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 과 乙 Ⅲ] 모두 ‘갑을’이 아니다
갑과 을의 관계가 사회적 이슈로 자리 잡으면서 정부와 민간기업에서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갑을관계 해소에 있어 시급한 대책마련도 중요하지만 기업과 정부가 함께 노력하여 보다 상대적이고 합리적인 갑과 을 관계로 자리 잡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선진국의 경우 갑을관계의 성장통을 조금 더 일찍 겪으며 서로 상생방안을 마련해나가며 한국도 이제 갑을관계에 있어서 선진국으로 발돋움 할 시기이다.
선진국에서 미리 겪은 불공정 행위로 둘러싼 을의 분노
현재 한국사회는 일명 ‘남양유업사태’로 인해 갑을관계에 대한 개선을 위해 새로운 방안을 모색 중인 시점이다. ‘남양유업사태’와 같이 대기업과 협력업체, 대형유통업체와 중소입점업체, 프랜차이즈와 가맹점 사이 등 다양한 분야의 갑을 관계는 사회 전반적인 현상으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변화를 시키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사회적 큰 현상으로 자리 잡은 갑을 관계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일어났던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세계적인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은 자기 장터에 입점한 출판사에게 아마존 서비스만 이용하도록 협박한 끝에 반독점 혐의로 집단 소송을 당했고, 전자책 액세서리 제조업체를 상도한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해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주는 사건도 발생했다. 세계적인 기업 애플 역시 불공정행위로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까지 물의를 빚었다.
일본의 경우도 을의 분노를 먼저 경험한 국가이다. 2009년 6월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편의점 가맹본사인 ‘일본 세븐일레븐’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시정조치를 내렸다. 당시 일본도 본사와 가맹사업자 간의 프랜차이즈 계약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최근 갑을 관계에 있어 법률적 제한을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이 문제를 새로운 법 제정을 통해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간 기업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해결해 갑을관계 해소의 우수 본보기로 작용했다.
갑을관계가 아닌 파트너쉽을 갖고 상생관계 맺은 선진국가
갑을관계의 개선에 있어서는 미국보다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이 선진국이다. 독일의 경우 국내와는 다르게 ‘협력업체’라는 용어가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는 대등한 입장으로 서로가 파트너쉽을 갖고 상생해 나간다. 이런 이유로 이번에 ‘남양유업사태’가 가장 물의를 일으켰던 밀어내기나 업주에게 인격적 모독감을 주는 행위는 독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만약에 한국에서의 ‘남양유업사태’, ‘라면상무’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해당 기업은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되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기업의 갑을관계 해소에 앞장서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인 ‘세븐일레븐’은 가맹사업자와의 상생을 위해 가맹 절차를 13개 단계로 세분화 시켰다. 현재 국내에서 편의점을 개점할 경우 빠르면 2주 느리면 2개월 정도 소요되는 것이 현실이다. 설명회, 정보공개서 제공, 입지선정, 가맹계약, 인테리어 공사, 개점으로 6단계 정도만 거치면 편의점 개점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세븐일레븐’의 경우 개점을 하는데 있어 짧으면 3개월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설명회이후 몇 차례의 면접과 선배 점주와의 만남, 트레이닝 등 개점절차를 세분화 시켜 가맹사업자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여 본사와의 갈등을 최소화 시키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철호 가맹거래사는 “일본에서는 개점까지 3~6개월 동안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가맹사업자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한 귀 가맹계약을 체결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경우 길어야 1~2개월 안에 개점해 가맹사업자가 충분한 정보를 각기 어렵고 갑에게 유리한 계약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을의 분노에 대해 관계 당국이 갑의 행포에 대해 방치해 뒀기에 문제가 심각해 졌다 말하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다. 이에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김남근 변호사는 “중소기업 강국으로 알려진 대만, 일본, 독일 등은 중소기업, 대리점주, 가맹점주 등의 협동조합 가입률이 80%가 넘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가입률이 2~3%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중소기업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대기업과 납품 단가를 협상하면 공정거래법상 담합 행위에 해당돼 형사처벌을 받는 실정이다. 이 같은 현상이 외국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프랜차이즈와 중소기업이 조합을 결성해 대기업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 이건묵 조사관은 “한국은 독과점적인 시장구조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갑을 만들어내는데 해외에서는 이런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하며 “미국, 독일, 영국 등의 선진국은 공정위와 같은 감시당국들이 친중소기업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기업들이 을과의 계약을 할 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보편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진국은 시장 친화적인 경쟁을 하지 않을 경우 제재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데 한국은 독과점이 강하고 시장질서가 왜곡돼 있어 적용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동반성장의 움직임을 보이는 국내 기업들
