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최악의 유혈사태, 전국 비상사태 선포
이집트 최악의 유혈사태, 전국 비상사태 선포
  • 박병준 기자
  • 승인 2013.08.26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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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와 이슬람형제단 충돌, 사망자 1천 명 넘어
[이슈메이커=박병준 기자]

[Cover Story Ⅰ] 이집트 유혈사태




인류의 역사 3,500년 중 전쟁이 없었던 평화의 시기는 230여년에 불과하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인류는 정복하기 위해,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고 적과 싸워왔다. 최근 전 세계의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국가는 단연컨대 이집트일 것이다.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해온 무바라크 대통령이 혁명으로 밀려나고, 최초로 직선제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모하메드 무르시. 그러나 무리한 이슬람주의식 정치는 이집트 경제악화와 맞물려 국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고, 집권 1년만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군부의 압력에 밀려 실각한다. 무르시 복귀를 주장하는 무슬림형제단 세력과 이집트 과도정부의 군부의 충돌로 유혈사태가 발생하며 전 세계가 그 귀추에 주목하고 있다.


이집트 유혈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초반의 공습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능력을 인정받고 공군대장으로 진급’, ‘1975년 4월 사다트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으로 지명’, ‘1981년 10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되자 대통령직 승계’ 무하마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걸어온 길이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30년 동안 이집트의 지도자로 군림해왔지만 2011년 1월 이집트 경제의 장기 불황과 함께 오랜 기간 독재정치를 해왔다는 이유로 이집트 국민들은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시위대와 국제사회의 퇴진요구로 대통령직을 물러났다.

무바라크 퇴진 이후 이집트에서는 5,040만 유권자를 대상으로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선거를 치렀고, 결선투표에는 당시 총리였던 아흐메드 샤피크와 무슬림형제단이 창당한 자유정의당이 지지 기반인 모하메드 무르시가 진출했다. 샤피크의 결선투표 진출 소식은 이집트 국민들에게 무바라크 정권의 부활로 다가왔고 각지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이때 무르시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자신이 집권하면 자유정의당을 탈당하여 여러 정치 세력이 참여하는 연립정부를 구성할 것이며 기독교도 및 여성의 권익을 보호할 것임을 밝히며 무바라크 정권의 부활을 막기 위해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2012년 6월, 대통령에 당선된 무르시는 취임선서에서 “민주공화

정치를 수호하고 헌법과 법을 존중할 것이며, 국민들의 이익 보호와 국가의 독립 및 국가의 영토를 보존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맹세한다”고 선서했다. 하지만 이 맹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무르시는 이슬람주의에 기초한 헌법 개정 추진으로 본인의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 외의 모든 사회 세력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 이집트의 당면과제인 물가와 치안, 실업률 등에는 소홀하고, 과거 독재 정권의 통치 기반이었던 군부와 경찰 개혁을 등한시, 오히려 이들과 손을 잡고 무슬림형제단 기반의 권력독점에 열중했다. 이 당
시 이집트 국민들의 군부 신뢰도는 94% 무슬림 형제단의 신뢰도는 26%였다. 결국 무르시는 집권 1년여 만인 2013년 7월 3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군부의 압력에 밀려 실각했다. 이에 무르시를 지지하던 무슬림형제단을 주축으로 무르시 복귀 주장세력이 카이로 시내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이집트군과 경찰은 40일 넘게 농성 중인 시위대를 무력진압하기에 이른다.


내전도 문제없다는 이집트 군부, 지도부를 잃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무슬림형제단

2013년 8월 14일, 장갑차와 불도저를 앞세운 군부는 무르시 지지 시위대의 강제해산 작전을 시작했다. 카이로 시내에서 천막을 치고 무르시의 복귀를 요구하던 시위자들에 대한 진압을 시작해 민간인 421명, 군경 43명이 사망(이집트 보건부 집계)했고 3,6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사망자 중에는 중동지역 뉴스통신사 X뉴스와 영국 스카이뉴스 소속 기자도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하짐 알베브라위 임시 총리는 방송을 통해 “이집트에 오늘은 어려운 날이지만 혼란을 막기 위해 진압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라고 발표했고, 과도정부를 이끄는 아들리 만수르 임시대통령은 국영TV를 통해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발표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임시 부통령은 무

▲이집트 과도정부의 엘베블라위 임시 총리 “우리는 내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력진압에 반발해 사임을 하겠다고 밝혔다. 시위는 이후 이집트 전역으로 퍼졌고 군경과 민간인 간의 충돌은 알렉산드리아와 수에즈 등을 비롯, 다른 도시로 번졌다.

