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점심시간을 포기하는 직장인들
[이슈메이커] 점심시간을 포기하는 직장인들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8.06.19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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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점심시간을 포기하는 직장인들

치열한 경쟁사회 이겨낼 ‘밥심’ 절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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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시간이 아니다. 오전 근무를 하는 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고 오후 업무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하지만 갑자기 생기는 업무 요청이나 이어지는 미팅은 식사 시간을 놓칠 수밖에 없도록 한다. 이처럼 정해진 근로시간 내 업무를 마쳐야 하는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이 ‘사치’가 되면서 ‘알 데스코(Al desko)’라는 새로운 문화가 전파되고 있다.

 

바쁜 업무 속 휴게시간은 ‘언감생심’

 

20대 직장인 A씨에게 점심시간의 보장이나 삼시 세끼를 제 때 챙겨먹는 일은 남의 일이다. 바쁜 업무는 물론 높아진 물가 때문에 사무실 인근 편의점을 찾아 도시락을 구입한 뒤 사무실에서 간단히 허기를 달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기자가 만난 A씨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휴게시간 보장은 언감생심이다”며 “점심시간을 30분 정도로 빠듯하게 사용하거나 시선을 모니터를 바라본 채 한 손은 숟가락을, 나머지 한 손은 마우스를 잡고 업무를 보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바쁜 일상에 쫓기는 직장인들에게 1시간의 점심시간은 휴게시간이 아닌 업무의 연장이 되는 일이 많다. 실제 농촌경제연구원 2016년 식품소비행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과 청소년의 58%가 식사를 거르는 가장 큰 이유로 ‘시간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이처럼 과거 점심 휴식을 동료들과의 유대감을 높이고 스트레스 해소의 장으로 삼던 직장인들이 이제는 그 시간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치열해진 경쟁 환경, 특히 점심 휴식조차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문화도 큰 요인이다. 이와 같은 ‘사무실 점심(Desktop Dining)’ 현상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보편화된 현상이기도 하다. 뉴욕이나 런던의 금융가 사무실에서는 컴퓨터 앞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나 빵으로 허기를 때우는 직장인들이 넘쳐난다. 실제로 많은 통계 자료들도 많은 국가에서 점심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HR 컨설팅 기업 라잇 매니지먼트(Right Management)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 65%는 별도의 점심시간을 갖지 못하며, 책상에서 식사하는 직장인은 39%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의 설문조사 결과 영국 근로자들은 4명 중 3명 이상이 ‘정기적으로 일을 하며 점심을 먹는다’고 답을 했고, 미국의 USA 투데이도 미국 근로자 65%가 ‘책상에 앉아 점심을 먹거나 아예 점심시간을 거른다’는 조사 결과를 전한 바 있다.

 

이처럼 높은 업무강도 속에 점심시간을 생산성을 높이는 데 활용하고자 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며 ‘알 데스코(Al desko)’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본래는 책상에서(aldesko)란 뜻이지만, 야외에서 즐기는 음식을 뜻하는 ‘알 프레스코(Al fresco)’를 변형해 사무실 책상에서 먹는 음식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직원의 건강한 삶이 기업 경쟁력도 높여

 

점심시간마저도 초단위로 바쁘게 움직이는 직장인들을 위해 식품 브랜드들은 오피스 런치 정기배송 서비스를 내놓거나 ‘틈새끼니족’을 위한 메뉴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물론 이는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직장인들의 건강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호주 멜버른의 ‘베이커 심장 및 당뇨병 연구소’의 데이비드 던스턴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자주 움직이지 않고 오래 앉아 있는 생활습관은 흡연의 해악만큼이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쳐 ‘의자 병(Sitting Disease)’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점심을 먹을 때도 사무실이나 일하는 책상에서 먹지 말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 먹는 등 틈틈이 근육을 활성화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충청대학교 식품영양외식학부 신은경 교수는 “무엇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 몸의 뼈가 되고 살이 되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매우 중요하다”며 혼밥을 하더라도 건강하게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많은 연구 자료들은 점심식사를 통한 재충전이 업무 생산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준다. 직장 심리학을 연구해온 킴벌리 엘스바흐 미국 UC 데이비스 교수는 “점심 휴식이 없으면 인지적 능력이 고갈되는 것은 물론 뇌가 휴식을 취할 때 가능한 창조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진다”고 분석했다. 이에 선진국들은 자리에 묶여 있는 직장인을 걷게 하려는 캠페인을 펼치며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걸음 측정기를 제공하거나 다양한 경품을 제공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일부 주 법원에서는 점심시간에 근로자들에게 일정 시간의 휴식을 주지 않은 기업에 막대한 벌금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물론 국내에서도 자율출퇴근제 도입이나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등 유연한 근무형태와 개방적인 조직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정해진 근로시간 내 업무를 마쳐야 하는 직장인의 특성상 밀린 일이 생길 가능성이 많고, 이 경우 점심시간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노동 복지를 실시한다고 하지만 정작 근로자들이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결국 작은 조직의 CEO들부터 변화의 마음을 품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미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직원들의 건강을 챙기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직원들의 건강과 행복이 당장의 이익보다 기업 경쟁력에 더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오래 앉아 있어야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란 낡은 문화가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 점심시간을 보다 여유롭게 즐기고 ‘밥심’을 통해 직장인들의 활력이 충전될 수 있는 문화 확산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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