국내의 기업에서도 갑을관계를 없애고 동반성장을 이루기 위해 노력중인 기업들도 다수 찾을 수 있다. LG생활건강은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을 위해 자금, 기술, 교육, 경영혁신 등 다방면에 걸친 지원활동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LG생활건강은 협력회사와의 공정한 거래를 지속적으로 정착, 유지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협력 방안으로는 ▲하도급 대금 결제수단 개선 ▲금융지원 ▲협력회사 경영역량 강화지원 ▲2차 협력회사 지원 등이다. 이 기업은 협력회사의 자금유동성을 지원하고자 구매대금을 100% 현금결제로 전환하고 지급주기를 월 2회 마감 후 10일 이내로 정했다. 매년 명절에는 ‘선물 안주고 받기 운동’을 실시해 협력회사가 명절 때 가지는 부담을 줄였다. 이 외에도 수입원료 국산화를 위해 기술개발 자원을 하고 있으며 협력회사의 핵심기술 보호를 위해 기술자료 임치제를 도입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협력회사를 고객만족과 품질향상을 위해 함께 뛰는 파트너로 생각해 다양한 동반성장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스코 또한 동반성장 우수 기업으로 꼽힌다. 포스코는 2년 연속 협력사와의 동반 성장에서 ‘우수’등급을 받은 기업이다. 이 기업의 동반성장의 모토는 ‘3T(Trust, Together, Tomorrow)’로 상호 신뢰(Trust)를 기반으로 1차 및 2~4차 협력기업과 동반성장(Together)을 하고, 미래지향(Tomorrow)적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포스코의 정준양 회장은 포스코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발돋움한 요인으로 협력업체 및 고객과의 동반성장 문화를 꼽았다. 정 회장은 미국 뉴욕 쉐라톤 뉴욕타임즈 스퀘어 호텔에서 개최한 철강 콘퍼런스인 '제28회 철강 성공전략회의'에서 "기업을 둘러싼 주요 이해관계자들을 뜻하는 포스코 고유의 개념인 SPICEE(사회ㆍ협력업체ㆍ주주ㆍ고객ㆍ직원ㆍ환경)들과 함께 건전한 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함께 성장하고 성공하는 것이 '사랑받는 기업'이며 포스코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그 외에도 한화는 ‘동반성장데이’ 행사를 가지며 협혁사와의 상생방안을 마련하는 등 대기업들의 협력사와의 동반성장 움직임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어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일방적인 입법 규정으로 발생되는 부작용 막아야
갑을관계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양산되자 일각에서는 ‘갑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갑을관계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갑을관계에 있어 계약서상 용어만 없앤다고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편의점가맹점주협의회 오명석 회장은 “갑을 관계 용어만을 없앤다고 해서 환영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내용이 바뀌는 게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글자 몇 개 바꾸는 것이 첫 걸음이라 하는 것은 오히려 갑의 입장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 회장은 “갑을 단어를 바꿀 것이 아니라 다른 부당한 조항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갑을 관계에 대한 이슈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며 사회적 강자로 여겨지는 갑을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오히려 을이 시장의 근본 질서를 흐리고 있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한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점주들이 본사의 결정권한을 갑는 메뉴나 가격, 홍보 마케팅 등 지원업무까지 과도하게 요구하며 경영하는데 어려움이 큽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경대 프랜차이즈학과 이상헌 교수는 “최근 갑을관계를 모든 문제의 뿌리인 양 여기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오히려 갑이 을에 휘둘리는 사태가 빚고 있다”고 말하며 갑을 관계에 있어서 정상적이고 체계화된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언급했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갑을 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갑의 위치에 서있는 기업가나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골치를 썩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기업관계자는 “갑을 논의가 갑에게 페널티를 주는 방향으로 모아지면서 자칫 기업가의 열정만 꺾지 않을까 우려된다. 동반성장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상황에 따라 갑이 을이 될 수 있고 을이 갑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문제는 자신이 을이라고 하지만 자신에 비해 을인 사람의 파별에 대해서는 눈 감는 것이 현실이고 이는 갑을관계가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련 규제를 적용 할 때 규제 대상을 살펴보며 세심하게 집행해야 한다. 프랜차이즈 본사만을 규제하고 창업시장에 자금을 쏠리게 되면 프랜차이즈 본사는 경영여건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그 피해는 을에게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앙대 강병오 겸임교수는 “더 큰 문제는 갑을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엉뚱하게 건실한 중소기업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갑을관계의 논란이 확산되며 정부에서도 바람직한 관계정립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임을 약속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중소기업인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정말 불공정하고 억울한 갑을관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건강한 경제 생태계가 되면 말도 안 되는 이런 일은 발을 붙이 수 없을 것”이라며 “상생의 질서를 제대로 확립해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확실하게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정부와 기업은 갑을 관계 개선을 위해 각종 대책을 마련 중에 있다. 문제는 대책마련에 있어 부작용이 생길 우려도 고려해 봐야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공정위 등도 기업 제재를 강화하는 입법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김선빈 연구원은 “지나치게 갑을관계의 범위를 확대해서 문제 삼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하며 “관행으로 계속돼온 계약서를 뛰어넘는 인권침해는 손봐야 하지만 갑을관계를 규정하는 법을 지나치게 확장할 경우 규율의 실효성에 문제가 생기고 경제회복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갑을관계 논란으로 다양한 대책마련이 나오고 있으나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방적 규정을 정하는 것 보다는 갑을관계에서의 상대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올바른 입법 제정과 민간기업의 노력으로 합리적인 갑을관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