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3.06.04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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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심부름에서 시급남편까지, 무엇이든 해드립니다”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Special Report] 역할 대행 서비스

 

“일시불로 1억만 땡겨줘요. 장기 계약을 하는 건 어때요? 그쪽 와이프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최근 방영된 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아내 대행’ 계약을 맺으며 한 대사다.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꼭 닮은 여주인공이 부잣집 며느리 역할을 대신한다는 이야기다. 언뜻 보면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지만 엄연히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현대인의 업무분담, 역할대행 서비스

현대인은 수많은 역할에 종속되어 있다. 꾸중 듣는 부하직원이면서 엄한 상사이기도 하며, 능력 있는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자식이 되어야 하고, 우애 있는 형제도 되어야 한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다시 잠드는 순간까지 우리들은 한 역할에서 다른 역할로 옮겨 다니기 바쁘다. 갈수록 경쟁이 격화되고 구조조정, 다운사이징 등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려다 보니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역할에 지친 사람들은 그 역할들을 대신해 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바로 ‘역할대행’이다.

  사실 역할대행 서비스의 원조 격은 ‘심부름센터’라고 볼 수 있다. 가벼운 민원 업무 처리나, 물건 배달에서부터 장보기 등 자잘한 심부름들을 수행했던 심부름센터가 시대에 맞게 세분화되고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어느새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대리운전’ 역시 역할대행 서비스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역할대행 시장의 성장을 촉발시킨 것은 이른바 ‘결혼식 하객 대행’ 사업이다. 이미 2004년부터 ‘알짜배기 알바’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하객 대행 서비스’는 현재에는 수많은 사업체가 난립하고 있는 레드오션이다.

  이후 틈새시장을 노리는 다양한 역할 대행 서비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결혼식에서의 하객대행뿐만 아니라 사회자, 주례, 심지어는 신랑·신부의 부모도 대행해준다.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엄마를 대신해 육아·교육은 물론이고 전문적으로 ‘등굣길 바래다주기’나 ‘모유 수유’만을 도맡아 하기도 한다. 자녀 대신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가거나, 행사 등에 배우자를 대신해 함께 참석하는 경우도 있다. 대행인의 전문성을 살려 업무를 대신해 주는 서비스 또한 등장했다. 주로 보고서, 과제물, 자기소개서, 사업계획서 등을 제출해야 하는 직장인, 학생들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문 대행인들의 도움을 빌리는 것이다.

  최근 가장 성업 중인 대행업은 ‘무엇이든 해주는’ 형태의 생활심부름 대행 서비스인 속칭 ‘셔틀맨’이다. 전화나 SNS로 주문을 받아 방문하는 형식의 셔틀맨은 ‘벽에 못 박기’나 ‘세탁기 옮기기’같은 집안일부터 ‘애완견 산책시키기’, ‘바퀴벌레 잡아주기’, ‘숙제 해주기’ 등의 독특한 의뢰도 해결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프렌차이즈부터 1인 기업 형태까지 100여 개의 크고 작은 잔심부름 업체들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증가하는 시장에 발맞춘 적절한 대책이 필요

구인구직포털 ‘알바몬’ 이영걸 본부장은 역할대행 서비스의 성장이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1인 가구’화 된 사회현상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지난해 기준 25.3%에 달한다. 소폭 증가에 그친 ‘2인 가구’나 감소세에 접어든 ‘3인 이상 가구’에 비해 증가율과 가구당 비중이 가장 높다고 한다. 또한 2025년에는 약 31.3%로 더욱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혼자 사는 사람’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대행업체에 의뢰하기 시작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행 서비스의 주요 고객층은 대부분 20~30대 싱글족이나 맞벌이 부부라고 한다. 일에 파묻혀 살아가는 ‘워커홀릭’이나 ‘귀차니즘’에 빠진 이들도 고객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편한 것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한 포털사이트에는 ‘야구장 관람객 알바’를 구한다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용모 단정한 미모의 여성’이 야구 경기 관람 도중 ‘몇 차례 카메라 및 케이블 방송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20만원의 일당이 책정되었다. 이른바 ‘야구장의 미녀 관람객’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해당 경기의 언론 노출도을 높이고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고자 한 것이다.

  대행업체를 통한 범죄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애인대행’ 서비스는 성매매 혹은 성폭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지난 5월에는 ‘애인대행’ 사이트를 통해 만난 여성을 협박한 뒤 성폭행한 혐의로 30대의 한 남성이 구속되기도 했다. 애인대행 사이트를 빙자한 성매매 업체도 문제다. 이들 업체는 ‘애인 대행, 무엇이든 해드립니다’ 등의 문구를 내걸고 고용 여성들의 사진을 게재해 온라인상에서의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이 같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선 “이용자의 세심한 주의와 함께 ‘역할대행’ 사업의 양성화·전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5일제의 확대와 청년 실업, 조기 은퇴 등으로 노동 시장에서 배제된 잠재적 노동인구가 증가하면서 대행인 지원자는 증가했지만 해당 인원에 대한 직무 교육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곽 교수는 “역할대행이 ‘돈을 주고 자기 일을 떠넘기는 책임회피’나 ‘전문성이 없는 잔심부름’에 그치지 않고 경험이나 경력을 바탕으로 한 전문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선 대행인에 대한 주기적이고 지속적인 교육과 함께 불법 운영으로 ‘역할대행’을 악용하는 업체들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취재 / 경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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