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혐오 Ⅰ] 온라인 공간 지배하는 혐오 표현
[이슈메이커_ 혐오 Ⅰ] 온라인 공간 지배하는 혐오 표현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8.07.24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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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온라인 공간 지배하는 혐오 표현

 

성숙한 시민의식이 궁극적 해결의 열쇠

 

ⓒPixabay
ⓒPixabay

 

최근 우리 사회는 성별이나 연령별 혐오, 외국인과 지역감정으로 인한 차별적인 표현들이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만연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인류 역사에서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존재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활발한 교류를 하는 현대시대에 이와 같은 반사회적 현상이 늘어나는 모습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방치한다면 종국에는 자신 스스로가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성 혐오 중심으로 파생되는 약자에 대한 차별

 

온라인에서는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혐오의 표현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사람을 벌레로 지칭하거나 여러 가지 단어를 자극적으로 합성한 말들이 너무나 쉽게 사용되면서 세대와 성별을 불문하고 보편화 된 것이다. 특히 ‘일간베스트 저장소’로 대표되는 여성 혐오 커뮤니티부터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남성 혐오 커뮤니티 ‘워마드’까지 몇몇 사이트들은 이성 혐오의 ‘분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워마드에는 한 대학교의 회화 수업 중 불법 촬영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이 게시되며 도마에 오른 바 있다. 더욱이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유포자를 두둔하는 움직임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확산되었다. 피해자가 단지 ‘남성’이라서 수사당국이 지체 없이 범인을 검거했다는 논리를 통해 성별 갈등을 유발시킨 것이다.

 

이러한 이성 혐오 문화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관련 사이트가 등장하며 본격화된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에 대한 남성의 공격이었고, 최근 들어 이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 남성 혐오 사이트가 등장하게 되었다. 2010년 개설된 ‘일간베스트 저장소’는 여성은 물론 특정 지역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과 범죄 행위로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선 커뮤니티였다. 최근에도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세월호 보도 장면을 ‘먹방’ 장면에 쓰면서 관계자가 ‘일베 회원’이 아니냐는 파문이 일어난 바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혐오 문화는 이성에 대한 비난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장애인이나 노인, 다문화 가족, 성소수자와 같은 약자들은 지속적으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왔다. 실제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자신의 정체성(성소수자·여성·장애인·이주민)과 관련해 발표한 조사 결과 장애인의 70% 이상이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움을 느끼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으며, 증오범죄 피해 우려에 대해서도 장애인의 81%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처럼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는 차별이 존재하는 위계구조 안에서 발생한다.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상대방에게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고 이를 조장하는 말과 행동들이 대부분 여성과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들을 겨냥하고 있는 이유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혐오는 단순히 개인의 기호 또는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기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 지키면서도 적절한 규제 필요해

 

그렇다면 현재의 민주주의 성숙과는 반비례하는 혐오표현이 쏟아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경쟁이 심화되는 사회 구조를 꼽았다. 경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견제해야 할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다. 박성준 문화평론가는 “구인난 등 자신이 일상 속에서 겪는 박탈감을 약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이 곧 혐오표현이라 할 수 있다”면서 “결국 강자에게 굴복하고 약자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면서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혐오적인 표현도 엄연히 ‘표현의 자유’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적 용인을 넘어서 타인의 존엄성과 보호받을 권리를 무너뜨린다면 그 자유 역시 막연히 보장할 수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는 “오로지 타인에게 경멸과 혐오의 감정을 전달해 피해를 주려는 의도로만 이루어지는 감정 표현들은 표현의 자유의 보장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만연한 혐오 문화가 심지어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지금, 사회적 자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홍성수 교수는 최근 한 북 콘서트에서 ‘맘충’, ‘전라도 홍어’, ‘김치녀’ 등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 혐오의 언어에 대해 적절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홍 교수는 “적절한 규제가 이뤄지지 않을 때 혐오표현이 기피나 차별로 이어져 결국에는 물리적 공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며 우리 사회가 연대해 대응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처럼 ‘혐오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 단체 차원의 움직임이나 통일된 기준, 합의를 통한 ‘차별금지법’ 제정 등 정치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시민의식 개선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지금 왜 디지털 시민성인가’ 토론회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은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면 이성 혐오와 왜곡된 성 의식, 자기 비하와 정보 만능주의로 인간성은 사라지고 아이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지 못한 채 사회에 흡수되고 말 것이다”고 경고하며 시민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거세게 부는 현실 속에서 여전히 중세 시대 마녀사냥 식의 혐오 표현이 만연한다면 사람과 기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미래사회에서 우리들은 올바른 가치관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사회의 관심과 합의, 구성원들의 성숙한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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