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부는 ‘Slow’ 바람, ‘Slow City’가 맞이한다
전 세계에 부는 ‘Slow’ 바람, ‘Slow City’가 맞이한다
  • 박성래 기자
  • 승인 2013.03.23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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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이기(利器)’가 아닌 ‘내면의 행복’을 위한 슬로시티 필요
[이슈메이커=박성래 기자]

Slow City

 

느림의 미학, ‘슬로시티’

 

 

‘슬로시티(Slow city)’는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치타슬로(cittaslow)’의 영어식 표현이다. 1986년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시작된 슬로푸드(Slow food)운동 정신을 삶으로 확대한 개념으로, 전통과 자연생태를 슬기롭게 보전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기반으로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를 추구해 나가는 도시‘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시아 최초로 전남의 4개 지역인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 마을, 장흥군 유치면,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등을 비롯해 10곳이 슬로시티로 지정되어 있고, 여전히 많은 지자체들이 ‘슬로시티’로 지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ti)’에서 ‘담양군’까지

‘천천히(Slow)’, ‘작은(Small)’, ‘간소한(Simple)’은 ‘슬로시티(Slow city)’를 나타내는 간단하지만 강렬한 세 단어이다. 슬로시티는 ‘빠름’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행복’과 ‘풍요’의 가치를 일깨워주고자 한다는 취지에서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슬로시티 운동은 이탈리아의 소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ti)의 시장 ‘파울로 사투르니니(Paolo Saturnini)’가 창안하여 1999년 10월 ‘포시타노’를 비롯한 4개의 작은 도시 시장들이 모여 ‘슬로시티’를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유럽 곳곳에 확산되기 시작했고 현재 세계 16개국 110여 개 도시가 가입돼 있다. 슬로시티 가입조건은 인구가 5만 명 이하이고, 도시와 주변 환경을 고려한 환경정책 실시, 유기농 식품의 생산과 소비, 전통 음식과 문화 보존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구체적 사항으로 친환경적 에너지 개발, 차량통행 제한 및 자전거 이용, 나무 심기, 패스트푸드 추방 등의 실천이다.

한국슬로시티 본부는 글로벌 물결에 지역 정체성이나 전통의 벽이 무너지고 있다며 슬로시티가 강대국이나 도시의 대량생산에 맞설 수 있도록 지역화, 차별화, 고급화, 브랜드화로 소도시가 비교 우위의 경쟁력을 갖게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슬로시티본부 손대현 이사장은 “슬로시티의 철학은 자연, 전통, 공동체를 하나로 지켜나가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진정한 발전과 오래갈 미래를 위해서 자연과 전통, 공동체 보호가 필요하다. 자연에게 좋은 것이 인간에게도 좋다. ‘Human nature(인간 본성)’이란 말은 인간성을 뜻하니 실로 자연을 살리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전남대 생태관광연구센터 강신겸 교수는 “슬로시티는 전통보존과 지역민 중심, 생태주의 등 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커뮤니티를 의미하는 것이다. 자연환경과 전통문화, 고유음식 등을 잘 보호하면서 따뜻한 사회, 행복한 세상,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지역 또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연환경 속에서 자연을 느끼고, 그 지역의 먹거리와 독특한 문화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녹색성장 관광분야의 대표적 콘텐츠의 하나다”라고 슬로시티에 대해 설명했다.

 

‘슬로우(Slow)문화’ 인간 내면의 본성 볼 수 있어

최근 빠른 일상을 떠나 생활 속 여유를 찾고자하는 이들이 늘면서 지자체간 슬로시티 브랜드 선점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사람들이 ‘느림’의 가치에 주목하자, 지역에서 ‘느림’의 요소들을 찾아내 지자체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이로 인해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슬로시티 브랜드 선점’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특허청은 지난해 3월 ‘슬로시티’ 브랜드를 선점하기 위해 전국 지자체가 출원한 브랜드의 현황을 밝혔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1년에만 전국 4개 지자체가 67건을 출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슬로시티’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지기 이전인 2010년에는 1건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1년 만에 폭발적으로 급증한 것이다.

‘느림’의 브랜드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곳은 천혜의 바다를 배경으로 느림의 가치를 이어가고 있는 전남 신안군이다. 신안군은 지금까지 전국에서 가장 많은 34건의 슬로시티 관련 상표를 출원했고, 지역 염전에서 생산되는 갯벌천일염을 ‘슬로시티 신안’을 대표하는 ‘슬로푸드’로 선정, 관련 상표를 특허청에 등록했다. 신안군은 전통발효식품과 관련된 상표 등록도 신청했다. 전남 담양군은 지난해 27건의 상표를 출원했다. 담양군은 창평면 등의 지역 주민들이 손으로 직접 생산하는 전통된장·한과 등과 관련된 상표 등록을 신청했다. 유치·장평면 지역을 중심으로 표고버섯과 생약초를 키우면서 지렁이농법을 육성하고 있는 전남 장흥군도 5건의 상표를 출원했다. 이밖에 충남 예산군은 대흥·응봉면을 슬로시티로 키워 나가기로 하고 1건의 상표를 출원했다. 예산군은 황토밭사과와 민물어죽 등 고향 냄새가 물씬 풍기는 슬로푸드를 앞세우고 있다.

