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규제 장벽, 위협받는 총기청정국
위태로운 규제 장벽, 위협받는 총기청정국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3.09.30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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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밀반입되는 총기 수백 정, 더는 대한민국도 안전하지 않다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Gun Control]  총기 규제법

 

최근 세계 각국에서는 잇따라 대형 총기 사건이 발생하며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미국의 워싱턴 DC에서는 군부대 내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로 13명이 사망했으며, 케냐의 나이로비의 대형 쇼핑몰은 인질극 테러로 최소한 60여 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다쳤다. 올 초에는 3D 프린터로 제작과 실탄 발사가 가능한 총기가 등장해 총기 공포를 더욱 부추겼다. 우리나라는 사냥용 이외의 민간인 총기 소지가 불법이지만 근래 발생하고 있는 총기 관련 소식은 우리도 더 이상 총기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매년 발생하는 사고에도 총을 버리지 못하는 미국

 

지난 9월 16일,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911 테러’ 12주년 추모행사를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 그것도 미국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그 충격은 더 컸다. 이날 발생한 총기 난사에 의해 적어도 13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다쳤다. 당시 시설 내부엔 약 3천여 명이 근무 중이었으며, 인근에는 지하철역과 미국 프로야구 구장이 인접해 있어 자칫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사건 발생 지점에서 백악관까지는 단 5.6km, 미 연방의회 의사당도 고작 1.1km 거리에 불과했다. 현장에서 총격전 끝에 사망한 34세의 용의자는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어 정신과 치료를 받은 기록이 있으며 폭력게임에 심취해 총기 사건으로 이미 체포된 적도 있다고 전해졌다. 이 사건으로 워싱턴 전역의 학교와 공항이 장시간 폐쇄됐고, 연방의회, 펜타곤 등의 정부시설에선 경비가 대폭 강화되는 등 초비상이 걸렸다.

워싱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9월 19일, 이번엔 시카고에서 또 한 번의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시카고 사우스사이드 지역 ‘코넬 스퀘어 공원’ 농구장에서 시작된 무차별 총격은 3세 어린이를 포함한 13명의 시민에게 부상을 입혔다. 잇따른 총격 사건에 미국 전역은 총기공포로 대혼란에 휩싸였다. 그간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은 드문 일은 아니었으나 추모 분위기가 가시기도 전에 연달아 발생한 총기 사건으로 미국인들은 2001년 9월 11일의 공포를 다시 떠올린 것이다.

사건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총기규제’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총기규제법안’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강력히 주장해온 최우선 과제였으나 그간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몇 차례나 좌절됐다. 지난해 코네티컷주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서 20명이 넘는 어린이가 사망한 직후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58%의 응답자가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으나 이번 사건 후 같은 질문에는 49%만이 찬성의 뜻을 표했다. 오히려 사건 후 ‘호신용’으로 총기를 구입하겠다는 사람이 더 늘어나는 양상까지 보였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피의자에 대한 정보를 접한 미국인들이 ‘총기사고’의 원인을 ‘범인의 정신이상’과 ‘폭력적인 게임’에 중독된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분석을 제기했다.

 

국내에선 엄격한 규제 아래 수렵용 총기 소지만 허가

미국이 매년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도 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 음모론자들은 “총기협회와 군수회사들의 대대적인 로비의 영향”이라고 주장하며, 역사론자들은 “독립전쟁, 인디언 분쟁, 남북전쟁을 거쳐 온 미국인들의 ‘민병대’적인 자기방어 기제”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현재 미국에서 민간인이 소유한 총기 수는 공식 통계상 2억 8천만 정이 넘으며, 이는 전 세계 민간인 보유 총기 수의 거의 절반에 이른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불법유통 총기까지 생각하면 한 명 꼴로 한 자루씩의 총을 가진 셈이다. 총이 많은 만큼 총기사고도 빈번해서 매년 9만 명 이상이 총기 사고를 당하고 3만여 명이 사망한다.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총기 소유가 가능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강력한 총기규제법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 총기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주소지의 관할 지방경찰청에 총기 출처 증명서를 제출하고 범죄경력과 정신병력 조회를 한 다음 신체검사까지 마쳐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거친 후 적합 판정을 받아야 총기를 구매할 수 있는 소지 허가증을 교부받을 수 있다. 총기를 사더라도 집에 보관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비 수렵기에는 총을 경찰서 무기고 컨테이너에 보관하다가 가을, 겨울 수렵기에는 사냥을 시작하는 새벽 시간 총을 꺼내서 사냥이 끝나는 저녁 시간까지 반납해야 한다. 총기의 밀거래도 엄중하게 단속하고 있다.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2013.03.23 개정)’에 따르면 총포나 도검, 화약류 등을 허가 없이 소지하거나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 2012년 말 기준으로 국내에서 소지가 허가된 총포는 모두 18만 8,000여 정으로 이 중 10만 3,000여 정이 개인이 소지하는 총기다. 총기 중엔 공기총이 11만 5,000여 정으로 가장 많고 엽총과 권총이 뒤를 잇고 있다. 권총의 경우 1,903정으로 집계돼 있다.

