로 한 상대는 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대회 주관사에서 그와 싸울 상대를 찾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여러 선수들과 접촉하고 있었는데 누구도 나서질 않아 저에게 시합을 제의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감량을 포함해 시합을 뛸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려면 적어도 시합 7주 전에는 오퍼가 들어와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저는 6주 전에 오퍼를 받았죠. 딱 하루 고민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설마 죽기야하겠나’하는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당시 레그 킥을 너무 맞아 한동안 다리를 절기도 했습니다.

혹자는 저에게 다시 시합에 나서는 것 아니냐고 묻는데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은퇴입니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 줘야지요. 하지만 저는 에너지가 너무 많아 집중할 곳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난 10년을 파이터로서 살아 왔다면 앞으로의 10년은 팀파시의 지도자이자 운영자로서의 길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최고의 미트 트레이너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3년 안에 국내 최고, 10년 안에는 아시아 최고, 나아가서는 세계 최고의 미트 트레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늦깎이 파이터, 그가 보는 한국 종합 격투기

 

대부분의 파이터들과 달리 위승배는 격투스포츠를 접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종합격투기에 도전장을 내민 대표적인 파이터다. 경험했던 운동은 수영이 전부였으며 종합격투기에 입문할 당시 28세로 비교적 늦은 나이였다. 위승배는 이름을 알리기 2006년부터 국내 리그로는 스피릿MC에서, 해외로는 러시아 M-1 무대에서 활약하기도한 한국 종합격투기의 산 증인이다.

 

늦은 나이에 격투기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종합 격투기를 시작한 10여 년 전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격투기 전성시대였습니다. TV에서는 연일 프라이드나 K-1이 방송되고 격투 전문 잡지도 3~4개가 있을 정도였지요. 당시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고깃집에서 주방 보조로 일하던 저는 뭔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내안에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죠. 그러던 찰나 여러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종합 격투기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때 이미 28살이었고 제대로 해 본 운동도 없었습니다. 격투기에 대해서는 막연한 환상만 가지고 있었지만, 가난한 제가 할 수 있는 건 종합격투기 뿐이라는 생각에 찾아간 곳이 코리안 탑 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훌륭한 코치님들과 감독님의 지도 아래 훈련으로 하루하루 강해진다는 것은 엄청난 기쁨이었습니다.

 

한국 종합 격투기의 현 수준과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국내에 종합 격투기가 들어온 지 10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 10년 동안 시합이 있건 없건 포기하지 않고 격투기의 길을 갔던 선수들은 지금 지도자 혹은 현역 선수로 남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국내 종합 격투기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멉니다. 미국은 3전 이상을 치른 파이터가 만여 명에 달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적·물적 인프라가 엄청납니다. UFC와 같은 큰 시합 뿐 아니라 작은 시합들도 많구요. 주도권을 미국에 빼앗겼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일본에도 많은 선수가 있고 시합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2~3개의 단체만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로드 FC가 3년 전부터 메이저 단체를 지향하며 꾸준히 시합을 열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선수들이 시합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실정입니다.

또 한 가지 격투기의 저변 확대와 관련해서는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직도 격투기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인식을 걷어 내기 위해서는 관장님들이나 코치들이 전문성을 강화해서 일반인들의 수준에 맞는 안전한 트레이닝을 제공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해야 합니다. 또한 아마 리그와 작은 소규모 시합들이 더 많이 생겨서 선수들이 서로 경쟁하며 성장해 나가야 대중들을 리드할 수 있다고 봅니다.

확실한 것은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한국 종합 격투기의 환경은 개선되고 있고 그 속도도 빠르다는 것 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만큼의 발전을 이뤄 낸 격투인들이 있기에 그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라

 

종합 격투기 선수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선수를 하겠다며 팀파시를 찾아온 지망생들의 90%는 처음 3개월 안에 포기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저와 저희 코치들은 3개월 동안은 지망생의 이름도 기억하려하지 않습니다. 정을 주지 않으려고 말이죠. 하지만 3개월을 넘기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서로 나서서 챙겨 줍니다.

파이터로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힘듭니다. 미국에 만 명 이상의 파이터가 있다곤 해도 시합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또 선수생활을 길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관리도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영양학이나 트레이닝론 등 스포츠 과학이 발달해 스스로 연구하며 노하우를 축적해 가면 얼마든지 오랜 선수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멘탈 트레이닝까지 필요합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몸도 무너지기 때문이지요.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야 선수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고, 갈망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한 고통은 필수입니다. 저는 즐거움과 고통은 구분되지 않는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를 꿈꾸는 사람들도 이런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이슈메이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초등학교 이후로 학과 공부를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재수할 때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대학 입학을 위해 반짝 공부를 한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종합격투기라는 저의 길을 찾았고 이 길을 오래 걷기 위해 자연스레 연구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싫어하던 공부가 필요하니 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요컨대 공부를 통해 길을 찾는 것도 방법이지만 가고 싶은 길을 찾은 후에 쫒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제 경험상 후자가 능률면에서도 훨씬 좋습니다. 먼저 원하는 길, 사랑하는 일을 먼저 찾으십시오. 그 다음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면 분명 여러분이 원하시는 바를 이뤄내실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때 쯤, 위승배 대표에게 세계적 강자와의 매치가 성사된다면 시합에 다시 나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저는 이제 제 시합보다 후배들의 시합을 신경 쓰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단호함 속에서 이제 트레이너로서 팀파시의 선수들을 세계 수준으로 키워내겠다는 위승배 대표의 결의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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