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평한 지위가 만들어낸 사회문제
불공평한 지위가 만들어낸 사회문제
  • 류성호 기자
  • 승인 2013.06.27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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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을 위에 존재하고 아래에 있게 했는가?
[이슈메이커=류성호 기자]

[甲과 乙 Ⅰ] 권력의 모습 “갑을”



계약서상의 지위를 나타내는 갑과 을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갑과 을은 원래 계약서를 쓸 때 계약당사자를 지칭하는 법률 용어일 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갑과 을은 '상하관계' ‘주종관계’로 왜곡됐다. 일명 라면상무, 주폭유업 등 상하관계에서 존재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한국은 갑과 을의 형태로 치부하고 있다. 이런 갑과 을의 문제는 누군가가 야기한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갑을관계는 누군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닌 대한민국이 현재 당면한 문제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관존민비, 원초적 갑을

갑을관계는 갑자기 발생한 사회문제가 아니다. 조선시대에 관존민비(官尊民卑)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를 갑과 을로 만들었다. 국가는 우위에서서 국민을 억압하고 다스렸다. 조선의 망국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은 ‘국민 위의 국가’라는 인식을 더욱 확고히 하기 충분했다. 반공이라는 명목아래 국가는 국민을 억압했고 관존민비의 모습을 고착시켰다. 게다가 3공화국에서 6공화국에 이르는 동안 진행된 관료 조직의 ‘정치적 도구화’는 국가가 국민에 군림하는 지위를 보장받았다. 결국 갑을관계는 한국 사회의 삶의 방식과 연결되는 문제가 된 것이다. 전남대 신문방송학과의 강준만 교수는 그의 저서 ‘갑과 을의 나라’에서 ‘한국인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데 인색하고 모든 것에 서열을 매기는 걸 좋아한다’고 지적한다. 즉 초강력 중앙집권주의가 낳은 위계질서의 결과라는 말이다.

최근 한국사회에 나타난 갑을의 횡포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 원인이 모두 갑의 횡포라는 것이다. 원래 계약의 당사자를 말하는 갑을관계는 대등한 것이다. 계약은 둘 이상의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나름의 이익을 위해서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의 갑을관계는 전혀 다르다. 갑과 을은 강자와 약자, 휘두르는 자와 휘둘리는 자, 가진 자와 없는 자, 누리는 자와 시달리는 자를 뜻한다. 왜 수평적 관계가 수직적 사회관계로 됐을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성진 변호사는 “통상 갑으로 지칭되는 쪽이 계약서 만드는 과정에서 힘의 우위를 가족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힘이 센 갑, 약한 을, 이래서 갑을관계가 된 것”이라 전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나타나기 마련인 갑을 관계는 공직사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특히 중앙부처와 지방정부, 지방정부 내에서도 도청과 시·군 관계는 명확한 갑을 관계로 작동한다는 게 공직사회의 말이다. 특히 지방재정의 80% 이상을 중앙정부에 의존해야 하는 지방정부 입장에서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그야말로 ‘슈퍼갑’이다. 김완주 전북지사가 세계태권도대회 및 잼버리대회 유치 홍보차 유럽 출장길에 오른 지난 6월 3일 전북도청은 다소 여유가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부산하게 움직였다. 박성일 행정부지사와 김승수 정무부지사를 비롯한 실 국장들은 이날 중앙부처와 국회를 방문하기 위해 일제히 서울 출장길에 올랐다. 중앙부처 예산 편성 과정에 전북도 사업을 포함시키기 위해서다.

2010~2012년까지 3년 동안 국가예산 업무를 담당했던 전북도 신원식 정책기획계장(39)은 지난해 150일 이상을 기획재정부와 국회에서 보냈다. 신 계장은 “식사자리를 만드는 게 최선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차 마실 시간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아무래도 얼굴을 익혀야 예산확보에 도움이 된다.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결코 할 수 없으며 최선을 다해 예우한다.” 모든 인맥을 동원해 중앙부처 갑과 만남 자리를 만드는 게 능력 있는 지방공무원의 척도가 되는 서글픈 현실이다. 이 또한 갑을 관계의 폐해중 하나다.




