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탕치고, 심부름하고, 폭행당하고... 소방관 수난시대
허탕치고, 심부름하고, 폭행당하고... 소방관 수난시대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3.07.2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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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고 예방 위해 성숙한 시민의식 필요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Safety Issue] 홀대받는 소방인력

 

 

허탕치고, 심부름하고, 폭행당하고... 소방관 수난시대

대형사고 예방 위해 성숙한 시민의식 필요

 

지난 7월 15일, 전 국민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노량진 수몰사고. 그로부터 이틀 뒤,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누리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영상이 게재됐다. 사고현장으로 향하는 구조대 차량에 길을 터주기는커녕 앞으로 끼어드는 승용차의 모습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된 것이다. 해당 구조차량은 119특수구조단 특수구조대원 24명을 싣고 도봉소방서에서 한강대교 남단에 있는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중이었으며 결국 한강대교에서 발이 묶여 1시간 이상을 허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관을 심부름꾼으로 생각하는 무개념 신고자들

소방인력의 역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부족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문 개방·동물구조·벌집제거 등에 소모되는 소방인력은 연간 전체 출동건수의 30%를 웃돌고 있으며, 지난 4월 국회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소방공무원이 가장 많은 출동을 한 유형은 ‘화재사고 진압’이 아닌 ‘동물구조’였다고 한다. 동물구조는 벌집제거, 맹수포획부터 유기견 보호, 애완견 찾아주기까지 포함된다. 지난 2011년에는 속초 소속의 김종현 소방관(32, 남)이 건물 3층에 고양이가 고립돼 있으니 구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출동했다가 추락해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황당한 신고전화도 많이 걸려온다. 경기도의 한 소방서에 근무 중인 이모 소방사(29, 남)는 “건물 외벽 실외기 위에 까치가 죽어있다고 치워달라는 요청도 있었고, 길가에 쓰러진 비둘기가 아파보인다고 살펴봐달라는 신고도 있었다”라고 사례를 전했다.

응급구조를 위한 구급차량을 개인 자가용쯤으로 여기는 얌체족들도 문제다. 지난 7월 초 한 방송매체에서는 뉴스보도를 통해 이러한 ‘얌체신고족’들의 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다 손목을 다친 여성을 응급처치하고 병원으로 이송하려는데 자전거를 함께 실어달라며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고, 어떤 환자는 갑자기 병원 진료를 거부하고 자신이 옛날에 수술 받았던 강원도의 한 병원까지 가자고 떼를 쓰기도 한다. 한 소방관이 고충을 토로하며 커뮤니티에 게재한 내용에 따르면 어떤 노인은 수첩에 소방관들 이름과 직위를 적어놓고 다니며 일주일에 3회씩 연간 140회 이상 병원 진료에 구급차를 이용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한 여성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자친구와 놀고 장난치다가 좁고 긴 틈 사이에 휴대전화를 빠뜨려서 한 시간 동안 빼내려고 애를 쓰다 결국 119를 불렀다”고 글을 올리며 “난 폰 하나에 119 부르는 이런 여자”, “우리나라 세금 빼먹는 공무원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며 뻔뻔함을 보였다. 이 여성은 소방차를 타고 출동한 119대원의 현장 출동 모습과 임무를 끝낸 후 돌아가는 뒷모습 등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이 글은 트위터와 각종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크게 논란이 됐다.

 

 

 

인력부족과 노후화 된 장비가 사고 부른다

부족한 인력은 뜻하지 않은 사고도 불러온다. 지난 2월 경기도 포천소재 플라스틱 공장에서 화재 진압 도중 붕괴된 건물에 깔려 순직한 윤영수 소방교(33, 남)의 본래 직무는 구급대원이다. 소방호스를 들고 화재를 진압하거나 화재 현장에 돌입하는 것이 그의 직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출동할 때마다 진압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전문 분야가 아닌 일에 투입되었고 이것이 사고를 불러온 것이다. 응급환자를 수송하기 위한 119구급차의 수 또한 넉넉하지 못하다. 인구 1천만이 넘는 서울에 119구급차는 140대 밖에 안 되고, 여타 광역시들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소방장비의 노후화 문제도 심각한 건 마찬가지다. 최근 국회에서 보고된 전국 소방공무원의 장비 노후현황에 따르면 평균 노후율이 12.5%로 나타났다. 또 전국 소방차량 7,625대 중 내용연수가 경과한 차량은 1,490대로 노후율은 19.5%에 달한다. 이 같은 노후장비로 발생한 사고만 최근 5년간 31건에 이른다. 지난 2011년에는 이석훈 소방교(36, 남)가 19년 된 사다리차에서 아파트 고드름을 제거하다가 승강기 쇠줄이 끊어지면서 추락해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방예산을 대부분 재정이 취약한 시·도에서 부담하고 있어 노후소방차 문제를 지방재정만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2월에 소방방재청 발표한 바에 따르면 현대·첨단장비 교체 예산만 매년 87억 원씩 5년간 435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다양한 법률 개정으로 대응책 마련

