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단독인터뷰 - 前 유도 국가대표 왕기춘
[이슈메이커] 단독인터뷰 - 前 유도 국가대표 왕기춘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8.06.19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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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김종서 기자] 

“제2의 인생으로 여러분들께 인사드립니다”

 

국내 유도 53연승의 신화, 유도인을 넘어 유튜버와 BJ로

 

국내 유도의 신화, 후회 없는 한판으로

 

왕기춘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유도계의 간판스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세계유도선수권대회(2007년·2009년·2010년)에서 금메달 2회, 동메달 1회를 획득했으며,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2011년·2012년) 2연패와 광저우 아시안게임(2010)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국내유도 53연승이라는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 이와 같은 위업을 달성한 그였지만 올림픽 무대에서는 정상에 서지 못한채 도복을 벗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에 대한 일말의 후회도 없다고 떳떳하게 말한다.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도자로 정진중인 왕기춘은 이제 인터넷을 통해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 근성과 노력의 유도인으로서의 이야기와 은퇴 후 다른 분야 에서도 최고가 되길 원하는 왕기춘의 제2의 인생을 이슈메이커가 함께해 보았다.

 

처음 유도복을 입게 된 계기나 어린 시절 우상이 있으셨나요?

 

“6살에 전남 정읍에서 서울로 상경한 이후부터 몸이 점점 약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때 부모님의 권유로 유도를 처음 시작하게 됐습니다. 아마 좀 더 건강한 아들로 키우고 싶었던 부모님의 마음에서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유도를 시작한 후부터 건강도 좋아지고 체중도 불기 시작했고,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시드니올림픽을 보면서 올림픽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최고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현역시절 53연승이라는 대기록과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에서 숱한 메달을 목에 거셨습니다. 가장 화려했던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가 있을까요?

 

“저에게는 제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가장 화려했던 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은퇴를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런던 올림픽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당시 두 번째 경기에서 부상이 생겨 팔꿈치에 마취제와 진통제를 섞어 주사를 했는데, 문제가 생겼는지 엄지, 검지, 중지에 마비증상을 겪었습니다. 때문에 부끄러운 경기력을 보였습니다. 준비과정에서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컸습니다. 당시 SNS를 통한 논란거리를 만들었던 저로서는 이 상황에 대해 주변에 알리기가 더욱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렇게 혼자 끙끙대다 가슴에 묻었습니다. 아쉬움에 울기도 많이 울었고 잠시 방황도 좀 했습니다. 화려한 순간이 아닌 화려하게 힘들었던 순간이네요”

 

동기였던 조준호 코치가 한 방송에서 ‘희대의 천재’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습니다. 현역 시절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었던 최대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노력 없이 만들어지는 천재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노력했습니다. 큰 시합이 끝난 뒤에도 리듬을 깨지 않기 위해서 10일 이상은 쉬지 않았습니다. 올림픽 이후에 한때 열심히 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목표만 보인다면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한 뒤 매트에서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런던 올림픽 4위와 리우 올림픽 출전 좌절까지 올림픽 금메달이 한으로 남지는 않으셨나요?

 

“정말 갖고 싶었던 메달이었습니다. 그래서 베이징 이후 다시 도전을 했고 결국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노력은 다시 해도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했기에 비록 아쉬움은 많이 남지만 미련은 없습니다”

 

은퇴 후 생활체육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 결심을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비록 은퇴했지만 유도를 곁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 없었습니다. 목표를 위해 정말 목숨을 걸고 유도를 했었고, 의미 있고 뜻깊은 시간이었지만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도 분명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도가 좋아서 스스로 찾아오는 관원들을 바라보면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제가 좋아서 유도를 시작했을 때가 떠오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관원들끼리도 서로 잘 어울리며 배워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교육 기관을 운영하시면서 관원들에게 가장 강조하시는 사항은 무엇인가요?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듯이 유도를 배워가는 능력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자신이 배우는 것이 늦는 것 같다고 자책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격려해 주기 위해서 긍정적인 말들을 많이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긍정적으로 배워 나갈 것을 가장 강조하게 된 것 같습니다. 유도관 구호도 있습니다. ‘안된다고 하지 말고 어떻게? 다같이-긍정적으로!!!’”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끝까지 유도인으로서

 

은퇴 후에도 왕기춘은 유도인으로서 전국체전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으며 지도자로서 후진 양성과 유도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가 유도를 잊지 않고 더욱 알리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인터넷 플랫폼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유도 관련 영상을 꾸준히 편집해 업로드 하고 있으며, 최근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 TV’에서 당당하게 BJ로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유튜브와 인터넷 방송으로 대중들과 소통을 시작하셨습니다. 인터넷 방송 시장에 뛰어든 이유와 대중들에게 어떤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잊혀지기 전에 다시 대중들 앞에서 유도를 알리고 나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유도인으로서 유도의 부흥에 이런 식으로나마 조금은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곱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인터넷 방송은 예전부터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질책이 두려워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용기를 줘 도전 하게 됐고 이제는 새로운 출발을 하는 저의 모습을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방송 콘텐츠는 우선 유도와 운동이 큰 배경이 될 것 같습니다. 그 틀 안에서 여러 가지 색다른 시도를 해볼 생각이며 다른 콘텐츠로도 다양하게 도전해 볼 계획입니다. 많이 망가질 각오도 하고 있습니다”

 

리우 올림픽 이후 유도 대표팀의 ‘전력분석관’으로 활약하셨습니다. 향후 엘리트 지도자의 꿈을 펼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전력분석관을 맡으면서 사실상 코치의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수들의 기술과 전략에 대한 코칭 보다는 땀과 노력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가장 기본을 먼저 갈고 닦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관원들과 방송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세계 정상급 실력을 자랑하던 한국 남자 유도가 최근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부진하며 혹자는 침체기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아시안 게임과 2년 뒤 올림픽을 위해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사실 당연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헝그리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이 노력을 인정받으려면 그만큼 절실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갈수록 훈련법이 과학적으로 발달하는 것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에만 의존한다면 눈에 띄게 발전할 수 없을 겁니다. 강한 육체에 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혹독한 훈련은 물론 고되겠지만 강한 선수가 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슈메이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전해 주십시오

 

“지금은 여러분들에게 많이 잊혀진 왕기춘입니다. 물의를 일으켜 한참 죄송스러웠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철없던 시절의 치기어린 행동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은 많이 반성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제 2의 인생을 나아가고 있습니다. 좋은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순간마다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왕기춘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하지만 그가 유도를 등진 것은 절대 아니다. 그와의 대화에서 오히려 유도를 알리고 부흥시키려는 진실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메달리스트이자 국내 유도의 신화로서, 그리고 유튜버와 BJ로서 당당하게 대중 앞에 나서려는 것이다. 유도인으로서 그 어느 못지않은 이력을 가지고 있는 왕기춘. 스스로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손에 꼽지 않은 그는 이제 평생을 걸어온 길과는 다른 곳에서 다시금 최고가 되려 하고 있다. 왕기춘의 제2의 인생이 찬란하게 빛날 수 있을지 기대해 보며 다시금 그가 선사했던 감동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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