국가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개인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에는 당시 무력으로 군부를 장악하고 국가 권력을 차지한 세력이 이에 저항하는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충격적으로 재현했다. 1988년 청문회에서 밝혀진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의 수는 사망 191명, 부상 852명. 특별법 제정으로 피해자 보상 기준이 마련되었지만,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책임자 처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유신 독재와 군사 쿠데타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에서 부당한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수는 미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처럼 국가 권력은 국가 내의 모든 개인과 집단을 포괄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국가는 이러한 힘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국민은 이에 따르는 것을 국가 질서의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정치적 지배는 국민이 그 권위를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따를 때에 비로소 정당화된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고, 국가 권력과 개인의 권리가 어떻게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국가가 이처럼 국민을 통제하고 우위에선 일명 ‘갑’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에는 헌법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즉 헌법은 국가 형태와 국민의 기본권 등을 정하고 있는 국가의 기본법임과 동시에 국민의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이다.

지금부터 60여 년 전 1948년10월19일에 발생한 여·순 반란사건은 여수에 주둔하는 국군 14연대가 일으킨 반란으로 지창수, 김지희 등 7명의 좌익계 하사관들이 중심이 되어 제주4.3사태 진압을 위한 출동명령을 거부하며 장교들을 죽이고 민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14연대와 좌익세력들은 여수, 순천, 구례, 광양, 고흥, 보성 등 인근 경찰서와 관공서들을 장악하였고 자기들의 뜻을 거부하는 민간인이나 경찰, 우익인사들을 처참하게 학살했다. 여순사건 여수유족회는 여순사건 제64주기를 맞아 합동위령제와 추모식을 갖고 여순사건 피해배상소송은 진화위에서 진실규명이 결정된 여수지역 희생자들만 해도 약 300여 명에 이른다.

1949년 반란당시 故 표재옥 씨는 7월 26일밤 22시경 고흥경찰서 점암지서 경찰관들의 지시에 의거 전주를 지키는 중 반란군과 경찰과의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다음날 아침에 목격을 했다“고 밝히면서 “당시에는 경찰관 말이 법이고 들을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나도 지서 뒷산에서 2명이 1개조로 보초를 많이 섰으며 민간인 신분이었지만 경찰관의 명령으로 전신주를 지키다 죽었기 때문에 그 억울한 한을 이제는 국가가 풀어주고 유족에게도 책임지는 게 마땅하다”고 전했다. 국가가 가진 지위를 이용해 갑의 횡포를 보여주는 이 사례는 대한민국이 가진 어두운 일면일 뿐이다.


산업 전반에 나타난 ‘을’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

공정거래위원회는 남양유업뿐 아니라 유업계 전체를 대상으로 불공정 거래 실태조사를 벌였고, 검찰은 남양유업 본사 압수수색까지 벌이며 불법행위 수사에 착수했다. 일반 시민들부터 시작한 남양유업 제품 불매운동은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전국편의점주협의회, 전국문구생산유통인협회 등 자영업자 전반으로 퍼졌다. 소셜 네트워크를 타고 확산된 갑의 횡포 음성 파일은 ‘을의 반란’이라 불리는 거센 폭풍우를 일으켰다. 남양유업 ‘조폭 우유’ 파동 이전에는 포스코 ‘라면 상무’와 프라임베이커리 ‘빵 회장’이, 이후에는 ‘성추행 대변인’이 있었다.

