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Focus Ⅱ] 아버지의 고민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 주셔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 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글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는 2학년 어린이의 글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 열심히 일하고, 아이가 잠이든 후 저녁 늦게 돌아오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웃지못할 현실이다. 사회에서, 가정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우리들 아버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제력, 굽어가는 아버지의 등
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에 아버지 신드롬이 나타났다. 이때의 아버지는 과거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정리해고 당한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초라한 어깨가 중요한 문화적 상징이 된 것이다. 30~40년 전에는 어떻게 하면 여러 남매의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하루 세끼 먹일까가 아버지의 가장 큰 고민이었지만, 최근에는 한, 두 명의 자녀들을 어떻게 대학까지 보낼까를 고민하면서 아이들 학원비를 걱정하는 아버지들이 많아졌다.
지난 1월 경기도 포천에서는 30대 아버지가 여섯 살 난 딸과 함께 숨진 채 경찰에 발견된 일이 발생했다. 아버지의 유서에는 ‘경제적으로 어렵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시대의 아버지는 부모님 용돈에서부터 대출이자, 사교육비 등 한정된 소득에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경제적 상황을 겪고 있다. 또한 예전과는 다른 사회 문화 속에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걱정, 노후 준비도 스스로 해야 하는 힘든 현실과 싸우고 있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대부분의 가장들이 경제적 불안을 가지고 있다”라며 “직장에서 구조조정의 시험대, 불투명한 미래 탓에 현실적 분노를 느낀다”라고 얘기했다.
더욱이 경제적인 풍요로움 속에 사는 현대사회에서 아버지의 경제적인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싸이의 노래 ‘아버지’ 가사 중 ‘더 많은 것을 해주는 남의 아빠와 비교, 더 좋은 것을 사주는 남의 아빠와 나를 비교’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는 좋은 것을 사줘야 인정받는 그런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로 산다는 것’의 저자인 독일의 교육자 카를 게바우어는 “소년기 아이에게 아버지는 미래를 만드는 최고의 격려자”라며 “하지만 아이의 거울이자 역사로 자리를 지키는 아버지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 요즘이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열심히 일하고 땀 흘려 돈 벌며 가정을 책임진다. 이에 반해 많은 경우 가정에서 아버지는 소외된다. 대화에서 소외되고 노는 것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고민 상담을 가장 많이 하는 대상은 친구로 나타났다. 201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그 다음이 엄마로 20% 가까이 됐다. 그런데 아버지와 상담을 하는 경우는 3%에 불과했다. 가족들이 함께 하는 시간에서도 하루 평균 어머니는 97분, 아버지는 86분으로 나타났다.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뭘 하는지 조사한 결과, 1위가 TV 시청이었다. 결국 아버지와는 함께하는 시간도, 대화도 적고 함께 하는 시간조차도 주로 대화도 없이 TV를 본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도 아버지는 소외당하기 쉽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려면 엄마의 정보력과 아버지의 무관심이 필수다’ 이런 말이 있다. 아버지 입장에서 몹시 씁쓸하지만 가정에서 아버지들의 역할과 위상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경기교육원 최응재 원장은 “자녀교육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매우 큰 것은 사실이다”라며 “하지만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맡겨놓고 ‘나는 돈만 열심히 벌어다 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만하는 그런 아버지는 자녀들로부터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음은 있어도 막상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아버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며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MBC ‘아빠! 어디가?’는 안 그래도 힘든 아버지들에게 ‘슈퍼 대디’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있어 깊은 고민을 만들어 주고 있다. TV속 연예인 아버지와 아들은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니며 놀이, 음식 등을 통해 부자간의 정겨운 모습을 연출한다. 권위적인 아빠 성동일도 아들 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미숙했지만 여행을 통해서 갈수록 서로 가까워지고 있다.
그동안 아빠라는 존재는 든든한 친구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돈을 벌기 위해 분주한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가족과는 별개로 취급받기도 한다. 가족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아버지라는 인물은 그래서 항상 멀게 느껴지고, 낯설고 어려운 존재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최근 친구와 같은 아버지를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가기는 하지만, 산다는 것 자체가 힘겨운 서민들에게 여전히 아버지는 항상 열심히 일만 해야 하는 존재이다. 휴일도 반납한 채 회사에서 일을 해야 겨우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서민들의 삶 속에서 가족과 행복한 여행을 하는 것은 꿈같이 다가올 뿐이기에 이들의 답답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행복경제연구소 이영재 소장은 “부모와 자녀가 생활을 공유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며 “가족 간의 대화를 늘려 서로의 거리를 좁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먹고 사는 것에 일생을 바쳐온 우리 아버지들. 갈수록 이마에 잔주름이 늘어나고 어깨가 축 처지며 여린 가슴을 숨기고 사는 이 땅의 아버지들. ‘아버지’ 라는 단어만 들어도 우리 가슴속에는 가슴 짠한 기분이 느껴진다. 당신이 있었기에 가족이 행복했음을 자부하고 당당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가족과 행복하길 기대해 본다.
(사진출처 : MBC 아빠 어디가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