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등반객 유치로 몸살 앓는 에베레스트
무분별한 등반객 유치로 몸살 앓는 에베레스트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3.07.0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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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8,000m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의 교통 체증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Climbing accident

상업등반

 

무분별한 등반객 유치로 몸살 앓는 에베레스트

해발 8,000m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의 교통 체증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 60주년을 맞이한 지난 5월, 언론을 통해 전문 산악인 2명이 해발 6,500m와 8,000m에 위치한 에베레스트 캠프(Everest Camp)에서 스마트폰 모바일뱅킹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써 높이 8,848m의 에베레스트는 세계 최고봉이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부쩍 친숙한 느낌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대중들의 착각과는 달리 여전히 에베레스트는 그 최고의 자리를 쉽사리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고 있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인도의 측량국장 앤드루 워는 몇 년간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3각 측량한 끝에 그때까지 피크 15라고 불리던 봉우리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로 명명했다. 이후 1921년을 시작으로 계속되어 온 에베레스트 도전은 “산을 왜 오르는가?”라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조지 멀로리(George Malley)와 그의 파트너 앤드류 어빙(Andrew Irvine) 같은 희생자를 낳으며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후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피어리(Robert Edwin Peary, 미국)의 북극점 정복(1909년)과 로알 아문센(Roald Amundsen, 노르웨이)의 남극점 정복(1911년)에 자극받은 탐험가들은 ‘제 3극점’이라 불리던 에베레스트 정복에 열의를 불태웠다.

  마침내 1953년 5월 29일, 영국 원정대 소속의 뉴질랜드 출신 탐험가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는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Tenzing Norgay)와 함께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최초로 밟았다. 이것은 에베레스트 산이 세계 최고봉으로 알려진 지 100년, 도전한 지 32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이 소식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전야제에 세계에 전해졌으며, 영국인들은 “새로운 엘리자베스 시대”가 왔다며 흥분으로 들썩였다고 한다. 당시의 개척과 탐험, 도전은 곧 국력의 강대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4년 뒤인 1977년 9월 15일 대한산악연맹 에베레스트 원정대 소속의 고상돈 대원이 셰르파 펨바 노르부와 함께 한국인 최초(세계 14번째)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그는 마지막 캠프를 떠난 후 7시간 20분의 사투 끝에 정상에 올라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올 상반기에만 520명 정상 등정, 가중되는 등정 정체

힐러리 경이 최소한의 장비를 갖춘 채로 인간 한계에 도전하며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한지 60년. 수많은 등산가들이 영광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던 봉우리에선 전혀 다른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등산장비가 발달하고 산악인 저변이 넓어지면서 등정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팔 관광청에 따르면 그동안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람은 3,142명, 횟수로는 5,104번이다. 나라별로는 등반팀에 의무 동행하는 셰르파의 나라 네팔이 2,264명으로 가장 많고 미국(536명), 중국(299명), 영국(264명), 일본(169명), 인도(152명), 한국(118명) 순이다.

  각종 기술의 발달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손쉽게 만들었다. 1990년대 정상 등정 성공률은 18%에 불과했으나 지난 2012년 성공률은 56%까지 높아졌다. 기상 관측 기술의 발달도 에베레스트의 정체 현상을 악화시킨다. 초기의 탐험대들은 정상부근에서 악천후 때문에 하산해야 하는 일이 빈번했으나 현재는 좋은 날씨가 예보되면 하루에도 수백 명이 정상으로 향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 2013년 6월호 기사에 따르면 하루 동안 234명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내린 날도 있다고 한다. 등정 60주년을 앞둔 지난 5월 19일에도 하루에만 약 150명이 정상을 밟았다.