 

빈틈 노리는 밀반입 급증, 암암리에 거래되는 총기류

하지만 국내의 모든 총기가 법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12일 신길동의 한 식당 주인 오모(59) 씨는 자살하기 위해 ‘출처가 불분명한’ 미국 제닝스사의 22구경 권총을 사용했다. 해당 총기는 6발의 총탄을 장전할 수 있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특수 사이즈 권총으로 국내에서 보유를 허가한 적이 없는 모델이다. 경찰은 총기 일련번호를 제조사에 문의하려 했지만 해당 회사가 이미 폐업해 확인할 길이 없어졌고, 사건이 발생한 지 반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통경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9월 4일 증평군 증평읍의 한 야산에서는 머리에 총상을 입은 백골 시신 옆에 45구경 탄창식 권총 한 자루와 탄피가 발견됐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원에 감식을 의뢰했으나 아직 뚜렷한 결과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총열에 새겨진 총기 번호도 2~3개월 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 옆에서 비를 맞고 부식해 알아볼 수 없는 상태다. 올해에만 유통경로를 확인할 수 없는 밀반입 총기가 두 정이나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즉각 불법 유통 단속에 나섰으나 아무런 성과도 건지지 못했다.

관세청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 8월까지 인천공항과 부산항에서 각각 942건, 119건의 총기류가 밀반입 도중 적발됐다. 올 한해만도 총기 및 관련 부품 밀수 수량이 총 142건에 달한다. 권총과 소총, 엽총, 공기총, 못총, 화약발사식 가스총 등 총기류와 총기부품, 실탄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전체 밀수 건수로 보면 지난 2012년 187건 중 같은 시기와 비교해 늘어났으며, 2011년 116건을 훌쩍 뛰어넘은 규모다. 이러한 총기류는 여행자 휴대품으로 몰래 들어오기도 하고, 국제우편물로 위장해 들어오기도 한다. 지난 4월 24일 인천해양경찰서는 독일·중국·홍콩 등 해외에서 모의 총기를 밀반입해 인터넷을 통해 유통한 일당 4명을 적발했다. 이들은 인터넷으로 구매자를 물색한 뒤, 3~500만 원을 받고 직거래를 통해 총기를 판매했다고 한다. 이들은 총기 부품을 분해한 뒤 장난감 총기를 수입하는 것으로 위장해 세관을 통과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밀반입 되는 총기류의 경우 일부는 민간인들이 해외에서 개인적으로 구매해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국내를 오가는 외국인들에 의해 들어온다. 지난 9월 9일에는 부산 감천항에서 러시아인 의사의 가방에서 총기 2정이 세관에 의해 적발됐다. 평소 외국 선박들이 자주 드나들며 러시아인 선원들의 밀입국이 빈번히 발생하는 곳이라 우려는 더욱 크다. 실제 부산 지역은 외국인들에 의한 총기사고가 종종 일어나는 지역이다. 2003년에는 부산 영선동의 아파트 현관에서 러시아 마피아들이 총격전을 벌여 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06년 부산항에선 러시아제 권총 4정과 실탄 115발이 발견됐고, 지난해 3월에는 권총을 찬 채 러시아 선원이 부산 시내를 활보하다가 붙잡혔다. 최근 내란음모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 관련 녹취록에서 “부산에 가면 총을 구할 수 있다”라는 발언이 나온 것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범죄를 막는 총인가, 범죄를 낳는 총인가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총기규제 여부는 그 나라의 주변 상황과 특수성에서 기인하곤 한다. 스위스는 성인 남성에게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다양한 무기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는 산악 지형인 스위스가 전쟁 등 유사시 신속히 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책이다. 다만 총기 등록을 의무화하고 총기 휴대 시 반드시 신고하도록 조치해 총기 관련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세계 분쟁 지역의 하나인 이스라엘도 스위스와 유사한 제도를 채택하며 유사시에 대비하고 있다.

총기규제법은 존재하나 그 효력이 유명무실한 경우도 많다. 남미와 아프리카 등의 국가들도 총기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등록된 총기의 몇 배가 넘는 총기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유통되는 불법 소형 무기는 6억 4,000만 정으로 대부분 선진국에서 만들어 아프리카·중동·남미 등에 팔려나간다.

물론 총기규제 법안이 총기사고 자체를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남미나 아프리카의 경우처럼 법을 무시하거나 법의 허점을 파고든 총기가 사고를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스위스처럼 적절한 규제와 통제아래 총기 보유 가구 비율이 36%에 이르면서도 엄격한 규제와 통제 아래 총기 사고율이 극히 적은 경우도 존재한다. 미국은 ‘규제’와 ‘소지의 자유’의 틈에서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코네티컷주 초등학교 총기 사건 이후 미국총기협회(NRA)는 “총을 든 악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총을 든 선인이다”라는 표현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당시 학교에 무장경비가 배치돼 있었다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거란 주장이다. 반면 총기 소지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총기를 소지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총에 맞아 죽을 가능성이 4.5배 높다”는 연구결과를 들며 총기가 범죄를 막아주진 못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미국 일리노이주에서는 한 소년이 여동생의 총기 오발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5월에도 켄터키주의 2살 난 여동생이 5살 오빠의 총에 맞고 숨졌다. 이 총은 미국의 한 총기 제조업체가 ‘어린이용 생애 첫 총’ 시리즈로 광고하는 제품이었다. 같은 달 플로리다에서도 숨바꼭질을 하던 소년이 발견한 총을 갖고 놀다 6살 난 여동생을 쏴 중태에 빠뜨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의 총기 전문가 ‘존 굿매처’는 “아이들은 총기에 관심이 많아서 TV나 영화에서 보던 대로 해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총기 규제가 제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우리 아이들의 손에 장난감 총 대신 진짜 총이 들려있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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