지난 2월 국회에서는 연일 위험한 격무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법률안이 발의됐다. ‘소방공무원법 개정안’,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 ‘공무원 연금법 개정안’ 등으로 구성된 법률안은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관계자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는 소방공무원의 희생에 대해 국가가 보상하고 지원하기 위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며 이를 통해 소방공무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복리향상에 이바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지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화재진압이나 인명구조가 아닌 경우에는 국립현충원의 안장을 거부하고 있었다. 또한 소방공무원만 부상의 등급을 매겨 국립묘지 안장을 제한해 왔다. 앞서 얘기한 ‘고양이를 구조하다 추락해 순직한 소방관’의 경우 국립묘지법상 당연안장 대상인 ‘화재진압, 인명구조 및 구급업무 수행 중 순직한 소방공무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논란이 일었다. 가족의 끈질긴 행정소송을 통해 안장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다행히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같은 사례는 소방공무원에 대한 그간의 처우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분별한 신고전화에 대한 대응책도 지난 3월 마련됐다.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시행령(대통령령 제24417호)’에 따르면 구조대원은 단순한 문 개방 요청, 시설물에 대한 단순 안전조치 및 장애물 단순 제거 요청, 동물의 단순 처리·포획·구조 요청, 그 밖의 주민생활 불편해소 차원의 단순 민원 등 구조 활동의 필요성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구조출동 요청 거절이 가능해졌다. 또한 응급환자의 경우도 단순 치통환자, 단순 감기환자, 생체징후가 안정된 상태의 타박상 환자, 주취자, 만성질환자로서 검진 또는 입원 목적의 이송 요청자, 단순 열상 또는 찰과상의 외상환자, 병원 간 이송 또는 자택으로의 이송 요청자는 구급출동 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

갈수록 증가하는 구급대원에 대한 폭력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법률도 시행중이다. 구급대원 폭행 사례는 해마다 늘고 있다. 정도가 심해 형사처벌로까지 이어진 건수가 지난 2006년 38건에서 2010년에는 104건으로 늘었고 지난 2012년에도 90건에 달했다. 올해에도 5월까지 집계된 건수가 43건으로 증가추세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19구급대원에 대한 폭행사건의 대부분은 가해자들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지는데 지난 7월 12일에는 만취해 쓰려져 있던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출동한 119구급대원을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구급대원 폭행은 소방기본법에 의거 최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법규 이외에도 소방당국은 자체 특별사법경찰팀을 구성하여 구급대원 폭행자를 조사하고 검찰에 송치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처벌 규정은 강화됐지만 적용 사례는 드물어

소방관의 업무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법률이 마련되어 시행되고 있지만 다소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비응급 상황에 대한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을 거절한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도움이 필요한 국민의 최초 신고를 접수하는 119상황실에서는 전화통화만으로 현장의 응급·비응급 상황을 인지하기 매우 곤란하며, 출동을 거절하였을 때 2차사고로 확대될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현장 확인 차원의 출동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비응급 환자의 무분별한 구급차 이용도 마찬가지이다. 이송 거절에 대한 법률이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민원’이 두려워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소방관은 “소방서별로 실적을 따지는데 출동이 적은 곳은 인력이 조정되기 때문에 단순 민원이라도 거절할 수 없다”고 전했다.

장난전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장난전화에 대한 처벌규정 강화 및 홍보로 많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지난해에만 전국에서 1만 7,000여 건의 허위·장난전화가 119신고센터로 접수됐다. 그러나 실제 처벌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어 지난 6년 동안 걸려온 장난전화 18만 여 건 가운데 처벌된 사례는 17건에 불과하다.

소방차량의 출동을 방해하는 차량에 대한 단속 또한 강화됐지만 지난 노량진 수몰사고의 경우에서 보듯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보고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소방자동차 교통사고’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교차로’에서 발생했다. 긴급 상황에서의 소방자동차에 대한 앞지르기, 속도, 끼어들기를 제외한 제도적 보호규정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때문에 소방차·구급차를 운행하는 소방공무원들은 교통사고로 인한 불이익에 대해 부담감을 갖고 출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허위·장난전화, 비응급상황, 단순 민원처리로 인한 출동은 소방 인력의 낭비를 불러온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을 때문에 정작 경각을 다투는 응급 환자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한 소방관은 “응급환자의 경우 1, 2분이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간이 되곤 한다. 비응급출동이나 허위신고 때문에 출동이 늦어져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날이면 너무나 안타깝다”며 시민들이 좀 더 경각심을 가지고 소방인력을 대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매년 7~8명의 소방관이 순직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소방관들에 대한 존경과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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