  유명한 등반가인 에버하르트 유르갈스키는 영국 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젠 돈과 인내심만 있으면, 아프거나 허약하지만 않다면, 누구나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에베레스트 등정에는 상당히 많은 돈이 소요된다. 남쪽 사면에서 정상에 오르려면 네팔 정부에 등반팀 규모에 따라 1인당 1만~2만 5,000달러를 내야한다. 정상 부근에서 필수적인 산소통은 개당 3,000달러나 하며, 장비를 공항에서 베이스캠프까지 운반하는 비용도 1인당 2,000달러다. 최근에는 이 모든 장비·절차 준비와 안내까지 다 알아서 해주는 풀 서비스 가이드 회사도 생겼다. 1인당 4만~8만 달러를 받는다. 대부분의 짐은 셰르파가 짊어지고 등반객은 무게 10㎏ 미만의 배낭만 달랑 메고 산에 오른다. 등반 경력이 거의 없고 심지어 아이젠 사용법조차 몰라도 6만 5000달러짜리 최고급 사양의 등반 상품만 구입하면 가이드 회사가 어떻게든 정상에 올려준다고 한다. 독일의 여성 산악인 빌리 비어링은 “에베레스트에 만연한 상업 관광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5월과 같은 성수기에는 고도 5,350m의 베이스캠프에 약 700명의 사람이 거주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BBC는 “에베레스트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정체지역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광 산업으로 변질된 세계 최고봉 등정, 등반객의 경계가 필요

에베레스트의 정체현상은 경험 부족한 등반가들의 사고위험을 높인다. 1921년 최초의 에베레스트 원정팀 파견 이후 최근까지 220건 이상의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2000년 이후만 따져도 정상 정복 100건당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훈련을 충분히 받지 않은 사람들은 고도가 높은 곳에서 자신들에게 얼마나 힘이 남아 있는지, 언제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협회의 후원을 받은 원정대의 보고에 따르면 에베레스트 등정 내내 앞뒤로 낯선 이들과 다닥다닥 붙어서 올라가야 했으며, 해발 8230m 위에서조차 사람들 틈에 끼어 체력과 등반 실력에 상관없이 다른 이들과 정확히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만 했다고 한다. 컴컴한 하늘 아래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헤드램프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대열을 이루고 있었고, 어느 암반 지대에서는 적어도 20명은 되는 이들이 얼음 위에 엉성하게 박은 피켈에 달아놓은 밧줄 하나에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에베레스트의 정체현상은 네팔 정부의 무분별한 등정 허가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네팔 정부는 등정 루트마다 하나의 원정대만 허가했지만, 더 많은 등반객을 유치하기 위해 1985년 이후 이런 원칙을 없애버렸다.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길목인 수직 바위벽 ‘힐러리 스텝(Hillary Step)’의 경우 한 번에 한명만 올라가거나 내려갈 수 있는 상습 병목현상 구간으로 등반객이 많이 몰리는 날이면 8,760m의 강추위 속에서 2~3시간씩 대기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1996년에는 급기야 정상에 오른 33명 가운데 12명이 갑작스런 기상악화에 미처 하산하지 못하고 얼어 죽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네팔상업등정그룹은 힐러리 스텝에 사다리를 설치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이탈리아의 유명한 등반가 한스 카마란더 등의 등반 순수주의자(알피니즘)들은 “최고봉 등정의 의미가 퇴색된다”며 정상 등반 허가 규모를 축소해 병목현상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게 우선이라고 맞서고 있다.

  지난 2012년 5월 19일,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40대 등반대원 송원빈(24)씨가 하산 도중 실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한산악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8,800m 지점의 힐러리 스텝 부근에서 조난된 것으로 추정되는 송원빈씨는 극심한 정체현상으로 6시간이던 하산 시간이 15시간으로 2배 이상 지체되면서 준비한 산소가 고갈되고 영하 40도의 극심한 추위를 견디지 못해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네팔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19일 하루에만 실종되거나 사망한 등반가는 8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의 남선우 원장은 “등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상업등반대를 통해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시즌마다 베이스캠프에 500명 넘게 모여든다. 이들이 인공위성에 의해 정확히 예측된 날씨 정보를 가지고 같은 날 등정을 시도하면서 정체현상과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며 “8,000m에서 8,800m에 이르는 루트는 좁은 능선구간으로 한 줄로 오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체가 발생하면 인공산소와 체력이 고갈되어 훈련되지 않은 인원들은 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에베레스트 등반산업이 네팔정부의 주 수익원이 되고 있는 만큼 등반인원을 통제하거나 상업행위를 제한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남 원장은 “등반은 본래 불확실성의 요소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는 데에 그 묘미가 있다. 상업등반대를 통해 쉽게 정상에 오르려하기 보다는 다양한 루트와 시즌을 활용하여 충분히 준비하고 스스로의 도전에 의미를 두는 등반이 필요하다”며 에베레스트 등정을 꿈꾸는 산악인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정리 / 경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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