 

 

한발 늦게 슬로시티 경쟁에 뛰어든 지자체들의 움직임도 부산하다. 한옥마을 등에서 비빔밥과 이강주(전주지역 전통주) 등 슬로푸드를 내놓으며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전북 전주시는 슬로시티 관련 상표를 출원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전주시는 올해 안에 상표 등록을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기 남양주시, 경북 상주시, 전남 완도군, 경남 하동군, 경북 청송군 등도 나름의 ‘느림’ 관련 자산을 내세워 슬로시티 관련 상표 출원을 준비하고 있다.

특허청 상표디자인심사국 이병택 과장은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로 선정된 지자체는 모두 슬로시티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상표와 식별되는 문자나 각 지자체의 로고 등과 결합시켜 상표로 출원하고 있다. 현재 지자체의 슬로시티 등록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고 귀뜸했다.

현 시점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슬로시티(Slow city)’ 열풍에 대해 “우리사회에서의 ‘슬로우(Slow)문화’의 공유 폭을 넓힐 때 인간 내면의 본성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슬로우 패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70년대 성장위주의 가치관에 매몰되고, 무조건 속도시대를 강조하다보니 사람들이 ‘소통’의 정서를 잃었다는 것이다. 덕성여대 독어독문학과 조우호 교수는 “본질적인 인류의 삶에 대한 고민 없이 속도와 효율, 성장만 중시한 경제구조가 지구촌의 동반 몰락을 가져오고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슬로 시티’가 적절히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느림’의 요소는 경쟁력이 아니라 ‘마음’이다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인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삼지내 마을 등 전남지역 4곳의 슬로시티를 찾는 방문객이 슬로시티 지정 이래 처음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슬로시티가 전국 곳곳에 확산되면서 생긴 방문객 분산 효과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슬로시티마저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슬로시티에서도 우리나라 지역발전정책의 고질적인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바로 슬로시티의 ‘지역 간 안배’이다. 슬로시티를 유치하기 위한 지자체의 경쟁이 치열해 빚어진 고육지책이기도 하지만, 과연 ‘대안적 삶의 선택과 전환’이라는 슬로시티의 취지가 이의 지역적 안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지자체별로 다소의 편차는 있지만 슬로시티를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여기는 문제점이 있다. 이런 의미로 인식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슬로시티 초기 ‘한국슬로시티위원회’가 문화체육관광부의 허가를 얻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지자체들이 해당지역의 소득과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관광 마케팅 수단으로 슬로시티를 유치하고 홍보했던 탓도 있다”고 밝혔다. 그 결과 공동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느린 삶과 관련성이 적은 체험 프로그램, 방문자 센터 및 안내 표지판의 설치 등 선후(先後)가 바뀐 사업들이 추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역발전연구실 김현호 실장은 “향후에는 지역발전의 지배적 가치가 지금까지와 달리 ‘지역 총생산’에서 ‘지역 총행복’ 증대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람의 얼굴을 지니지 않은 양적인 효율성 가치에서 건강, 여유, 배려 등의 질적인 행복 가치가 중시되는 쪽으로 바뀐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때, 관광사업 위주의 사업추진보다는 느린 삶의 양식으로의 전환이라는, 제대로 된 슬로시티의 추진이 지역 총행복의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지 관광산업을 목적으로 건립되는 슬로시티 추진은 오히려 해당지역의 전통을 더 퇴색시킬 수 도 있다”고 경고했다. 진정성 있는 슬로시티의 추진만이 해당 지역의 발전은 물론, 우리나라의 질적인 발전에도 견인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은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이 전통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자연생태계가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슬로시티 운동은 현대의 ‘물질적이기(利器)’와 거리가 있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지역의 전통과 자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실천하는 공동체 운동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슬로시티본부 손대현 이사장도 “이는 슬로시티가 이윤추구의 도구가 아닌, 삶의 양식 자체를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전환운동’이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자체들이 진정한 슬로시티 건립에 힘써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슬로시티’는 인간이 지속가능한 발전 방향으로 성찰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 지자체의 이익을 창출하는 공간이 아닌 오히려 한 템포 늦추면서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내면의 공간을 말이다. ‘슬로시티’를 통해 다소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우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각박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도록 진정한 의미의 ‘슬로시티’가 우리 곁에 형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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