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 앞을 모르는 승부의 길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
“한 수 앞을 모르는 승부의 길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3.05.10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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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승부사’ 조9단의 승부세계는 현재진행형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한국의인물_국수(國手)] 조훈현 9단
 

“한 수 앞을 모르는 승부의 길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

‘영원한 승부사’ 조9단의 승부세계는 현재진행형

 

 

▲조훈현 국수

 

 

 

 

 

1953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1962년 만 9세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프로(이창호 9단은 11세 입단)가 된 조훈현의 기록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 한국 바둑계의 기반이 잘 다져지지 않아 조훈현은 프로가 된 이듬해에 세고에 겐사쿠 9단의 내제자로 일본에 건너갔다. 1966년에 일본기원 입단대회를 통해 다시 일본 프로가 돼 일본에서 주가를 올리며 활동한 그는 1972년 군복무 문제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 바둑계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1974년 당시 1인자였던 김인 7단을 꺾고 최고위전 우승을 차지하면서 ‘조훈현 천하’가 시작됐다. 그리고 1989년 한국 바둑계의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아마 지금까지도 한국 바둑계의 가슴 뭉클한 사건을 뽑으라면 단연 제1회 은창기배일 테다.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 할 정도로 바둑 변방국이던 한국에 첫 세계대회 우승을 안겨준 것이다. 당시 네웨이핑 9단을 상대로 3대 2 대역전승을 펼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조훈현은 그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바둑계 사상 첫 카퍼레이드로 국민들의 환호를 받게 된다. 그 후 1970∼80년대 조훈현은 세계대회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것은 물론 국내 대회 147회 우승, 세계 대회 11회 우승을 차지하며 통산 158회 우승 기록을 세웠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80년, 82년, 86년 세 차례 국내 대회 전관왕의 위엄을 보여줬다. 최다대국 2667국, 최다승 1875승, 최다타이틀 158회, 단일기전 최대연패(패왕전 16연패 달성), 한국 최초의 9단(1982년) 등 ‘걸어 다니는 기네스’라는 별명을 가진 조훈현.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세계 바둑계의 일인자가 아닌 모습으로 만났지만, 조훈현 이름 앞 ‘9단’이라는 수식어는 그의 인생에 대한 단수와도 같았다.

 

살아있는 한국 바둑의 역사

올해로 51년 바둑 인생을 맞이하면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엊그제 같기도 하고 오래된 것 같기도 한데 저도 모르게 여기 까지 왔습니다(웃음). 멋모르고 시작한 10대, 바둑 두기에 바빴던 전성기 시절도 많이 생각나죠. 여전히 10대의 마음이지만, 이제는 바둑 보급을 하려고 합니다. 솔직히 정상을 뛰어오르는 시기는 지났거든요. 전에는 바둑이라는 길을 따라가면서 정상에 올라서야 했는데 이제는 오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걸 알았어요. 제가 걸어온 길을 나서는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고, 도와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수많은 승부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은 무엇입니까?

“기억에 남는 대국은 수없이 많지만 응창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가 얘깃거리가 되겠죠. 세계대회가 없던 시절, 1989년 제1회 은창기배(應昌期杯)는 4년에 한 번씩 바둑 올림픽 만들겠다고 해서 상금 40만 불이 걸렸었고 대단한 관심이 집중됐어요. 이 대회에서 네웨이핑 9단을 상대로 3 대 2의 역전극을 펼치며 우승했습니다. 당시 바둑변방국이던 한국의 선수가 우승하니 보는 눈이 달라지던걸요? 제가 그때 졌다면 아마 한국바둑과 중국바둑의 기계가 틀려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죠.”

 

서봉수 9단과 라이벌로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요. 실제로 맞수라고 생각하나요?

“맞수, 말 그대로 라이벌이라는 것인데요. 승부세계에서 맞수가 되려면 100국을 두면 50:50이나 최소한 49:51이라는 숫자가 나와야 한다고 봐요. 하지만 승패가 차이가 나면 라이벌이라고 말할 수 없죠. 단지 1등과 2등이라고 해서 라이벌이라고 말하는 건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상대방이 아닌 제 자신이 진정한 조훈현의 맞수라고 생각합니다. 경기에서 상대에게 무너지는 것은 극히 드물어요. 컨디션 관리를 잘못하거나, 공부를 소홀히 할 때, 집중하지 못하는 등 스스로와 싸움에 지니 약자에게도 무너지는 것이죠. 결국 라이벌은 자기 자신이에요.”

 

타고난 승부사라고 밖에 말할 수 없네요. 최고 전성기 때 ‘이제는 적수 없다’는 마음도 드셨겠습니다.

