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개발의 줄다리기, 인사동에 불어오는 ‘재개발’ 바람
전통과 개발의 줄다리기, 인사동에 불어오는 ‘재개발’ 바람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3.09.30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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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유적 훼손 우려 속 소단위 맞춤형 재개발 추진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Culture Issue] 재개발로 무너지는 전통

 

 

 

올해 초 인사동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무엇보다 오랜 추억이 서려 있던 유명 선술집들이 화마에 의해 전소돼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는 점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결국 방화로 밝혀져 범인이 징역 8년을 선고받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이미 사라진 추억은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려 받을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지금, 인사동은 ‘재개발’이라는 또 한 번의 폭풍을 맞이하고 있다.

 

 

 

 

정책 변경으로 맞춤형 재개발 돌입한 인사동

지난 8월 22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공평 도시환경정비구역 변경 지정안’을 발표하며 지난 35년간 멈춰있던 인사동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게 될 것임을 알렸다. 이에 의하면 인사동 161번지 일대 약 3만 3,072㎡의 구역이 69개 소단위로 구분돼 각각 맞춤형 재개발에 들어가게 된다. 이 일대는 1978년 ‘전면 철거형 재개발구역’으로 묶여 그간 정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난 2월 화재 당시, 소방전문가들은 소방차 등 진화장비의 접근이 쉽지 않은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밀집해 있던 3층 이하의 노후 건물이 화재의 크기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특히 화재로 전소된 건물 대부분이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는 점에서 인사동 일대 목조건물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그간 인사동은 크고 작은 화마에 시달려 왔다. 1990년 떡집 골목 화재, 2002년 먹자골목 화재, 2003년 피맛골 화재, 2008년 금좌빌딩 화재, 2010년 음식점 화재, 2010년 YMCA 뒷골목 화재 등 수차례의 대형화재에도 불구하고 개발제한에 걸려 근본적인 안전대책이 마련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울시는 안전대책 마련과 도시환경정비, 인근 상권 활성화와 더불어 인사동의 전통성 또한 살리고자 ‘맞춤형 재개발’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인사동의 골목길이나 승동교회 등의 지역 명물은 그대로 둔 채 필지 별로 재개발을 허가하는 방식이 허용된 것이다. 변경안에 따르면 대지건물비율을 최대 80%까지 허용해 건축물 리모델링을 크게 장려하고, 건물 높이를 3~4층까지 높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화재 발생 시 도로에서 건물 출입구까지 소방차가 진입할 수 있도록 도로 폭을 4m로 넓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사동 문화지구 내 부적합업종에 대한 조례도 적용돼 화장품 가게, 커피전문점, 노래방 등은 허가되지 않으며 골동품점, 표구점, 필방, 화랑 등의 입점을 권장할 방침이다.

 

 

역사 고려하지 않은 개발로 파괴된 문화유산

인사동 인근 상인들은 재개발 정책에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한편으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서울시에서도 가장 고심했을 부분인 ‘전통성의 보존’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맞춤형 재개발’을 통해 도심의 역사성을 살리고 골목길이나 옛 도시 조직을 유지·보존하면서도 노후지역도 점진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전통과 개발’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됐다.

일례로 지난 2004년부터 재개발이 진행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청진동 일대의 경우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서울 글로벌 센터, GS종로타워 등의 고층빌딩들이 이미 들어섰거나 완공을 앞두고 있다. 해당 지역은 조선 시대 때 말을 타고 종로 대로를 지나던 벼슬아치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기 싫어 평민들이 피해 다녔다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해 ‘피맛골’이라고 불리던 곳으로 저렴한 가격의 선술집, 국밥집 등이 번창하며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던 전통 있는 골목이었다. 하지만 종로1가에서 6가까지 이어지던 이 골목은 재개발 이후 종로 1가에서 3가 사이에 일부가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며, 600개가 넘던 점포도 현재에는 30여 개 정도만 남아있다.

무분별한 재개발이 파괴한 전통 유산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인사동에 위치한 태화빌딩은 조선 초에는 인조의 잠저(潛邸,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가 있던 곳이며, 헌종 때에는 경빈 김씨의 사당으로서 ‘순화궁’이 있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이완용의 소유가 되었다가 유명한 기생집 ‘명월관’의 지점으로서 ‘태화관’이라는 요정이 들어선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 바로 이 태화관이다. 태화관은 1937년 철거된 후 태화여자관으로 변모했으나 이마저도 1980년 도심재개발계획에 따라 철거돼 현재의 12층짜리 빌딩이 들어서게 되었다.

2014년 3월 개관 예정인 5000억 짜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내 최초의 근대 체육시설이자 우리나라 현대 스포츠의 성지인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한 자리에는 해외 유명 건축가가 디자인한 UFO를 연상시키는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이 일대는 300년 넘는 전통을 지닌 동대문시장과 600년 역사유적인 한양도성 이간수문과 성곽, 서울 동촌의 조선 시대 거주 분포 특징을 잘 보여주는 각종 군영과 군사시설 유구가 그대로 남아있는 역사적인 장소다. 하지만 DDP로 인해 하도감 터 유구는 제자리를 떠나 다른 자리에 옮겨졌으며, 성곽 역시 건물 앞 초라한 돌담의 모습으로 놓이게 됐다.