시위의 주축이 되고 있는 무슬림 형제단은 1928년 이집트에서 창설돼 이웃 국가로 세력을 넓혀온 세계 최대의 이슬람주의 단체다. 무슬림형제단은 줄곧 비폭력·평화적인 대응을 강조해왔지만 일부 시위대가 교회와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과격 행동을 하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일고 있다. 무력진압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난 8월 21일, 군부는 반군부 시위를 주도해 온 무슬림 형제단 최고 지도자 모하메드 바디에를 체포하고 무슬림형제단 지도부를 포함해 단원 1천여 명을 체포하기에 이른다. 지도부를 잃은 무슬림형제단 중에는 과격행동은 더욱 심해졌다. 독립 성향 유력 일간지 ‘알 마스리 알윰’은 무슬림형제단의 무르시 지지 시위로 카이로 동물원의 동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보도를 내기까지 했다. 이에 이집트 과도정부는 이들을 테러단체로 낙인찍고 해체를 검토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이집트 집권세력이던 무슬림형제단은 순식간에 테러단체로 규정된 것이다. 이집트뿐 아니라 걸프 국가들은 무슬림형제단이 테러단체와 연관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위대와 군부의 충돌로 사망자가 1,000명이 넘어가는 시점인 8월 20일, 엘베블라위 임시 총리는 “우리는 내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무슬림형제단 시위대는 평화적이지 않았다”며 “진압 작전에 돌입하기 전 해산을 요구했고, 출구도 있었지만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시위대는 무기를 갖고 있었고, 이를 사용한 것도 확인했다. 수백 명이 숨진 것은 유감이지만 후회는 없다. 똑같은 상황이 닥치면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태가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집트 법원은 무바라크 전 대통령에 대해 석방 명령을 내렸다. 아랍 민주혁명으로 30년간의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무바라크의 석방으로 인해 축출에 앞장섰던 무르시 지지 세력에서는 “군부는 무슬림형제단 시위를 유혈 진압해 1천명이 넘는 사람을 학살했다. 부라라크는 2년 전 850명이 숨진 유혈사태의 책임자다”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집트 사태, 세계 각국의 반응은

EU는 이집트 유혈사태에 대해 무기 수출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음을 밝혔다.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브뤼셀에서 긴급 외무장관 회의를 마친 뒤 “이집트 군부와 임시정부, 무슬림형제단 등 양측 모두가 폭력과 도발행위를 중단하고 즉각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무기 수출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집트에 대한 모든 경제적 지원 중단은 이집트의 민주주의 회복에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유지한다.

미국은 이번 이집트 사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현재 매우 유동적인 상황이고 우리가 면밀히 주시하고 있지만 진실 여부에 대해 지금은 확인해 줄 것이 없습니다”라며 군부와 무르시 실각에 대해 불분명한 입장을 취

▲사태가 악화될수록 이집트는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될 우려가 커지고 있을 뿐이다.
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최우선 한다는 미국이 미온적으로 나오자 미국의 태도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집트는 무바라크 정권 시절 미국의 중동 내 우방 역할을 해왔으며, 미국은 이집트에 매년 15억 달러 규모의 군사, 경제 원조를 해왔다. 이로 인해 미국은 이번 유혈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국제적인 여론은 유혈사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지배적인데 반해 미국이 이처럼 방관자적 입장을 고수한다면 비난의 대상은 미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도 대 이집트 정책은 정치권의 쟁점이 됐다. 존 매케인 미 상원의원은 “우리는 할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규정을 어겼습니다. 군부 쿠데타에 대해선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고 우리 법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발언한 반면, 피터 킹 미 하원의원은 “우리는 이집트 군을 약화시켜 무슬림형제단의 복귀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실시할 능력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며 “이집트 지원 중단은 과도정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고, 이는 수에즈 운하 등 전략자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이집트 주변의 중동국가들도 상반된 견해를 보이며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중동지역 국가 중에선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집트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는 “폭동과 싸우는 군부를 지지한다”고 말했으며, 외무장관인 사우드 알파이살 왕자는 “이집트 원조를 끊거나 위협하고 있는 국가에 전하겠다”며 “아랍 및 이슬람 국가들은 부유하기 때문에 이집트를 원조하는데 망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이 같은 적극적인 개입 정책은 카타르, 터키 등과의 대립을 격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터키와 카타르 등 무슬림형제단과 가까운 국가는 이집트 군부를 중대 범죄자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했고, 이란도 강제해산 작전을 ‘학살’로 규정하고 강력히 비판했다. 그러나 아라비아 반도 군주국가들은 의견이 달랐다. 특히 아랍권에서의 발언권을 높이려는 터키의 경우 이번 사태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터키는 최근 이집트 군부가 유혈사태를 일으키자 이집트 주재 대사를 소환하기도 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 터키 총리는 “이집트 사태의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며 “2011년 이스라엘 법무장관이 프랑스 유대인 학자를 만난 자리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이집트 선거에서 이기더라도 권력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논평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라고 반박했다. 이집트 내부의 갈등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무슬림형제단 지도부 축출, 무바라크 석방 등으로 이집트의 앞날은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게 됐다. 사태는 점점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이집트 정부에게 유혈사태를 억제하기 위한 해결책을 촉구하는 등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은 점점 고조되고 있지만 이집트 군부도, 무슬림형제단도 전혀 물러섬이 없다. 사태가 악화될수록 이집트는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될 우려가 커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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