“승부는 최선을 다했을 때의 결과물입니다. 최선을 다하면 후회가 덜 되고 좋은 결과를 달성해 열심히 하게 되는 선순환구조가 완성돼요. 전성기 때는 1년에 100번, 이틀에 한번 꼴로 대국을 펼치는데 승부하면 이겨야하고 대국마다 승리를 위한 최선의 수를 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10대 때는 ‘이 상황에서 이 한수다’라고 판단을 내리고 생각했지만 강해질수록 과연 어떻게 둬야 할지 판단이 어려워졌어요. 지금이야 지나온 과정을 바라보며 얘기할 수 있지만, 정상일 때는 승부 자체만 논했었죠.”

 

국수라고 해도 100전 100승은 불가능한 수치이죠.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뭐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저는 술을 못하기 때문에 등산을 간다거나 여행을 하면서 나쁜 것은 최대한 빨리 잊습니다. 대부분은 바둑공부를 한다거나 체력을 기르면서 승부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죠. 최근에는 일선에서 어느 정도 물러났기 때문에 노는 것이 취미에요. 5,6년 전 골프도 배웠어요. 이렇게 말하면 골프도 잘 치겠다는 기대감으로 절 보는데, 말 그대로 취미에요. 잘하고 못하고 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지 쉽사리 늘지가 않네요.(웃음)”

 

스승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인도하는 것

조훈현 9단은 한때 제자 이창호에게 모든 타이틀을 빼앗기고 무너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바둑 외길인생을 걸어온 그는 한국 바둑을 세계 최강국으로 이끌고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 9단 등 최고 기사들을 조련해 한국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산증인으로 불린다. 시대가 바뀌고 나이가 들어 약해지는 것은 피해 갈 수 없지만, 거의 평생을 승부 안에서 살아온 그의 승부는 계속되고 있다.

 

‘사제대결’로 유명했던 이창호 9단과의 대결을 빼놓을 수 없네요. 승부를 떠나 기분이 어떠셨어요?

“저도 때리면 아프죠. 지면 아픕니다. 제자라서 조금은 덜 아팠을 테고, ‘더 성장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위안이 됐어요. 그러면서 스승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저는 스승님이 특이하게 두 분 계셨어요. 그런데 이분들의 교육이 남달라요. 나이가 들면서 생각할수록 정신을 배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일반 분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엄청난 정신세계를 몸소 배웠다고나 할까요?”

 

정신세계라고 하니 더욱 궁금하네요. 당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쉽게 얘기해서 바둑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바둑을 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고 생각합니다. 최고수가 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항상 스승님은 말씀하셨어요. 그 때 말씀이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는 거예요. 사람이 먼저 되고 국수가 돼야지, 국수가 되고 나서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거죠.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성, 인품, 인격을 갖춰야 한다고 하셨죠. 가만히 따져보니까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도 갖추기 힘들어요. 하지만 힘들더라도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에게 정상에 도달하는 비결을 듣기 원합니다.

“비결이 있으면 누구나 1등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비결만 안다고 모두가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첫째 재주가 있어야 하고 피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죠. 제자인 이창호를 얘기하면 단순히 재주가 있어서 일등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창호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끝나고 12시에서 1시까지 공부했어요. 다른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일류는 남들보다 더 공부하고 지금도 깨어서 노력하고 있을 것에요. 그렇지 않고서는 최고가 될 수 없죠. 정상의 자리에서 추월당하지 않으려면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죠. 노력하고 공부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안 봐서 그렇지 다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노력은 절대로 배신당하는 법이 없어요.”

 

바둑은 인생을 걷기 위한 길

 

 

작가 김훈은 글 쓰는 것이 지겹지만,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기에 한다고 말했는데요. 국수님에게 바둑은 어떤 의미입니까?

“같은 맥락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바둑이고, 전 바둑을 통해 인생을 걸어 왔어요. ‘바둑은 ooo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기 보다는 바둑은 제게 그저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겠네요. 앞으로도 걸어가야 할 길이고요. 이 길에 들어선 이상, 얼마만큼 더 갈 수 있느냐에 더 무게감을 두고 싶어요.”

 

그렇다면, 바둑하고 인생이 같습니까?

“사람은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자기 나름의 길을 걸어요. 저는 바둑을 통해서 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 기업, 미술, 체육, 정치 등을 통해 걷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하나의 사회생활이라고 할까요?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바둑에도 끝이 없어요. 하면 할수록 후회하고 더 잘할 껄 하는 욕심도 생기죠. 결국 작품이든 음악이든 단계가 존재하게 되잖아요. 말 그대로 깊이의 차이 말이에요. 인생도 오래 살아야 깊이가 느껴지듯이 바둑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바둑의 발전을 위한 조언의 말씀 부탁합니다.

“무엇보다 바둑이 점차 설 곳을 잃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행인 것은 바둑 자체가 나빠서 축소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다양한 스포츠와 놀이문화가 생겨나면서 바둑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적어졌다는 거예요. 하지만 두뇌스포츠인 바둑의 장점을 살리고 보급에만 더 힘을 기울인다면 저변은 확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속기전으로 바뀌면서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있기도 해요. 이런 노력들을 발판삼아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대담/이종철 기자 취재/안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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