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Interview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유영숙 박사
녹음이 짙게 베인 7월. 화사한 초록색의 재킷을 걸친 그가 따뜻한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마치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듯 편안한 느낌의 말투와 손짓이 전 장관이라는 무거운 직함을 내려놓고 한사람의 시민, 과학자로 돌아온 그의 마음을 나타내는 듯했다. 지난 22개월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미래융합기술연구본부 분자인식연구센터의 책임연구원으로 돌아온 유영숙 박사를 만나 그간의 일들과 동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지난 6월, 유영숙(전 환경부 장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박사는 제12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 학술진흥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한국 생명과학기술분야의 발전에 이바지한 여성과학자들의 업적을 치하하고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2002년도에 제정된 상이다. 이 상을 받은 유영숙 박사는 모세관 전기영동법과 질량분석법을 이용한 생체 고분자 물질 분석 전문가로서 세포 내 신호전달기전 연구 및 시스템스 생물학 연구에서 뛰어난 성과를 나타냈다. 또한, 국가 과학연구의 정책입안과 과학 대중화에 이바지하며 한국 생명과학 발전에 공헌한 업적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22개월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유영숙 박사
지난 3월, 공직생활을 마치고 현업으로 복귀하셨습니다. 복귀하신 소감이 어떠신지요?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물론 대단히 영광스럽고 감사했으나 매 순간 초긴장 상태이고 대단히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으로 돌아오고 난 뒤 고향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있는 창의포럼(forum)을 들으며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이렇게 여유롭게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KIST로 돌아오니 긴장도 풀리고 마음이 훨씬 편안하지만, 예전처럼 바쁘지 않은 삶이 때로는 어색하기도 하네요.”
복귀 후 최근 박사님의 동향은 어떠신가요?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에게 큰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어요. 몇 주 전 시골에 있는 중학교에서 강연을 하며 많은 질문을 주고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이러한 기회를 통해서 과학자로서, 환경 분야 정책결정자로서의 꿈을 갖 하고 그런 좋은 꿈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죠.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청소년들에게 꿈을 많이 나눠주고, ‘좋은 꿈’의 씨앗을 널리 퍼트리고자 합니다.”
지난 6월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 학술 진흥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먼저 대단히 영광스럽고 기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상은 저 혼자 받은 상이 아니에요. 그동안 제가 여성과학자로서 굳게 설 수 있도록, 그리고 여성 지도자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와 지원을 해주신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선 저의 가족들, KIST의 동료들, 환경부 직원들, 그리고 저의 실험실 식구들에게 특별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번 수상을 계기삼아 앞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한사람의 과학자로서 젊은 후배 여성과학자들에게 바람직한 롤 모델(role model)의 역할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환경보호와 친환경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발전이 필요
장관직을 수행하던 지난 22개월.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힘드셨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매 순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2012년 9월, 구미 불산 가스 누출사고 이후에도 크고 작은 화학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구미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환경부에서 적극적으로 큰 틀 안에서 조사를 벌였고 국민들에게 피해를 최소로 줄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하지만 이러한 사고들이 발생할 때마다 국가 전체적으로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예로 화학물질 사고에 관련된 부처가 여러 부처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난 순간 책임을 지고 바로 처리를 하기가 어려운 시스템입니다. 때문에 앞으로 새 정부에서도 이 같은 문제에 대해서 더욱더 관심을 가지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가장 의미를 두었던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제가 일을 하는 방식이 목표를 설정할 때 철저한 분석을 통해 설정 하고, 그 목표가 설정되면 전력질주를 하는 형식이에요. 이러한 방식으로 몇 가지 일들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먼저 환경부 직원들의 전문성을 강화시키는데 노력을 했습니다. 선진적인 인사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일들이 많아짐에 따라 공무원 자신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국제협력에 집중했습니다. 앞으로 미래의 환경문제는 국경이 없어지며, 한 국가가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도래하게 됩니다. 때문에 국가 간의 공조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지난 정부에서 역점을 두었던 ‘저탄소녹색성장’이라는 국가 정책에 발맞춰 다양한 사업을 시행했어요. 국가가 성장하되 환경을 보호하고 친환경적으로 성장하고자 함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업들은 전체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 정부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의 사업들이 잘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과학자들의 처우개선으로 차세대 과학 인력풀 강화
“제가 맡은 일이라면 그것이 설령 작은 일이라도 열정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연구뿐만 아니라 사소한 행정적인 일에도 상대방으로부터 감동을 끌어낼 수 있도록 열정을 쏟으며 살아왔던 저의 삶의 모습을 귀하게 평가해준 것 같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최근 대한민국 이공계 현실의 아쉬운 부분들에 대해 안타까운 점을 토로하셨는데요.
“과학자의 길에 들어서는 차세대 인력풀(人力pool)이 적으며, 중간에 과학의 길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해요. 이로써 우리나라의 과학 경쟁력이 저하되며 결국은 국가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된 이공계 기피 현상이 그 주된 원인일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과학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저는 이와 관련하여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가슴 아팠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서울 시내 중학교의 2, 3학년 학생들 700여 명 앞에서 ‘일상생활 속의 생명과학’이라는 주제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꿈나무들을 떠올리며 생명과학자의 한사람으로서 막중한 사명감까지도 느꼈어요. 강연은 중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진행되었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마쳤죠. 강연 후 저는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고 영민하게 생긴 한 여학생이 손을 들었어요. 저는 생명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첫 질문은 실로 충격적이었어요. “박사님, 연봉이 얼마에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쾅하고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한 시간의 열강 후에 이런 질문이 나온다는 것에 돌아오는 내내, 그리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슴이 무척 아팠어요.”
이러한 부분들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점들이 바로잡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세 가지에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우선으로 학생들이 가지는 직업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돈과 연결하려는 태도의 문제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과제이기에, 인내를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해요. 두 번째로 과학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업적이 사회적으로 어떤 기여를 하는가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학자 처우에 대한 개선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최근 여성들의 사회적 입지가 높아지며, 과학계 역시 여성들의 역할도 중요시되고 있는데요. 박사님과 같은 삶을 선망하는 많은 후배 여성과학자들에게 조언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꿈과 열정과 감사함’이라는 세 가지 보물을 후배 여성과학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즉, ‘과학자가 되어 이 사회와 인류의 복지에 봉사하고 싶다는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와 연구에 온몸과 마음을 불사르는 열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당할 능력과 지혜를 허락하심에 깊이 감사함’이라는 보물이에요. 더불어 생명의 경이로움에 여성들이 더욱 관심과 애정을 갖기에 생명과학분야에서 여성과학자들이 더욱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어떤 과학 분야보다도 생명과학분야가 여성의 섬세한 특질이 좀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생명과학 분야의 많은 실험 과정에서 사용하는 Micro-Pipet(미량피펫)과 같은 기자재들을 다룸에 있어서 여성들의 세밀함이 요구되기 때문에 실험 결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유영숙 박사는 대한민국의 우수성에 대해 많은 국민이 인식하고 자부심을 느끼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관직에 있을 당시 전 세계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정말 대단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국민들이 과거 미운오리새끼에서 우아하고 멋진 백조로 변모한 대한민국의 모습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에 따르는 책임감과 균형 잡힌 올바른 생각을 갖는다면 국제무대에서 당당한 일원으로 더욱 성숙한 대한민국을 널리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