남양유업 사태는 실의 첫머리였다. 그것을 잡아 올리니 다른 ‘을’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양유업 이슈로 여론이 뜨겁던 지난 5월7일 국회에서 열린 ‘재벌·대기업 불공정·횡포 피해 사례 발표회’는 각계각층 을의 종합 성토장이었다. 농심 특약점전국협의회 준비위원회의 김진택 대표와 네이처 리퍼블릭 명동역지하상가점 전진호 사장은 각각 식품업계와 화장품업계의 밀어내기 관행을, 노혜경 전 CJ대한통운 여수지사 수탁인은 화물운송 위·수탁 계약에서의 횡포를, 화인코리아 최선 대표는 회사를 헐값으로 매입하려는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폭로하고 규탄했다. 본사나 원청업체를 ‘갑’으로 모시는 이들은 모두 ‘사장님’이라 불리는 자영업자들이다. 대부분 전 재산에 가까운 자금을 창업비용으로 쏟아 붓고 본사의 매출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내 사업 내가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위안으로 십여 년간을 버티다, 불공정 거래 횡포에 “더는 못 참겠다”라며 뛰쳐나왔다.

또 다른 ‘을 사장님’들도 분연히 떨치고 일어섰다. 바로 택배기사나 재택위탁집배원 같은 배송업 종사자들이다. ‘개인사업자’라는 자영업자 신분으로 택배 회사나 우체국 같은 ‘갑’과의 계약 관계에 따라 일하는 이들은 강도 높은 노동과 불공정 계약에 시달리면서도 권리를 보호받을 방안이 없어 불만을 쌓아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도 이제 인내가 바닥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의 운송 거부 사태다. 지난 4월 초 택배업계 1·2위 업체인 CJ GLS와 대한통운이 합병하면서 회사가 택배기사들의 배송 건당 수수료를 100원가량 낮추고 최대 10만원에 이르는 페널티 제도를 통보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합병 이후 배송 밀집 정도에 따라 새로운 수수료 체계를 도입하면서 건당 수수료가 낮아진 사례가 있긴 하지만 택배기사 1인당 담당 구역은 좁아지고 배송 물량은 늘어나 배송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결국은 택배기사들 수익이 보전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난생처음 갑의 횡포를 알리며 일어선 ‘을 사장님’들은 한결같이 ‘후배’들을 걱정했다. 당장 본인들이 그간 입은 손해를 보상받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문제 제기를 통해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고 싶다는 것이다. CJ대한통운 이상용 택배기사는 “같이 일하던 동생들이 그만둘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 앞으로 새로 들어올 동생들이 나 같은 대우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파업에 동참했다”라고 말했다. 재택위탁집배원 송 모 씨는 “그냥 그만두고 나가도 되지만 그러면 내 뒤에 누군가가 똑같은 조건으로 일을 하다 또 그만두게 될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사회양극화 부추기는 ‘갑을문화’

갑을문화의 근간에는 힘의 논리가 있다. 힘이 강한 강자인 갑이 약자인 을을 탄압할 수밖에 없다.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오세조 교수는 “힘의 논리에 의해 지나치게 고착화되면, 강자인 갑은 힘의 불균형 속에서 늘 자기 방식대로 계약을 체결하고 역할 분담을 한다”며 “일방적인 의사소통으로 약자의 의견을 차단시키고 자사의 과다한 목표 달성을 위해 밀어내기나 경영 간섭, 거래선 바꾸기 위협 등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 자체는 불균등한 구조를 보이고 있어 불균등한 거래질서가 있다 보니 불공정한 거래에서 갑의 횡포가 벌어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갑들의 경제 외적인 횡포들은 우리사회에서 배어있는 권위주의라던가 수직적인 주종관계 약자에 대해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익뿐만 아니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안 좋은 문화가 같이 중첩돼 나타난 문화인 것이다.

시장거래에서는 시장 참여자들이 대등한 권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등한 권력으로 거래를 하기보다 독점, 대기업으로 힘이 쏠린 것이 사실이다. 해방이후 정부가 대기업위주의 성장정책을 해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오 교수는 “민주화된 이후에는 정부가 컨트롤할 수 없는 만큼 대기업에 크다 보니 그들은 이미 시장 내에서 점유하고 있는 일을 갖고 수익 극대화 차원에서 사슬에 엮여있는 을에 대해 횡포를 부린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사회 양극화현상이 고착되고 있다. 갑을문화는 사회적인 현상인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나? 사회양극화를 부추기는 갑을문화를 간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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