 

전통과 역사 중시하는 개발 추구 - 로마, 파리

약 3,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 로마는 잘 보존된 옛 유적과 도시 구조로 연간 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세계적인 명소이다. 유럽 역사의 기원과 화려했던 로마제국 시대의 유적을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는 로마는 반면 살인적인 교통난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현재 로마 시내에서 운행 중인 지하철은 단 2개 노선뿐이다. 이는 현 도시의 모습을 철저히 보존하려는 로마의 도시계획 때문이다. 교통난 해소를 위해 2000년 초부터 새 노선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지하 속에 잠들어 있는 유물 때문에 공사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다. 로마문화재보존국(RPO)의 요청에 따라 유적 훼손을 막기 위해 지하 24m 아래 깊숙한 곳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고고학계의 철저한 감독을 받다 보니 애초 2008~2009년 완료 예정이었던 것이 2015년까지 늦춰졌다. 이미 운행 중인 지하철 노선도 완공에 무려 28년이 걸렸다. 로마에서는 건물 신축도 엄격하게 제한된다. 현재 로마 시내의 건물 대부분은 건축된 지 100년에서 최고 500년이 넘었다. 로마시는 간판까지도 철저히 규제하며 도시 분위기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또 다른 세계적 관광도시인 프랑스 파리도 마찬가지이다. 파리 도심의 상업지구에는 200년에서 1,000년의 역사를 가진 4천여 개의 보호대상 건물들이 있다. 수많은 건물 하나하나는 정확하게 규정돼 있는 경관 보전 시스템으로 보호받고 있다. 게다가 건축물 자체뿐 아니라 주변구역까지 포함하는 집단적 경관규제가 적용된다.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의 경우 주변 500m 이내가 보존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가로수 하나도 손대지 못하게 돼 있다. 2012년 이후 ‘새로운 파리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통해 도시 개발이 추진되고 있으나 현재 37m로 정해져 있는 고도제한은 그대로이다. 도심지 고층화도 좋지만 파리 전체의 외관도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개발 이뤄져야

앞서 설명했던 세계적인 도시들 또한 도심 개발에 대한 논란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 도시의 화려한 이면에는 침체된 도시 경제와 주택난, 교통난에 따른 고통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파리개발공사(SEMAPA)의 주도 아래 1991년부터 파리시 센강 동쪽 오스테를리츠역과 마세나 대로 사이의 버려진 철로와 산업용지인 기성 시가지를 정비하는 ‘파리 리브고슈(Paris Rive Gauche)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까지 주택 5,000가구와 공공기관, 업무·상업·서비스 시설 등 복합타운을 조성해 국제 경제문화 중심지로의 변모를 꿈꾸고 있다. 또한 파리 서쪽에 계획적으로 건설한 부도심 ‘라 데팡스(La Defense)’에는 개성적이고 독특한 고층빌딩이 속속 들어서며 ‘새로운 개념의 미래 도시, 파리’의 가치를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도시 경제 활성화와 아름다운 미관 조성을 위해선 어느 정도의 재개발은 불가피하다. 종묘, 창덕궁 등 역사유적이 밀집한 서울 구도심의 경우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은 분명 좌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해당 지역 지자체와 국회의원들도 도시 미관을 해치는 세계문화유산 주변의 정비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세계유산 보존·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됐다. ‘보존’은 마냥 내버려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문화유산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인근 지역의 정비와 경제 활성화가 동반되어야 도시의 기능이 유지될 수 있다. 건축가 임대원(희림건축사 대표)씨는 한 인터뷰를 통해 “파리는 개발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는 미적 기능을 해치지 않고, 기술적 기능을 만족시키는 범위 내에서 지속 가능한 도시를 건설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또한 주위환경을 고려하는 유기적 건축 또한 필요하다”며 주위 환경을 고려하는 유기적 건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는 ‘제2의 라 데팡스’를 꿈꾸며 도시개발을 서두르고 있지만, 주위 환경과 동떨어진 개발 정책은 오히려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많은 이들이 개발제한과 규제에 묶여 멈춰있던 구도심의 경제가 재개발을 통해 다시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추억과 역사가 묻어있는 장소들이 ‘도시환경정화’와 ‘재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의 재개발 정책에 따라 철거될 위기에 처했던 신촌의 ‘홍익문고’는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의 반발에 따라 재개발 대상에서 제외됐다. 반세기 넘게 서울 신촌 대학가를 지켜온 서점이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았던 시민들의 바람이 역사적인 장소를 재개발의 폭풍 속에서 건져낸 것이다. 반면 1985년 유네스코가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던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은 최근 과도한 난개발로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다시 세우는 일은 어렵다. 지난해 복원된 인왕산 수성동 계곡은 아파트를 철거하고 옛 모습을 되찾는 데에 수천억 원이 예산이 투입됐다. 개발을 앞둔 인사동에는 유학자인 이율곡과 조광조, 조선 말기 박영효, 지석영의 집터뿐만 아니라 민영환 자결 터, 서북학회 터, 승동교회, 탑골공원 등 근대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치밀한 사전 조사와 충분한 고려가 수반된 개발이 더욱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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